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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성희 Dec 16. 2024

추억의 상자

생기 발랄  여중생 이야기


중 3 시절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면  뭐를 하든  재미나고 신났다. 함께라서  뭐든 그냥  좋았다.


고교입시에는  200점의 성적이 필요했다 거기서 체력장이 20점이나 차지했다. 10프로면 점수 배분이 큰거였다.

나머지 180점은 학과 성적으로  이루어졌다. 인문계 고교는 웬만하면 연합고사에 합격했지만 우리는 안심 빵!

쉽고도 가볍게  커트라인을 넘게 해주는 체력장 점수를 중요하게 여겨 만점을 받으려고 계획을 짰다.

어쩌면 우리 반에서  어울리던  열댓 명의 무리의 생각이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똑똑한 결정이기도 했다. 


교실에 앉아서 공부하고 수업이 끝나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일제히 운동장에 나왔다. 하루종일 의자에만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모두 반짝반짝 생기가 발랄해졌다. 간단히 준비 운동을 하고

부족한 종목을 연습하러 각자 운동장으로 흩어졌다.

 대다수의  애들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체력장 연습을 하러 하교를 미루고 운동장으로 나온 거다.

윗몸일으키기 , 도움닫기, 철봉 매달리기, 오래 달리기 (800미터), 100미터 달리기, 멀리 뛰기가 체력장의 주종목이었다. 

각각은 합격 기준치가 있었고 나중에 나온 결과치는 9월말 이전과 이후의 점수 배분이 달랐다.

나는 11월이 생일이라 좀 더 유리하게 점수를 받았다.  웬만하면  20점 언저리를 받았다.


다들 방과 후 체력장 연습이 뭐라고  

닦아가며 열심히도 했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아닌데 아니 학교대표 선수 꽁무니도 따라갈 만큼의 체력인 진지했다. 아마도 첫 번째 치르는 입시라 긴장이 되었던 거 같고, 조금만 노력하면 가볍게 얻을 수 있는 기본 점수이기에 

신경을 썼던 거 같다.


연습하다가 벤치에 앉아 쉬면 어김없이 비명소리가 번갈아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송충이 군단이 우리들 머리 위로 우수수 공격을 시작했던거다.

희한하게 우리가 쉬고 있으면 일부러

놀라게 하듯 장난꾸러기 남학생처럼 

송충이 나라 법으로 정해놓은듯 마구 떨어졌으며,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내는 아이들한테 유독 집중해서  나뭇잎에 있던 나머지 송충이 소대원까지 번지점프를 하며 머리와 어깨로 쏟아져 내려왔다.

자꾸 보다보니 나중에는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고 반응이 약하거나 무던한 친구들한테는 신기하게 송충이 비를 맞지 않았다.

미물도 사람을 가려서 대하나?

어디나 사람 차별을 한다고 깔깔거렸다.

요샌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도 송충이를 만나기 드문데 옛날에는 공기가 맑고 매연도 적어서인지 손가락만 한 연두색 송충이가 득실득실했다.


그렇게 체력장 연습을 하고 수돗가에서 땀을 씻고 나면 노을이 지고 있었다.

체력장 연습이 끝나면 우리를 기다리는 장소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을 가려고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동네에 구불구불한 골목을 한참 돌고 돌아 동네 사람들만  아는 튀김가게가 다. 살림집 한쪽개조해

가게를 만든 작고 아담한 가게였는데

젊은 아저씨가 주인이었다. 친구

말로 법과 대학을 다니다 고시에 번번이 낙방을 하고 직장대신 가게를 연거라 했다.

우리는 각자 용돈을 모아 큰 플라스틱 접시에 담은 야채튀김을 시켜 먹었다. 떡볶이나 어묵보다 싸고 푸짐했으며 바사식하고 고소한 향이 작렬했다. 젠가 졸업 후에 그 생각이 나서 찾아볼까 하고 골목을 헤매었는데 튀김집을 결국 찾지 못했다

그 시절 그때 친구들과 운동 후에 먹어서 맛있었는지 그 후 많은 튀김을 먹었어도 그때만큼 맛있지 않았다. 튀김보다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기억이 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분식점도 드문 시절이라 간식은 학교 매점이나 문방구에서 떡볶이나 어묵, 딱딱하고 식은 과자같은 튀긴 만두를 팔았었는데 우리가 먹던 곳에서 파는 튀김은 새로운 별미여서 더 생각이 났다.

중3 여학생이면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할 나이라 다이어트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체력장 연습 후엔  개나 줘버려 하고 게걸스럽게

 "바삭바삭 "

"와그작와그작" 

배 터지게 먹었다. 소화시킨다고 먼 거리의 집까지 흐뭇한 마음으친구들과  손을 흔들며 터덜터덜 걸어왔다.

나중에 우리 하교 시간이 늦어지니까 부모님이 걱정도 하시고 할 일도 있어서 평일에 연습을 못하게 되었다.

대신 토요일은 일찍 끝나니 함께  모여서  종종 체력장 연습을  했다.


여자 아이들은 방과 후 집안 일을 돕거나 심부름이나 동생을 돌봐야 다.

나도 막냇동생이 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세수도 시키고 밥도 먹이고 챙겨야 했다.

동생이 어린 친구는  업어주고 기저귀도 갈아 주고 같이 놀아 주어야 했다.

우리는 학교생활과 집안 일을 하며 바쁘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도  알았고  어릴 때부터 동생들도 돌보고 키웠기에 아이 키우는 예습도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생활이겠지만

지나고 보니 그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추억 한 자락이라 떠올리게 되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하루하루 분주한 생활 속 깨알 같은 작은 시간 속에서 친구들과 우정도 쌓고 예쁜 추억도 차곡차곡 만들어 가며 세상을 배우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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