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lviatis
Sep 19. 2024
요새 인스타에 보면 자가 진단이 가능한 그런 검사들이 있다.
누가 보내줘서 해 본 ADHD에서는 50점 만점에 보통 주위 친구들은 한 28에서 30 받을 때 나는 48점이 나왔다.
근데 사실 ADHD는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과체중이다'라고 진단할 수 있을 만큼, 자명하다.
딱히 주위가 산만한 거 같지는 않지만, 사실 그 진단 기준은 90년대에 미국에서 주로 남자애들에게서 많이 나타나서 ADHD의 흔한 증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요새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ADHD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하여 재조명되고 있다. 그래서 요새 들어 여자들 사이에서 성인 ADHD가 늘어나는 것 같은 추세지만 사실은 이제야 진단이 되고 있는 것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인스타 같은 매체에 더 많이 떠도는 것 같고 알고리즘을 타고 더 내 피드에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나는 날짜 개념이 너무 없다. 누가 '시어머니 생신이 언제냐'고 물으면 나는 나의 두 시어머니의 날짜를 정확히 말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당일 날에는 새하얗게 잊고 있을 때가 많다. 어버이날, 엄마 아빠 생신은 그래서 (자랑은 아니지만) 한 번도 제 때 챙겨드린 적이 없는데, 시부모님 생신마저도 그렇게 했다가는 집안 욕보일까 봐 정말 엄청난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친구들이 "이번 주 금요일 뭐해"라고 물었을 때 단 한 번도 스케줄을 제대로 알고 있는 적 한 번 없고, 약속이 있는데 또 잡는 경우도 허다해서 매번 번복해야 하는 게 내 일상이다.
그런 내가 딸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니, 어느 날은 애들을 학교에 잠옷 입혀서 보내야 하는 날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학교에서 단체 사진 찍는 날이라 단체티를 입고 가야 하는 날도 있어, 여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다. 내 일이면 그냥 "앗, 까먹었어요, 미안해요"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딸아이가 나 때문에 행여 피해를 볼까 그런지 아주 잔뜩 긴장을 하고 지낸다. 그래서 휴대폰에도 넣고, 플래너에도 적어 넣고, 남편에게도 일러두고, 달력에도 표시를 해둔다. 하나 일이 있으면 여러 달력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입력이 잘 안 된다.
ADHD가 있는 나는 한 가지 일을 몰두해서 하기 어렵다. 근데 그 한 가지 일이, 새로, 처음 해보는 일이면, 그 난이도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매료되어 해결한다. 그 일을 해결하는 동안 다른 일은 모든 게 다 올 스탑이다. 그래서 그 시간에 애가 목욕을 해야 한다던지, 아니면 그 시간에 잠을 재워야 하거나, 뭔가 내가 집중하던 일에서 벗어나야 하면 굉장히 짜증이 난다. 설거지도 식세기에 다 되어있는 그릇들을 장에다 다 챙겨 넣는 일은, 이미 아는 것을 하는 루틴 한 일이라 여겨서 그런지 너무 지겹고 싫증 나는 일이라 미뤄두지만, 빈 식세기에 그릇을 하나씩 착착 넣는 일은 별 거부반응 없이 잘 넣는다. 왜냐, 빈 공간에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새로운 패턴으로 집어넣는 일은 새로운 일이니까. 빨래를 하는 것도, 개는 것도 사실 너무 좋아한다. 옷마다 그 각도대로 딱딱 접어서 개는 성취감이 있는데, 다 개 놓은 옷을 옷장으로 넣는 과정은 또 너무 지겹고 따분해서 싫어한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육아, 살림 팁, 새로운 레시피, 정신과 상담 등으로 가득 차서 올라오는데 갑자기 어느 날 어떤 정신과 의사가 올린 피드를 보고 또 절망감이 들었다.
"남이 상처받더라도 꼭 해야 하는 말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사람, 한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돌려 듣는 것을 즐기는 사람, .."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저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자폐'가 있다는 것이다. 아, 나 우리 시어머니들에게 뼈 때리는 말들 참지 못학고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지만 그러고 돌아서서는 후회하기를 매번 반복하고, 모르는 척 슥 넘어가줘도 되는 일들 굳이 입찬소리해서 뱉어내야 속이 후련한데, 그게 자폐가 있어서였던 것이다. 한 노래에 꽂히면 환청이 들릴 정도로 무한 반복으로 들으면서 이상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게 자폐 기질이 있어서인 것이다.
최악이다.
이런 내가 엄마라니. 한 생명체를 올바른 독립적인 개체로 키워내야 하는데, 이렇게 정신 산만하고 심지어 자폐도 있대. 우리 딸은 어뜩하나...
생각해 보면 내가 사회생활 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할 지경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실력이 없다 보니, 당당하게 성질대로 부리지는 못하고 납작 엎드려 사람 좋은 척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이게 뽀록 나기라도 하면 큰일이겠다 싶다. 지금 나의 위치는 예전과는 달라 아래 직원들을 시키면 돼서, 내가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들을 처음에 일으켜 돌아가게 하는 것까지만,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새로 주어지는 과업들을 흥미로운 퍼즐 대하듯 신나서 달려드는 편이라 일터에서는 내가 적극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긴 하다. 또 다행히 루틴한 일을 즐기는 사람도 있어서 그나마 부서가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언젠가 그 직원이 나가고, 그 일을 지겨워하는 직원이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를 않으면, 나는 또 괴로워지겠지.
이런 불완전한 엄마이기에 더 심리학이라던지 육아에 관련된 영상이나 책을 더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이렇다라는 자각이라도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그래서 요새 나는 지금 우리 딸을 키우면서 나도 키우는 중인 것 같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우리 딸에게서 안 생기도록 나도 고쳐보려 노력하느라 두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가장 말 안 듣는 고집 센 40년간의 아집이 있는 딸 (나!)랑 이제 막 몰랑 몰랑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우리 다섯 살짜리 딸 다 같이 키우느라....
언젠가는 나중에 우리 딸이 커서 이 글을 읽고 이해할 날이 오면, 부족했던 나의 교육에 원망보다는 이해를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이 상태에서의 최선을 선택했던 것이었음을 알아주는 날이 있겠지? 날짜 착각하고 늘 뭐 놓치기 일쑤일 테고, 분명 시간 까먹고 안 데리러 가는 날도 있고 할 테지만, 그래도 자연을 역행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따 4시 27분까지 늦지 않고 버스 정류장에 나가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