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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날개

by 페이지 성희

가수 박진영이 노래는 공기반 소리반으로 부르는 거라 말해도

"뭔 소리야,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 하고 있네!"

콧방귀를 뀌고 삐쭉였다. 그 말이 맞다고 해도 절대 공감하지 못했다.

적어도 예전에 나는 그랬다.


다른 건 얼추 따라 하는데 도무지

노래 부르기는 자신이 없어서다.

보통 노래를 부르는 기회는

모임의 뒤풀이에서 이어진다.

언제나 불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노래방 행렬에 마지못해 따라가다

눈치를 보며 도망가기 바빴다.

재미는 쥐뿔! 부담감이 0.1톤으로 나를 짓누른다.

왜 회식의 마무리는 노래방이란 말인가!


어떤 이는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독점한다고

노래를 잘 불러 젖히는 것도 아니다.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도 고역이다.

단순히 노래를 좋아하는 수준이라면

뒤꽁무니라도 따라가겠지만

나는 부르는 쪽도 듣는 쪽도 아니요였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이 어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갔다.


살면서 부러운 게 별로 없는 나도 노래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주눅 들고 부러웠다.

노래는 나에게 매력의 문을 여는 "열려라 참깨"다. 내가 모르는 신비한 너머 세계다.


J는 친구의 동창이다.

친구와 만남의 자리에서 알게 되어 가까워졌다. J덕분에 난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 졌고, 결국 배우게 되었다.


J는 자신이 말하는 소박한 외모(?)를 가진 평범한 주부다.

그녀는 평생 고민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불리던 옥떨메란 별명을 벗어나고 싶었다.

납작한 코와 각진 턱 , 눈동자가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앙징맞은 눈매를 가진 자신에게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남들이 말하는 적당한 키와 몸매에 성격도 무난해 모든 게 평균치라 해도 거울 속 낯익은 제 얼굴을 보면 갈등이 일었다.

그렇게 50년 넘게 살다가 울산바위만큼이나 큰마음을 먹었다.

얼굴 잘 고치기로 소문난 의사를 찾아갔다.

보자마자 대뜸 수술이 간단한 게 아니라고 .

처음엔 견적이 문제일까 싶어 괜히 부끄러웠다.


아무리 첨단 의술로 수술을 받는다 해도 보이는 건 가상의 시뮬레이션 사진일 뿐 지금의 인상과 다르게 바뀔 수도 있으니 각오하라 다.

회복하는데도 그렇고 건강상에 심각한 문제가 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 나이에(?) 굳이(?)라며 말리더란다.


사람 고쳐서 돈 벌어먹고 사는 의사가 수술을 권장하지 않고 말리는 걸 보니 가히 괜찮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거 같아 귀보다 마음이 기울어졌다.


전문가의 말을 마음에 담고 생각해 보니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한 게 오판이 아닐까!

인생 반백년은 어쩌면 적은 나이가 아니며,

이제 노화와 더불어 살아갈 시기에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움에 신경 써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처가인 남편은 사업도 잘되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문득 평탄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흔들릴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했다.


의사를 만나기 전엔 성형이 내 인생에 비단길, 꽃길을 열어 줄거라 믿었거늘 어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럴까!

변덕이 죽 끓는 듯 속이 뒤집히고 요상했다.


마침내 지켜보던 남편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에 핑계 삼고, 위안 삼아 J는 평생의 숙제를 내려놓기로 했다.


대신 J는 어디서나 여왕 대접을 받는

단 한 가지 강력한 그녀만의 무기가 있다.

바로 노래 솜씨다.


장윤정의 "애가 타"는 장윤정보다 더 애절하고 간드러지게 불렀다.

세상에는 그녀의 노래를 들은 사람과 듣지 못한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나면 평가가 180도로 달라진다.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내가 그랬다.


그녀가 노래하는 동안에는 모두 숨죽이며 J에게 빠져 버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감동을 주는 노래를 들으면 모두가 입을 닫고 고요한 침묵만 흐르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환호를 넘어 탄식을 들을 정도로 완벽한 재능을 가졌다. 바야흐로 언제 어디서나 사랑받는 우리들의 가수다.


노래 하나로 평범한 아줌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수로 변신하는 존재감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이었다.


나도 노력하면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노래방에 가는 길만이라도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을까?



작년 여름 동네 문화센터를 기웃거리다 처음으로 노래교실에 등록했다.

아침 10시 수업인데 수업 전에 강사는 수강생을 지명해 노래를 시키는 거다. 참 특이한 강사다.

물론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잡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나중에요. 나중에" 하면서 다음을 기대하라며 뒤로 뺐다.

마이크도, 사람들 앞에 나섬도 무서웠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강사는 또 줄줄이 마구잡이로 호명을 하며 노래를 시키는 거다.

강사는 노래 부르기에 앞서

노래 부를 마음부터 나서라 한다.

일명 마이크와 무대 공포증 벗어나기!

잘 부르고 못 부르고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했다.

그저 사람들 앞에 나와서 일단 불러 보라는 거다.


처음 온 수강생들은 쭈뼛거리며 나가서 음도 틀리고 목을 쥐어짜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일절을 마쳤다. 그게 창피한 게 아니라 한다.

