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진걸 창밖에 나뭇잎이
변한 걸로 알았다.
올해 어머니와 이별 후 계절의 변화가
느리게 다가온다.
더우니까 짧은 옷 입고
추우니까 긴 옷을 꺼내 입을 뿐이다.
날씨가 추워지니 3리터짜리 커다란 텀블러를 꺼냈다.
커피포트, 커피 메이커를 치우고 그 자리에 커다란 텀블러를 꺼내 놓았다.
아침에 주전자에 물을 끓여 여기에 담아 놓으면 하루종일 따끈한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따뜻한 물이 필요할 때 써도 되고 수프를 만들어 먹기도 해서 여러모로 요긴하다.
텀블러 하나가 가스레인지, 티포트, 커피 메이커, 전자레인지 등 몇 개의 기기 역할을 대신해 주니 기특하다.
나는 단순한 살림살이를 좋아한다
주방 살림살이가 그리 다양하거나 많지 않다
대개가 결혼할 때 혼수품으로 준비했던 것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식기 홈세트도 다쓰지 못했다. 나눔으로 정리하고 자주 시용하는 것 몇 개만 남겨 놓고 쓰고 있다.
가전도 심플한 기능이 있는 걸로 사서
오랫동안 고장도 없다.
나중에 부품이 더 이상 없어서
고치지 못할 때까지 쓰고 버리자주의로
산거라 고장도 없이 무던하게 오랜 시간 주인과 동거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나 전자레인지, 오븐도
나이가 많다.
가끔 오브제 같은 신형이 빛나보여 유혹되기도 하지만 결국
익숙함과 정든 것에 길들여져
작별을 못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것으로 늘 두었던 장소에
자리해서 쓰는 게 좋아 그리 살고 있다.
5년전 오래 살던 집을 떠나 이사하게 되었다.
동네 중고물품 사장님을 집으로 불렀다
쓸만한 것들은 버리기도 망설여지게 되어 중고로 팔아볼 요량으로 견적을 보려 했던 거다.
정리할 것들을 모아보니 거실이 꽉 찼다 에어컨, 턴테이블, 엠프 같은 가전은 물론 결혼할 때 받은 몇 개의 커다란 액자 등 어디에 있었는지 잊고 있던 것들이 구석구석 나타나서 거실이 가득 찼다. 잊고 있던 것들이 나타나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함을 넘어 불가사의했다.
어디에 이리 꼭꼭 숨어 있었단 말인가!
살 때는 기대하고 따져보고 발품 팔고 고심하며 산 것들이다.
세월의 숫자만큼 물건의 갯수도 비례하고 있었다.
그림 액자나, 인테리어 용품은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반포 상가나, 이태원을 돌아 다니며 한개씩 두 개씩 집에 들인 것들이다. 살때는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새끼손톱만큼도 설렘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말 그대로 새 집으로 데리고 가지 못해
버리고 가야 할 처치곤란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대다수는 돈 한 푼 못 받고 거저 주게 되었다. 심지어 스티커를 사야 처분할 수 있다고 스티커를 사라고 했다.
중고품 사장은 공짜로 가져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며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물건 사들임에 더 신중해졌다. 많은 물건은 맥시멀리스트인 남편 덕분인지라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집은 구석구석 공구상점이고 낚시 가게이며 문구점이다.
새 집에 이사 오고 나서도 거실 팬트리에는 남편의 낚시용품으로 가득하다.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하며
욕심만 커져 채운 것들이다.
필요 소비가 아닌
욕망소비가 불러들인 결과물이었다.
종류별로 없는 게 없다.
팬트리 안을 열면 한숨이 나온다.
작년부터 취미가 어학으로 바뀌어
희미한 옛사랑 신세가 된 낚시 용품은
뽀얗게 먼지를 얹고 바깥 구경도 못하고 5년째 저리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싹 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른다.
작가 조슈아 베커는 이런 내 마음을 보고
워워하며 말린다.
"버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다시 사지 않는 거라우"
말한다
보통 미니멀리스트는 버리는 삶으로 간소함을 추구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작고 간소한 삶은
1. 일단 그냥 둘 것
2. 종류별로 모아 장소를 옮길 것
3. 그 다음 처분할 것
4. 비워둔 장소는 다시 채우지 말 것
이런 원칙을 지키라 한다.
이게 진정한 간소한 삶이라 한다.
섣불리 마구 버리면 반드시 다시 사게 되기 때문이다. 물건은 필요해서 물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버리고 싶은 마음을 창고에 밀어 넣는다.
가족 한 사람의 가치관을 가족 모두에게
강요할 수 없다.
적어도 내 공간은 내 가치관대로 유지한다.
주방과 침실은 그렇게 내 맘대로 정리해서 심플하다.
심플하니 청소도 쉽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정돈된다.
지인들이 와서 보고 침실에 침대와 작은 서랍장만 놓인 걸 보고 감탄한다.
오직 쉬고 잠만 자는 곳이다.
스탠드도 어떤 가전도 없다.
예민한 내가 잠들기 좋다.
남편도 자신의 취향이 넘치는 서재에서 침실로 오면 바로 꿈나라행이다.
미니멀리스트는 대단한 삶의 방식이 아니다.
개개인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건이 많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고
단출해야 반드시 좋은 거라 말할 수 없다.
한때 물건을 살 때 풍요로워져서 좋았다.
비운 마음을 지갑을 열어 채웠던 거다!
넘쳤던 소비로 한동안 절제하는 삶으로
바꾸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소비욕을 멈추고 참으니 내 삶의 초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보였다.
3~40대는 온갖 물건에 욕심을 부리는 시기였다. 그 이후 자식들이 성장해서 독립을 하고 은퇴를 하면 저절로 물건에 대한 욕망도 줄어든다.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남의 생활 방식을 따라 하지 말고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쪽으로 집중하다 보면 나만의 삶의 방식이 보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