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산업 도시의 위엄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대도시
내가 올해 여름부터 응원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커티스 패트릭 Curtis Patrick (https://www.instagram.com/curt.p_?igsh=cnU5c2hmbXA4Y2J5)이 이고/아이고어 Igor로 활약하는 멜 브룩스의 젊은 프랑켄슈타인 Mel Brooks' Young Frankenstein 뮤지컬 코미디 (https://brunch.co.kr/@8df7531fef574a5/124)를 보러 지난 토요일 맨체스터 Manchester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더랬다. 우리 동네 레스터 Leicester서 맨체스터 피카딜리 Piccadilly역까지 무려 왕복 5시간이 걸리지만 괘념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맨체스터에 갔었던 것은 아마도 2년 전인가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하는 무슨 리서치 워크숍에 참여했던 때인 거 같다. 오랜만에 다시 가니 새삼 기차역에서부터 대도시의 느낌이 물씬 났다.
기차역 앞에는 세계 1차 대전 중 시력을 잃은 군인들을 기리는 동상 (Victory Over Blindness라는 작품)이 있다. 분명 예전에도 봤었던 설치물인데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거라 새로웠다.
기차역 앞으로 조금 더 걸어 나가면 꿀벌 동상 (Guardian이라는 이름)도 있다. 맨체스터가 세계 최초 산업 도시로서 오랜 기간 동안 일벌의 이미지가 도시 정신의 상징으로 사용돼 왔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다리가 있는데 다리 위에서 보면 다리 밑으로 트램이 다니는 트랙이 보이고 기차역은 그 위에 있다. 옛날 건물과 현대적 빌딩들이 섞여 있는 사이로 구불구불한 트랙 위에 트램이 다닌다. 레스터에는 트램이 없어서 그런지 트램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이다.
뮤지컬 공연장에 가기 위해서는 애쉬톤 운하 Ashton Canal길을 따라가야 했다. 운하를 따라 주로 붉은 벽돌집들과 건물들이 있는 와중에, 다양한 나무들, 다리들, 아마도 옛날 옛적 쓰던 산업용 도르래, 보트들, 새들, 등등 볼거리들이 많아서 좋았다.
물이 엄청 깨끗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날씨가 아주 화창해서 그런지 운하물에 건물들이 선명하게 비쳐서 물이 깨끗해 보이는 효과가 났다. 오리도 있고, 백조도 있지만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은 캐나다 거위들 Canadian Geese이다. 영국에 캐나다 거위들이 많은 것은 옛날에 영국 귀족들이 정원/호수 장식용 조류로 수입한 애들이 도망가서 야생에 정착해서 그렇다 한다.
운하길 옆으로 붉은 벽돌 건물들, 그리고 그 뒤로 회색빛 빌딩들이 같이 보이는 것이 기묘하면서 조화롭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최초의 산업 도시였던 맨체스터의 그 당시 산업의 혈관이었던 운하, 산업혁명기의 흔적만 같은 낮은 붉은 벽돌 건물들, 그리고 탈산업 현대 도시의 고층 건물들이 같이 있으니 시공간이 겹쳐 보이는 낯섦이 있다. 동시에 작고 귀여운 운하, 좁고 운치 있는 운하길, 아기자기한 집들과 대비되는 크고 삭막한 대도시의 빌딩들에서 오는 시각적 대조미, 상반미가 있다. 이런 광경은 영국의 꽤나 많은 도시들에서 흔히 보이는데 맨체스터도 예외는 아니고, 나는 이런 과거와 현재의 만남, 조화 속의 대비,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거 같다.
공연장에 들어갈 때는 환했는데 공연을 다 보고 나오니 아주 깜깜해졌다. 공연장 갈 때는 운하길을 따라 구경하며 걸어서 좋았지만 해가 지니 다시 걸어서 기차역에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제일 가까운 트램역 (New Islington)까지만 걸어가서 트램을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기차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기차역 2층에는 각종 식당들과 카페들을 비롯하여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들이 아주 충분해서 사람 구경하며 쾌적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런던 다음으로 큰 대도시라 분명 런던처럼 구석구석 볼 것들, 할 것들, 맛있는 것들이 가득할 거 같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구석구석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산업 도시의 역사 때문인지 관광지라는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런던이 좀 특별하게 관광지가 유독 많고 매력적인 도시인 거지, 맨체스터도 그렇고, 버밍햄 Birmingham도 그렇고, 리즈 Leeds도 그렇고, 다른 대도시들을 보면 딱히 막 시간을 길게 써서 주말여행을 제대로 한다거나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또 언젠가 다른 볼 일이 있으면 다녀오겠거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