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lviatis
Sep 13. 2024
책 안 읽는 작가
작가는 무슨...글 쓰는 건 좋은데 읽는건 그닥.
대학 때 알게 된 친구 중 하나는 신춘문예 등단이 꿈이었다.
동네에 스타벅스 있는 곳은 빤해서 여기 저기 돌다 보면, 어느 스타벅스 구석자리에서 헤이즐넛 시럽 두 펌프 넣은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책을 읽고 있는 친구을 찾을 수가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듯 반갑게 다가가 같은 자리 앉아서 나는 다이어리 꾸미기나 숙제를 하고 있고, 그 친구는 혼자 책을 읽으며, 갑자기 꽂히는 구절이 있으면 나에게 읽어주곤 하였다.
나는 전생에 골든 리트리버 였는지, 사람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사람으로부터 오는 상처로 힘들어 할 때가 많았는데, 그 친구를 알고나서부터 많이 치유가 됐다.
그 친구가 늘 하는 이야기는, 진정한 친구란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나도 그 마음 그대로 어제 만났다 헤어진 마냥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 전의 나는, 친한 친구와는 거의 매일 문자를 주고 받아야 그 사이가 여전히 돈독하다 느끼고 안심을 했었고, 행여 하루 이틀 문자가 없을 때면 혹시 이 친구가 나한테 서운했나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러니 그 친구가 나에게 주는 '우리는 매일 문자를 주고 받지 않아도 친하다'는 우리 우정에 대한 신뢰 덕에 나는 친구에게 집착(?)하는 버릇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자유가 주는 해방감은 내 머리 속에 차지하고 있던 많은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걷어주었고, 그렇게 공간이 생긴 머리 속에는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만날 때마다 그 친구는 읽은 책이 쌓여갔고, 그 안에서 감명 받았던 구절을 꼭 낭독해주며 그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어떤 감명을 주었는지를 참 실감나게 나눠줘서, 나는 손 안대고 코 푼 격으로 문학을 접했었다. 한 참 몰랑몰랑한 감수성을 지닐 20대의 우리는 그렇게 그 친구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를, 그리고 나는 나이가 먹어서도 그 친구의 글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유학길에 올랐고 그렇게 헤어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는 미국 친구들에게 지기 싫은 오기로 북클럽에 들어, 한 달에 한 번 겨우 그 달의 읽을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한다. 보통 모이면 애들 얘기로 빠지고, 와인 마시고 노는게 전부가 되기는 한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책을 읽으니 나도 꽤나 의식이 있는 사람인가봐 하는 착각이 들 수 있게는 하지만, 나의 깊이는 나도 잘 안다. 얕다. 인스타그램에다 쏟아내듯 적는 글들에 주변 친구들이 참 고맙게 좋은 반응을 해줘서 신나게 글을 적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 나를 아무도 모르는 플랫폼에 더 자유롭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사실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참 입체적인 캐릭터셨다. 모순적인 기질들이 한꺼번에 공존한다고 해야할까? 고인이 되신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친이신 이병철 회장님 사업에 도움도 드리고 자문도 드렸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큰 획과 흐름에 장소제공을 해주신 장본인이시다. 그런데 할아버지께 들은 구체적인 일화들만 모아서 묘사하기에 나는 역사적인 배경 지식도 부족하고, 한 권의 책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개연성도 없을 것 같아 차근차근 공부를 하고 자료수집에 대한 계획만 있다.
좌충우돌 나의 유학생활기를 인스타그램에 적을 때도 공감을 많이 받았다. 또, 애를 낳고 워킹맘이 되면서 생기는 애환을 나눌 때는 공감도 되지만 위안도 되었다는 몇 안 되는 지인들의 반응에 힘입어 일상 생활을 그냥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 얘기지만, 소재가 참 다양하게 나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유학 생활 마칠 무렵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려고 보니 남편의 부모님께서 어린시절 이혼을 하시는 바람에 나는 시댁이 둘이네?! 이 이야기들도 풀어내기 시작하면 꼬박 사흘밤낮을 새고 수다를 떨어도 끝나지를 않을 것이다.
하여튼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만은 않은 나의 삶과 그 과정에서 차고 지는 내 감정변화를 나의 딸이 나중에 커서 읽고는 위로가 됐으면 싶은게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다. 깊이도 없고, 없을 예정이고, 문학적 인용이 많은 작가들을 위한 글이 아닌, 그냥 평범한 아줌마가 옆에서 수다떨듯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쉬운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여전히 나는 꾸역꾸역 친구들이 정해 놓은 '이 달의 책'을 북클럽 만나는 날 며칠을 남겨놓고 똥줄 타게 읽어갈테고, 계속해서 남의 글 읽으려고 노력은 하겠지만은, 의식의 흐름대로 바뀌는 내 감정을 담는 내 글에 당분간은 집중해볼까 한다.
#책을끝까지읽는거 #힘들어하는편 #에디에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