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경계에서
*영화 ‘보통의 가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감상평입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을 잇는다면 그건 선일까, 면일까, 공간일까.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할까. 살면서 한 번쯤은 절대적 선에 닿아본 적 있을까.
영화 ‘보통의 가족’에는 세 세대가 나온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그녀와 (영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과거 가족에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 그리고 두 형제가 꾸린 가정. 평범해 보이지만 위태롭던 이들에게 어느 날 ‘선과 악’이 교통사고처럼 닥쳤다.
1.
두 형제는 번듯한 직업에 가정까지 있지만 정작 둘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확고하고도 상반되는 신념과 그에서 비롯되는 언행은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둘이 가까워지는 것을 도통 허락하지 않았다. 영화의 시작과 결말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사이 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는 생각이 든다.
2.
제목에는 ‘보통’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첫 장면에서부터 이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이와 대비되게 영화의 전개 자체는 루즈하여 숨 막히는 분위기를 만든다. 잔잔하다 못해 지루한 전개 속에서도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장면과 효과음들은 단계적으로 쌓여가다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스토리가 늘어져가던 이유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담담하고도 ‘보통'적인, 그래서 더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묘사가 이 영화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선의 얼굴을 한 악, 혹은 악의 그림자에 숨은 선처럼 영화 속 인물들이 가진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면서도 한편으론 꽤나 명료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모순적이게도 '일상'처럼 단조로운 ‘혼란’ 속에서 진행되는 스토리와 마치 신이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의 몇몇 장면을 주의 깊게 보면 좋을 것 같다.
3.
우리는 각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선과 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고민해 보게 된다.
[첫째 아들 ‘재완’]
변호사를 하며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변호해 주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주는 이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둘째 아들 ‘재규’]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지만 결국 철저히 본인의 체면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재규. 원칙보다도 선을 따지지만 결국 후배에게 사소한 책임 정도는 떠넘기는 선배, 양심의 가책 때문에 치매 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 대신 아내에게 떠맡기는 남편, 가족들의 생각에 교묘하게 개입하여 본인이 원하는 바로만 방향을 이끄는 아빠,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지만 아들의 올바름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더 나아가 과거 ‘본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본인이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이해하게 되는 아들의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두 형제의 자식들]
청소년이기 때문에 이들에겐 악이 허용되는가. 혹은 이들이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과정은 얼마만큼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어머니]
치매가 온 어머니는 치매가 오기 전까진 선이었을까. 치매는 악이라고 할 수 있어도 어머니 역시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새엄마’라는 존재는 단지 남편과 본인의 친자식에게만 선일 수 있는 걸까.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는 영화 속에서 아들과 남편에게 악이 되지만, 왜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악을 자처하게 되는가.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고 말하곤 한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보통이라고 할 순 있어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이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 일상의 현실적인 고민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평생을 내 안의 선과 악 사이에서 헤매이다가 끝날 것 같단 느낌이 들 때 이들을 거울 삼아 방향을 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