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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과연 있어야 하는가?

청년의 내일을 빛나게 할 ‘새로운 시험’의 조건

수능 전날, 학교 담장과 골목마다 걸린 걸개막을 보았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내일이 더 빛나기를 응원합니다!”

참 따뜻한 문장인데, 그 속에는 묘한 이중성이 숨어 있습니다.

응원과 위로, 그리고 내일이 단 하루 시험의 결과로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함께 들어 있지요.


대한민국에서 수능은 단순한 시험을 넘어 사회 전체의 시간대가 맞춰 움직이는 사건입니다.

시험 당일엔 항공기 이착륙이 조정되고,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온 나라가 수험생을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질문이 떠오릅니다.


“수능은 과연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 질문은 너무나 쉽게

“폐지 vs 유지”라는 단순한 대립으로 축소됩니다.


이 글은 그 이분법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수능을 없앨 것인가를 묻는 대신, 이렇게 질문해보고자 합니다.


“수능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청년들의 내일이 더 빛날 수 있을까?”


1. 세계의 대학입시: 모두가 ‘시험’의 딜레마에 서 있다

한국의 수능, 중국의 가오카오, 일본의 대학입학공통테스트, 영국의 A-levels.

형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모두가 고위험 시험(high-stakes test)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중국은 단일 국가시험에 성패가 집중됩니다.


일본·영국은 공통시험 + 학교성적 + 대학별 시험이 결합된 분산형 구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어느 한 나라의 방식도 완벽한 공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일 시험 체제는 공정성이 높아 보이지만,

사교육·지역 격차·재수 구조를 키우고,


분산된 체제는 위험은 줄지만,

정보 격차와 사교육 영향력이 커집니다.


즉, 공정성과 형평성의 균형은 어느 나라에도 쉬운 문제가 아닌 셈입니다.


2. 수능이 만들어낸 ‘한국적 풍경’

한국의 수능은 분명히 장점이 있습니다.


전국 공통 기준

높은 표준화·비교 가능성

“공정한 룰”이라는 사회적 신뢰

그러나 우리가 체감하는 한계도 뚜렷합니다.


재수·N수의 일상화

부모의 소득·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준비 여건

고3 교실의 ‘수능 대비 센터화’

“3년의 공부가 하루에 결정된다”는 압박


이는 단지 교육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 세대의 심리적·정서적 삶, 사회적 이동성, 공동체의 가치관과 깊이 연결됩니다.


3. 그렇다면, 수능은 어디로 가야 할까?

세계 비교를 통해 보았을 때

결론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수능은 없어질 필요도 없지만,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일 필요도 없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유무’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재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① 단일 고위험 시험 의존도 낮추기

수능 점수 하나로 청년의 인생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시 비중을 무조건 늘리거나 줄이는 논쟁 대신,

학교교육·학생부·프로젝트·포트폴리오 등을 조화롭게 반영하는 모델이 필요합니다.


② 고교 교육과의 정렬(Alignment)

시험이 수업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배움과 평가가 서로 연결되도록 재설계해야 합니다.


문항 풀이 기술 경쟁이 아니라

문해력, 문제 해결, 자료 해석, 비판적 사고가 핵심이 되는 시험.

그런 시험이라면 교육과정도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③ 다중 진입 경로와 세컨드 찬스

가오카오도 성인을 위한 재도전 경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다양한 나이·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이

언제든지 다시 배움과 진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④ AI 시대의 공정성 재정의

중국은 가오카오 기간 동안

AI 챗봇 기능을 일시 중단해 부정행위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요한 질문은 이겁니다.


“AI를 못 쓰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AI를 어떻게 잘 쓰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어야 하지 않을까?”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 없이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기계를 판단력 있게 활용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4. 결론: 수능은 ‘청춘을 가르는 칼날’이 아니라


‘내일을 여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능을 “공정한 단 하나의 잣대”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잣대가 누군가에게는 사다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벽이 되는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수험생의 오늘이 아니라, 그 이후의 10년·20년을 생각했을 때

수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수능이 단지 ‘하루의 성적’을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배우고, 여러 번 도전할 수 있으며,

배움의 길이 다양하게 이어지는 사회의 일부가 될 때,


그때 비로소,

. 수능은 청춘을 소모하는 시험이 아니라,

청년의 내일을 비추는 하나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온다면,

수능 전날의 걸개막 문구는 더 깊은 울림을 갖게 될 것입니다.


“수험생 여러분, 내일이 더 빛나기를 응원합니다!”

그 ‘내일’이 단 하루가 아니라

평생 이어지는 배움의 내일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망경동 골목길을 걸으면서 국화꽃 향기를 맡을 여유를 가지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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