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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Dec 25. 2024

송년회

고향의 향수를 안고

타국 생활 중 가장 그리운 것 중 한 가지는 명절 때, 가족 행사, 기념일, 경조사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의 아쉬움이었다. 서로 멀리 살고, 바쁘다는 핑계로 간간이 전화나 메시지 정도로 안부를 전하고 살아왔어도, 직접 대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미국에서 삶을 이룬 한인들의 삶이 모두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게 고향의 향수를 안고 살아갔다.


때로는 서로 형제보다 자주 대면하는 친한 지인들끼리 연락해 간간이 만남을 갖기도 하면서 위로받고 격려해 가며 지냈지만, 내 형제, 내 가족, 내 친구만큼 충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삶으로 쉽게 접할 수는 없어도, 그 허한 구석을 남의 곁에서 채워가며 명절이나 큰 행사가 있으면 서로 돌아가며 지인들 집이나 본인들 집에 초대해 명절 분위기 내듯 모여 얼굴 마주 보며 한 해의 수고로움과 새해맞이 경축제가 이루어진다. 


끈끈한 이웃 사랑 가득 담아주는 애정을 한없이 쏟아 놓게 된다. 이때는 한 가족처럼 서로 기쁜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들 만들어 나누어 먹고 밤새 회포를 풀어낸다. 매번 명절날이나 송년회에 모여지면 다음 날까지 자고 먹고 놀며 이야기보따리 수다가 이어졌다.


이럴 땐 꼭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느낌이라 위안이 되고 행복이었다. 복작복작 서로들 웃고 떠드는 가운데 화기애애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고향의 향수를 지워냈다. 오랜 타국 생활을 이어 오면서 서로 마음으로 의지하고 정을 나누다 보면 남이 아닌 가족이란 굴레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타국에서 맺어진 인연이고 동지애가 느껴지므로 더욱더 특별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같은 한국 사람으로 통하는 감정이기에 거리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매년마다 오는 명절이나 송년회 때 의미 있게 치러지는 행사 모임이었고, 아주 소소한 것이라도 서로가 챙겨주고 아껴주는 마음을 전해 왔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았을까 한다. 채워지지 않은 빈 한구석 한켠에 모인 이웃 사람들과 한 해 한 해를 맞이하고 보낼 수 있어 감사했다.


지금은 고국에서 맞이하는 명절이고 송년회이지만, 타향살이 몇 해던가. 그때의 시간과 시절 동안 함께 했던 지인들과의 추억이 밀려온다. 같은 문화, 같은 민족이라는 것만으로 크게 위안이 되었던 나의 지인들.


한 해를 보내는 올해는 고국에서 맞이하는 송년회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타국에서 지인들과 매년 함께 행복했고 설렜던 지난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며, 이제는 이맘때쯤이면 꺼내 보게 될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오고 지는 해를 맞이할 때는 언제나 다른 그리움으로 남겨질 것이다.


그토록 가슴 사무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어 했던 고국의 향취를 이제는 흠뻑 느낄 수 있는데, 이 한 해 송년회는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맞이할지 다른 설렘으로 가득 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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