단상 앞에 나가서 아무렇게라도 끝까지 부르는 게 중요하다 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니 어느새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아무렇지 않아 졌다.

어쩌다 부르니 어렵지 매시간마다 부르면 사실

별일도 아니더라.

수강생이 20여 명 내외라 수업 전, 후로 1절씩 부르니 내 차례가 자주 왔다.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노래 부르기에 첫발을 떼인 셈이었다..


어느새 자신감의 싹인
배짱이란 게 자라나고 말았다.


노래 곡목이나 장르를 넓혀 보자는 욕심도 생겼다.

다음에는 합창반을 수강했다.

강사는 성악을 전공한 테너로 동굴 속 에코 보이스가 매력적인 분이었다.

피아노를 반주하며 직접 노래까지 부르며 수업을 진행했다.


노래 책에는 이탈리아어의 뮤지컬 곡, 오페라 아리아, 여고시절 음악시간에 불렀던 우리 가곡도 들어 있었다.

나는 아트 팝 장르 김효근 작곡가의 노래가 마음에 와닿았다. "첫사랑", "눈"같은 노래를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 신가곡이라 했다.


수업 내내 선생님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함께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새 노래의 여러 가지 맛이 느껴졌다.


'그네', '보리밭', '비목'이 달리 느껴졌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보리밭을 부르면 소녀 시절로 돌아가는 착각이 들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저 예전에 느끼던 고음 지옥의 가곡이 아니었다.


"you raise me up'을 부르면

마음에 희망이란 게 차오르는 듯 벅찼다.

뜸북뜸북 뜸북새의 "오빠 생각"은 그렇게 아련하고 정겨운 노래였나 싶었다

"바닷가의 추억",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부르면 나는 5월의 훈풍을 맞으며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기차에 올라앉아 있었다.


합창은 처음에 10명 남짓 하다가 1년을 다닐 동안에 30명 넘게 늘어났다.

사람들이 많아지니 노래하며 목소리를 내는

부담감도 줄었다.


처음에 내 목소리가 사람들의 소리에 묻혔는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들렸다. 목청도 커지고 나만의 노래가 되어가는 거 같았다.

어떤 분이 내 노래를 듣고 맑고 따뜻한 느낌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했다.

문득 뒤늦게 숨어 있던 잠재력이 발현되었나 싶게 으쓱해졌다. 아마도 나는 노래가 아닌 자신감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나를 설명하는 게 이력서의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이제는 노래 한 소절로 읽히나 싶고, 그러고 싶어졌다. 오히려 그게 진짜 나일수 있으니까...


강사님은 이론수업도 하고 발성 연습도 시켰다.

들숨보다 날숨을 잘 나눠 쉬어야 숨에 음을 실어 노래를 하는 거라 했다.

가장 중요한 숨쉬기 방법도 알려주었다.

호흡법은 날숨에 집중해 매일 아침

운동처럼 해보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아침마다 가족들이 출근하고 나간 빈 거실에서 자유로움을 호흡 연습과 함께 누렸다.


들숨은 코로 적당히 들여 마신다.

날숨은 입을 가늘게 벌리며 이 사이로 1부터 숫자를 세어 최대한 오래 조금씩 나누어

30까지 내보내며 쉰다.


날숨이 길어야 폐활량이 커지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노래를 부르게 된다.

호흡 연습을 하면 자연스레 배를 움직이며 복식호흡이 되었다.


숨으로 노래하기가 박진영이 말하는

공기 반, 소리 반으로 부르는 노래가 되는가 보다.

목소리로 노래하는 게 아니라

숨 위에 노래 곡조가 올라타고 유영을 하고 있다는 걸 어느 날부터 알았다.

이론을 숨쉬기 연습하다가 몸으로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 거다. 신기했다.


그저 노래라는 야트막한 동산을 오르다가 불현듯 정상이라 쓰여있는 표지판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이제는 마음 편히 남의 눈치 안 보고 소리를 낸다.

아직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그저 나좋아서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이제 난 J가 부럽지 않다.

물론 아직도 J 만큼 잘하지 못한다.

그저 J 스타일의 노래를 따라 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노래 부르기가 즐거워졌다.

노래를 하면 편안하고 행복하다.

노래는 무엇일까?

굳이 노래의 의미를 찾아보라면

나만의 기쁨이다.


소리에 마음을 실어 보내니 마음에 쌓였던 복잡한 감정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든다.


노래에 몰입하는 동안 현재란 시간이 행복하다.

기쁨이란 단어가 저절로 가슴속에 오른다.

기쁨에 종류가 많지만 노래는 특별한 기쁨을 준다.

내 마음에 날개도 달아 주었다.

노래의 날개란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하늘에 천사가 산다면

천사는 노래가 되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천사만큼 선하지 않을지라도

노래를 하는 동안에는 우리도 천사가 된다.


부러움에서 시작한 노래가

내 마음에 날개까지 달아주었다.


그저 내 목소리와 정서에 맞는 노래 한 두 곡쯤 어디서나 누군가 귀기울여 들어줄 만큼 부르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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