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코미디 팬의 처절한 사투기
아아- 여름이 다 지나버렸다. 나는 분명 올해 자격증도 따고, 운동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려고 했는데 한 거라곤 덕질 밖에 없다. 괜찮다. 진심을 다해 사랑했으니. 유감이게도 그 진심은 약 32%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지만.
하지만 그 32%가 인생의 32%라면? 생존의 필수요소인 잠과 비슷한 비율이니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꽤 진심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시답잖은 농담부터 잘 짜인 각본까지, 코미디는 다 좋아한다. 물론 저질스럽다고 싫어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코미디라는 분야를 사랑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 웬만해선 모든 농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약 1년간의 코미디 덕질, 그 시작은 입사였다. 우리 회사 과장님은 시시콜콜한 말장난을 좋아하셨고 그 농담의 대부분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었기에 과장님의 농담에 웃기 시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는 어느새 그 웃음을 원동력 삼아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코미디란 그렇다. 너무 주관적이라 내가 생각할 땐 이것보다 웃긴 게 또 없는데 입 밖으로 내뱉으면 0.5초의 마와 함께 묘한 시선을 함께 받을 수 있는 그런 잔인한 영역이다. 나는 말과 아이디어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유머러스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늘 있었고, 농담은 유머의 중심부 같은 존재였기에 나 역시 농담을 잘 해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과장님의 ‘농담’보다도 ‘삶의 태도’를 본받게 된 것이다(사실 그는 그냥 일 하기 싫은 직장인 1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때 책을 사랑했었다. 그리고는 곧 작가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책을 사랑하지만 책을 쓰지는 않는다는 어떤 이의 인터뷰를 보고 '이게 진짜 멋이지'라며 나도 따라 하고 싶었으나, 비대한 자아를 숨기지 못하고 또 이렇게 여기에 글을 쓰고 있다. 코미디를 좋아하게 된 후 나는 또다시 코미디언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정말로. 나는 절대 플레이어로 넘어가지 않고 단지 즐기기만 할 것이다. 기필코 청자로 남아 쉽게 농담을 즐기며, 인생의 고뇌 따위를 뼈와 살을 갈아 넣어 남에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본 코미디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있거나, 미치거나. 자기 확신이 없으면 감히 다른 사람 앞에서 농담을 선보일 수가 없다. 아니면 진짜 미친 사람이다. 보통 코미디언 중에는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보다는 미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미쳤다는 게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자기 확신이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미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웃기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무대에 서는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는 이따금 코미디에 대한 글을 올릴 것 같다. 그게 공연 후기든, 오타쿠의 고백이든 난 매사에 진심이니까 너무 욕하진 말아 달라.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코미디를 좋아하는 당신,
멋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