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뒤에 감춘 외로움과 의리
"Miss Lee ~~ Good morning!" 아침이면 우렁차게 왕왕왕 ~ "Hi! How are you today?" ... 시끌시끌 닌자 납시오다.
오늘의 손님들과 아침 인사와 수다로 가게 문을 연다. 밤사이 뭐가 궁금한지 동네 안부로 시작되는 이 동네 여장부 걸크러시다. 닌자 모르면 이 동네 사람 아니다. 멀리서 봐도 닌자. 포스가 특별하고 남다르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그녀의 모습은 이 동네에서 익숙한 일이고, 닌자가 없는 날은 손님도 뜸해진다.
미국에서나 통하는 헤어스타일은 촌스럽고 이상한 나라에서 온 닌자만의 몇십 년 동안 변함없는 한 가지 스타일. 앞쪽 이마는 단발에 베이지색, 옅은 밤색 또는 노란색 머리를 섞어서 만들어 쓴 가짜 긴 머리 가발을 좋아한다.
머리숱이 워낙 없어서 매주 직접 만든, 누가 봐도 독특한 그녀만의 가발 스타일이다. 우리 짧은 머리도 무척 더울 때 유지하기 힘든데, 특히 여름에 긴 가발을 쓰고 지낸다는 것이 힘든 고문일 거다.
그러나 바꿀 생각 없는 사계절 이 머리 스타일은 변함없다.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기 위해 바지 뒷주머니엔 항상 도끼빗이 껴있고 10분 간격으로 빗질을 해댄다. 이는 자연스러운 오랜 행동으로 이어진다.
흑인과 일본인 부모의 혼혈인 닌자. 눈동자는 동그랗고 큰 눈에 항상 색깔 있는 콘택트렌즈를 껴서 고양이 눈처럼 보인다. 굵은 허리에 뚱뚱한 몸매임에도 '챔피언' 벨트로 포인트를 준다. 엉덩이는 커서 청바지가 항상 쫄바지처럼 보인다.
목소리는 크고 걸걸하여 본인이 마치 보안관(Security)이 된 듯 허풍을 떠는 제스처를 보이며 동네 형처럼 행동한다.
부모는 다른 곳에 거주하고, 본인은 내가 사는 주(State)에 중국의 대표적으로 꼽는 커다란 개 한 마리(너무 순하고 큼직한 차우차우)와 흑인가 어디쯤 산다.
닌자의 나이는 당시 40대 후반이었을 것 같은데 항상 훨씬 어린 나이로 속이고 있었다. 늘 하는 말 중 거짓말이 반 이상으로 알아듣기만 하면 됐다.
본인의 우월성, 자존감, 자존심이 강했던 그녀는 도벽이란 병을 갖고 있었고, 또한 도박꾼이다. 돈만 조금만 있으면 바로 카지노행. 착한 성품과 활발하고 눈치 빠른 언변으로 그때그때 모면하는 수단이 보통은 넘는다.
유난히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 사람과 유대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고, 한국 음식이면 자존심마저 모두 내려놓을 정도로 한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단점은 가게에서 근무할 때면 반드시 흑인 친구들과 공모하여 가게 물건을 표시 안 나게 빼돌리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모른 척하다가도 심하다 싶으면 바로 제재에 들어가나, 교묘히 방법을 바꾸어가며 행하는 그녀를 당할 수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 중 일부는 흑인을 상대로 하는 장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해서 대립하지 않고 잘 꾸려나가야 하기에 매일 부딪히는 것도 쉽지 않아 묵인해 주기도 한다.
그 점만 빼면 정 많고 사랑스러운 친구인데 안쓰러울 때가 많다. 훔친 물건으로 동네 애들에게 되팔아 도박을 하러 가기에 늘 함께 일해도 집 안 도둑 지키는 게 더 힘들다. 그렇게 여러 번 그만두게도 해봤지만, 잃는 것보단 얻는 것이 있기에 정을 떼기 쉽지 않았다.
의리와 정이 정말 강한 그녀는 우리 가게 직원이기 전에 가족처럼 의지하려는 면이 더하다. 오랫동안 보내온 세월만큼 그녀도 도박과 도벽을 고치려 애쓰는 모습도 엿보여서 애잔했다.
돈도 못 버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쪼들려 본인 옷 하나 제대로 사 입고 다니지 못한 상태. 이런 닌자가 카지노에 오랫동안 갖다 바친 크레딧(신용)으로 카지노 호텔 식당에서 1주일에 한 번 실컷 먹을 수 있는 랍스터 파티에 우리 가족은 종종 공짜 파티에 입성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게 좋지 않으니, 닌자에게 도박과 도벽을 멈춰주길 부탁하였고, 닌자는 우리에게 남은 양심으로 이렇듯 공짜 파티로 대신하려 하면서 미안함을 표해준다.
"그 마음은 잘 알지만... 무엇보다 닌자야, 여기서 인제 그만 멈추고 반듯한 삶을 살기 바라. 넌 그것만 아니면 아주 좋은 사람이다"라고 때때로 말해주었다.
엄마 곁을 너무 일찍 벗어나 홀로 긴 세월을 살아온 만큼, 외로움으로 우리 가족 품에 스며들고 싶어 했던 애잔함을 잘 알기에 언제나 마음 한켠에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했나 보다.
멀리 있는 엄마에게도 자주 가지 못하고 전화로만 전하는 삶의 현실을 멀리 있는 노모는 안타까워하며 1년에 1만 불(약 1,300만 원)씩 딸 닌자를 위해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남의 도움받지 말고 자립해서 정말 정신 차리고 늙음 앞에 고달픈 생활 접고 잘 살기 바랄 뿐. 호탕하고 철없어 보이는 닌자 씨, 이제 당신도 할머니입니다. 착각은 그만, 건강 챙기며 잘 살아요.
지금도 오래전에 그곳을 떠나왔지만 수시로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60살이 훌쩍 지났을 텐데... 닌자 닌자....!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Miss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