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lviatis
Aug 24. 2024
애 안 좋아하는 엄마
엄마가 되어가는 다양한 길
나는 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를 데리고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사람을 보면 강아지 만져봐도 되냐고 다가갔지 한 번도 유모차에 있는 애기 예쁘다고 눈길을 먼저 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런 내가 34살에 애를 가졌다.
미국에서는 임신하고 6주 차가 돼야 의사가 봐주는데, 접수원이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조금 일찍 초음파를 보게 되어 의사가 주 나이에 비해 태아가 작은 것 같으니 아직은 임신 소식을 아무에게 전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부디 태아가 무럭무럭 자라기만을 응원하며 한 동안 우리만 아는 비밀을 간직한 채로 지금 처음 겪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의미부여를 어떤 방향으로도 안 하려 노력했다.
그 후 안정기에 접어들자, 점점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직장 내 사람들에게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본인 임신 했을 때의 행복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축하를 건네왔다. 그리고 점점 배가 부르자 출퇴근을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많은 시선과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매일 보는 직원들은 아니고 가끔 오가며 만나던 다른 부서 직원들은 어김없이 매번 불러세워서 묻는 레파토리가 있었다.
1) 몸 상태 어떻니?
2) 여자니 남자니?
3) 예정일이 언제니?
아침마다 커피 마시러 동료직원과 나갈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마주쳤다. 임신하기 전에는 아침 출근 시간대에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목례만 건네고 지나쳤는데, 배가 불러온 이후로는 어김없이 사람들은 우리를 가로막고 서서 대화를 방해하고 시간을 지체했다. 그러고 한 두 걸음 지나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을 마주쳐, 짜기라도 한 듯 똑같은 질문을 건네오고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고 그다음 주가 되면 또 리셋이라도 된 마냥 같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매번 해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예정일은 나만 기억하는 날짜이지 다른 사람들은 흘려듣고 까먹기 쉬운 법이지만, 나만 보면 이제 얼마나 남았냐, 몸은 안 힘드냐를 매번 물었다. 나중에는 동료 직원에게 "나 그냥 티셔츠에 1)나 괜찮습니다. 2) 여자입니다. 3) 9월 17일 예정일입니다! 를 박고 다녀야겠어"라고 했고, 옆에서 질문 세례를 받는 걸 같이 봤어서, "정말 그래야겠다"며 내 편을 들어줬다.
모든 사람들이 다 겪는 일에 대해서 크게 유난 떠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워낙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그 당시 성별 알려주는 깜짝 이벤트들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기도 해서, 되도록이면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한국 정서 상으로 미리 애들 용품 너무 일찍 사두면 부정 탄다는 문화에도 익숙했어서 그런지, "Baby Shower" 같은 것도 안 하려고 하는 나를 미국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하게, 그리고 또 신선하게 여겼다.
주변에서 아기 태명이 뭐냐고 물어오기도 해서, 그제사 태명도 지어줬다. 내가 끔찍하게 예뻐하는 우리 강아지 Ziggy(지기)의 동생이라고 해서 '지동'이요!라고 했더니, "개의 동생이라고 태명 지었대"하며 성당 아줌마들은 수군댔다. 사실, 전 지구의 모든 여성들이 다 겪는 임신과 출산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또 난임을 겪는 가족들에게는 너무나도 간절한 일이기도 하니,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특별한 대우를 원하거나, 이 시기가 너무나 황홀하게 행복하다고 떠들어대며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출산 전 마지막 산모 건강 체크 방문 때 혈압이 높게 나와 그 길로 유도분만으로 들어갔다. 1주일 더 준비 기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고, 심지어 회사에서 양수가 터지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대비도 다 한 상황이었어서, 예정일 보다 1주일 빠른 유도분만은 같이 병원에 따라왔던 엄마에게도 충격, 집에 가서 준비를 하고 지기에게도 인사를 하고 오고 싶었던 나에게는 멘붕 상태로 분만이 시작됐다.
생각보다 유도분만도, 무통주사도, 그리고 마지막 힘주는 순간도 수월하게 진행이 됐고, 쑥-하고 나온 아가와 처음 마주하는 순간도 그리 감격스럽지 않았다. 9개월간 상상해 보았던 아가의 얼굴과는 다른 얼굴이 나왔고, 내 몸 안에서 이런 생명체가 나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지, 그 외에는 어떠한 경이로운 체험은 하지 못했다.
모든 포유류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젖을 물리면 바로 빠는 것에 비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인 나와 우리 딸은 가장 '자연스럽다'는 행위를 배워나가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방금 태어난 내 딸보다 여전히 나는 내가 5년간 키웠던 지기가 더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 던 어느 오후, 딸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옆에 지기가 다가왔다. 순간 "아, 맞다. 나도 반려견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그제야 내 마음속에서 순위가 바뀌었고, 모성애가 생긴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100일, 돌, 그리고 코로나를 겪으며 나는 나에게 새로 부여받은 '엄마'라는 역할을 정신없이 수행해 나가고 있었고, 이제 막 고개를 들어 숨을 돌리려고 보니 킨더가든에 간다고 학교 준비물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슈퍼나 카페에서 줄 서 있는 임산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져 나온다. 그 안에 있는 생명체가 곧 그들에게 줄 기쁨이 무엇일지 알기에...
"몸은 좀 어때요? 딸이래요? 아들이래요? 언제 예정일이에요?"를 묻고 싶어 지지만, 예전에 퉁명스러운 임산부였던 나를 돌아보며 참고, 속으로 "미끄러지듯 순산하길 기원할게요"하고 기도해 본다.
여전히 나는 애 보다는 개가 더 좋고, '어린아이니까' 하고 이해해 주는 어른은 못 돼서 그런지 내 새끼도 엄하게 키우지만, 이제는 유모차와 개가 함께 지나가면, '아이 몇 살이에요?'를 먼저 물어줄 줄 아는 어른으로 나도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