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진영이 말했다.
노래는 공기반 소리반으로 부르는 거라고
이 말을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했다.
다른 건 얼추 따라 하는데 도무지
노래 부르기는 자신이 없어서다.
보통 노래를 부르는 기회는
모임의 뒤풀이에서 이어진다.
언제나 불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노래방 행렬에 끼지 못한 채
눈치를 보다가 도망가기 바빴다.
그 심정 아시는 분 이해하실 거다.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독점한다고
노래를 잘 불러 젖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이라면
뒤꽁무니라도 따라가겠지만
나는 부르는 쪽도 듣는 쪽도
아니 아니요 쪽이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이 어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서 젤로 부러운 사람이 노래 잘하는 사람이다.
J 는 친구의 동창이다.
친구와 만남의 자리에서 동석한게 인연이 되어 가까워졌다.
자신이 말하는 소박한 외모(일명 옥떨메)로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거대하게 보수 공사를 볼 요량으로 성형외과에 가서 견적을 봤다고 했다.
적당한 키와 몸매에 성격도 무난하고
목소리 등 모든 게 평균 이상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살았지만
딱 하나 납작한 코와 각진 턱 ,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앙징맞은 눈이
문제라며 한숨짓다 마음을 먹으셨단다.
다행히 괜찮은 의사를 만났다. 수술이 간단하지 않다는 수술도 문제지만 회복하는데도 건강상에 심각한 문제가 올수도 있고 아무리 첨단 의술로 수술을 받는다해도 지금의 인상과 다르게 바뀐다고 했다. 지금과 다른 분위기의 사람이 될 거를 예상하라 했다. 의사가 수술을 고려하라고 설득할 정도로 돈보다 양심적인 의사를 만났거 같았다.
50대 중반은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나이라는 숫자만큼 겁도 많아졌다.
사업도 잘되고 애처가인 남편과 잘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흔들릴까 걱정이 앞선다했다.
지켜보던 남편이 지금으로 충분하다며 말리는 걸 핑계 삼아 아니 위안 삼아
J는 평생의 숙제를 접었다.
대신 J 는 어디서나 여왕 대접을 받는
단 한 가지 강력한 그녀만의 무기가 있다.
바로 노래다.
장윤정의 "애가 타"는 장윤정보다 더 애절하고 간드러진다.
환호를 넘어 탄식을 들을 정도로 완벽한 노래솜씨다. 언제 어디서나 사랑받는 우리들의 가수다. 모두 J 를 부러워 했다.
노래로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감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자랑스러워 보였다.
나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 아니 적어도 노래방에 가는 길만이라도 편안한 마음이 될 만큼만이라도 부르고 싶었다.
작년 7월 동네 문화센터를 기웃거리다 노래교실에 등록했다.
아침 10시 수업인데 오자마자 강사가 노래를 시키는 거였다.
물론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잡는 분도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요. 나중에 하면서 다음을 기대하라며 뒤로 뺐다.
마이크도, 앞에 나섬도 두려웠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또 줄줄이 마구잡이로 시키는 거다.
노래 부르기에 앞서 노래 부를 마음부터 앞으로 나서라는 거다.
일명 마이크와 무대 공포증 벗어나기.
잘 부르고 못 부르고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했다.
그저 사람들 앞에 나와서 불러 보라는 거다.
참 특이한 강사다.
쭈뼛거리며 나가니 음도 틀리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에 심지어
목을 쥐어짜는 소리를 냈지만 그게
창피한 게 아니라 단상 앞에 나가서 아무렇게라도 끝까지 부르는 게 중요한 거라고 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니 어느새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아무렇지
않아졌다.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노래 부르기에 첫발을 떼인 셈이었다..
배짱이란 게 생겨버리고 말았다.
노래 부르기에 조금 자신감이 생기자
곡목을 넓혀 보자는 욕심도 생겼다.
다음에는 합창반을 수강했다.
강사는 테너를 전공한 성악가란다.
피아노 반주로 직접 노래를 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노래 책에는 이탈리아어의 뮤지컬 곡,
오페라 아리아, 우리 가곡도 들어 있었다.
특히 김효근이란 아트 팝이란 가곡 장르를 연 작곡가의 노래가 마음에 와닫았다.
첫사랑, 눈 같은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로 알려져 있다.
"you raise me up'을 부르면
마음에 기둥을 세운 듯 벅차올랐다.
뜸북뜸북 뜸북새~ "오빠 생각"은 이렇게 마음이 아련하고 정겨운 노래였나 싶었다
"바닷가의 추억"이나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부르면 나는 그곳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었다.
합창은 처음에 10명 남짓 하다가 4학기 1년을 다닌 동안에 40명 넘게 늘어 났다.
사람들이 많아지니 노래하는데 부담감도 줄었다.
처음에 내 목소리가 사람들의 소리에 묻혔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도드라질 정도로 드러났다. 목청도 커지고 나만의 노래가 되어가는거 같았다.
나는 곱고 따뜻한 느낌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해주었다. 숨어 있던 잠재적 재능이 발현되었나 싶게 으쓱해졌다.
강사는 이론수업도 하고 발성 연습도 했다.
들숨보다 날숨을 잘 나눠 쉬어야 숨으로 음성을 실어 노래를 하는 거라 했다.
가장 중요한 숨쉬기 방법도 알려주었다.
날숨은 매일 아침 운동처럼 해보라고 숙제를 냈다.
30번씩 천천히 숨을 쉬며 연습을 했다.
들숨은 코로 적당히 들여 마신다.
날숨은 입을 가늘게 벌리며 이 사이로 1부터 숫자를 세어 최대한 오래 조금씩 나누어 내보낸다.
날숨이 길어야 폐활량이 커지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노래를 부르게 된다.
호흡 연습을 하면 자연스레 배를 움직이며 복식호흡이 되었다.
숨으로 노래하기가 박진영이 말하는 공기반 노래가 되었다.
목소리로 노래하는 게 아니라
숨으로 노래를 한다는 걸 어느 날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제 난 J가 부럽지 않다.
물론 J 만큼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
아니 J 스타일의 노래를 따라하지 못할 뿐이란걸 알았다.
나는 노래 부르기가 즐거워졌다.
노래를 하면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노래는 무엇일까?
굳이 노래의 의미를 찾아보라면
나만의 기쁨이다.
소리에 마음을 실어 보내니 마음속 온갖 쌓였던 감정이 말끔히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노래에 몰입하는 동안 행복해서 기쁨이란 단어가 저절로 차오른다.
기쁨에 종류가 많지만 노래는 특별한 기쁨을 주었다. 내 마음에 날개도 달아 주었다.
노래의 날개란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노래를 한다고 모두 천사가 되고 신사가 되는 건 아니지만
노래를 하는 동안에는 천사가 될 수도 신사가 될 수도 있었다.
사람이 누구나
노래 한 곡 정도는 자신 있게 부를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소리 영역에 맞고,
정서에 맞는 노래를 불러 보자.
내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