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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Oct 17. 2024

결혼기념일과 칭찬 스티커

 우리 부부는 법정 공휴일을 택해 결혼식을 올렸다. 나라 전체가 축하해 주는 듯한 착시현상을 즐기고 싶었다. 그날이 바로 1987년 4월 5일, 청명절(淸明)이자 식목일이었다. 청명절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고 했으니 이날이야말로 희망과 기대에 부푼 날이었다. 그런 식목일이 2006년에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아쉽고 씁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나마 국가 기념일 자격을 잃지 않았으니 그만도 다행 아닌가. 

 올해 결혼기념일은 운 좋게도 일요일이었다. 결혼 33주년, 그 사이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생겨났고 부모님과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이마의 주름과 턱살이 늘어났고 흰머리는 성성해졌다. 그러나 추억이 쌓이는 만큼 살뜰한 정(情)도 더욱 두터워졌다. 기둥 굵은 나무가 강풍을 이겨내듯 나이가 늘어날수록 더 꿋꿋해졌다. 

 하지만 안식구의 갱년기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버릇처럼 철없이 살고 있다. 안식구에게 지청구를 들을라치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죄를 내가 잘 알렸다!’ 그러다 보면 모든 게 웃고 넘길 일들이었다. 

 딸이 가져온 선물을 거실 벽에 붙였다. 칭찬 스티커였다. A4 용지 크기의 두꺼운 종이에 칭찬 스티커 50개를 붙이는 거였다. 어제는 마늘 잘 깠다고 스티커를 받았다. 오늘은 음식물 쓰레기 잘 버렸다고 스티커를 받았다. 나도 아내에게 가지무침 잘 만들었다고, 운동 열심히 했다고 스티커를 붙여 줬다. 50개 먼저 채우는 사람이 점심을 살 참이다. 그렇다. 이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로 칭찬할 일만 남았다. 

 창밖이 훤했다. 보름을 앞둔 달님이 풍선처럼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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