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교회에 들어가 볼까 했는데 교회 문 앞에 지금 기도 중이니 관광객은 들어오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다. 교회 옆에 교회 박물관이 따로 있길래 그거라도 갈까 했다. 그런데 입장료는 현금으로만 받는다 한다. 아니 요새 카드를 안 받는 곳이 있다니!시골은 시골이다. 현금을 전혀 안 들고 와서 가까운 ATM은 어디 있느냐 물어봤더니 설명을 해주는데 뭔가 한참 가야 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다섯시간 정도 돌아다녔더니 피곤했던 차라 호텔에 돌아가서 잠시 쉬어야겠다 생각했다. 마침 날씨도 약간 흐릿해졌다.
호텔 돌아가는 길에 다 무너져 가지만 벽타일이 예쁜 집을 발견했다. 아무도 안 사는 빈집인 것 같다.
골목골목 작은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귀엽다.
호텔 가는 길에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 한편에 젤라토(gelato) 집을 발견했다. 아직은 배가 부르니 나중에 먹어야겠다.
호텔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잠시 쉬니 너무 좋다. 원래 휴양보다는 관광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제 앞으로는휴양지에 가야 하나 싶다.
생선 구이가 역시 최고
점심에 문어만 골라먹고 나머지는 좀 남겨서 그런지 금세 배가 고파온다. 어제 농어 구이가 맛있었던 식당 생각이 난다. 포르투갈은 원래 정어리구이가 맛있다 하는데, 정어리를 안 먹고 갈 순 없지. 어제 갔던 같은 식당에 가니 가게 주인아저씨가 알아보고 아주 반가워해 주신다. 정어리 구이를 시켰더니 정어리가 부족하다면서 고등어랑 섞어줘도 되냐고 묻길래 좋다고 했다. 역시 정어리는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메뉴인 것 같다. 나는 정어리 한 마리 고등어 한 마리 정도를 기대했는데 세 마리씩 여섯 마리를 줬다. 와, 진짜 시골 인심 죽인다. 가격은 심지어 어제 농어 한 마리보다 더 싸다. 다 못 먹으면 어쩌지 걱정한 것이 민망하게 감자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정어리와 고등어는 비린내 하나 없이 신선함이 느껴지고, 겉바속촉으로 너무 잘 구워졌고, 불맛이 적당히 나는 것이, 서울 어디 제일 맛있다는 생선구이집보다 더 맛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집 감자 뭐지 진짜. 왜 그냥 감자가 이렇게까지 맛있는 거지. 제발 영국 우리 동네에도 언젠가 포르투갈 생선 구이집이 생기면 좋겠다. 제발 제발. 그러면 매주 갈 텐데. 맛있는 생선 구이 때문에라도 매년 포르투갈에 한 번은 가야 할 것 같다.
예쁜 크리스마스 가게
물고기에 환장한 여자처럼 생선 여섯 마리를 해치우고서, 아침에 입구에서 대기가 많아 입구만 보고 나왔던 과학 박물관을 향해 나선다. 가는 길에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예쁜 가게가 보인다. 안 들어가 볼 수 없지.
쇼윈도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가게 안에 디스플레이도 너무 예쁘다. 근데 살 건 없다. 아까 그 벼룩시장에서 뭘 사야 된다 역시.
처음 만져 본불가사리
과학박물관에 갔더니 늦은 오후라 그런지 오전과 사뭇 다르게 한적하다. 여기도 입장료를 현금으로만 받는다고 한다. 아니, 어째서! ATM이 어디냐고 물으니 위치가 그리 멀지 않아서 돈을 뽑으러 갔다. 20유로 뽑았는데 수수료가 4유로는 된다. 입장료가 5유로인데 수수료가 4유로면 배랑 배꼽이 거의 같은 크기... 다음에 포르투갈 갈 때는 혹시 모르니 50유로 정도는 현금을 가져가야겠다. 결론적으로는 ATM에 왔다 갔다 한 시간과 노력, ATM 수수료의 가치가 있었던 박물관은 아니었다. 그래도 작은 수족관에 몇몇 물고기와 해양 생물들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은 조금 재미있었다. 불가사리를 살면서 처음 만져봤는데 불가사리 윗부분이 그렇게 갑각류처럼 딱딱한 줄 몰랐다. 뒤집으니까 안쪽에는 또 지네 같은 쪼꼬만 촉수들이 꼬물꼬물 하는 것이 신기했다. 외계 생명체 같다. 성게와 해삼도 횟집에서 먹으라고 썰어놓은 것이나 봤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들은 처음 만져봤다. 성게는 조개같이 정적인 생물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움직임이 많은 동물이었다. 깜짝이야.
일몰이 보이는 벼룩시장
과학박물관에서 나오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일몰이 멋지다. 벼룩시장이 닫기 전에 쇼핑을 하러 가야 한다. 부지런히 걸어 벼룩시장이 있었던 곳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상인분들이 정리를 하고 계시다. 급하게 포르투갈 전통 패턴이 있는 손거울이랑 포르투갈 특산품으로 보이는 코르크로 만든 동전 지갑을 샀다. 마음에 든다. 쓸데없는 기념품이 아니라 둘 다 필요해서 산 거라 더 기분이 좋다.
젤라토까지 맛있음
해가 지니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고서는 다 문을 닫은 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에는 아까 먹은 물고기 여섯 마리가 아직까지 소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아까 봐놓은 젤라토 집에 갔다. 나의 최애 젤라토 피스타치오맛을 시켰다. 맛있다. 일단 영국에서 먹을 수 있는 모든 젤라토들보다는 더 맛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 본토젤라토와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뭔가 지금껏 내가 먹어오던 젤라토 맛과 약간 다른 그런 게 있다. 소금을 넣은 건가? 캐러멜을 넣었나? 둘 다 같이 넣었나? 식감도 좀 더 쫀쫀하고 쫀득쫀득한 느낌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빠에야도 스페인 사람들보다 맛있게 만들고, 젤라토도 이탈리아 사람들만큼맛있게 만드는 것인가. 물가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비교하면 포르투갈이 살짝 더 싼 거 같다. 실로 식도락 여행을 하기에 최적인 곳이 아닌가 싶다.
나의 선입견을 바꾼 여행
작은 시골 도시라 하루 관광하니 대충 다 본 것 같다. 영국에서부터 오는 길은 귀찮고 힘들었지만 역시 와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을 해보니 내 선입견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이랑 확실히 비슷한 느낌이 있다. 날씨, 건축, 음식, 사람들 생김새 등등. 스페인보다 관광료나 외식비는 적게 든다. 글치만 스페인보다 못한 것은 없는 거 같다. 오히려 가성비가 좋으니 앞으로는 스페인을 갈 거면 차라리 포르투갈을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데를 그동안 내가 왜 안 왔었을까 싶다. 과거의 나는 멍청이. 난 이제부터주말여행 1순위는 포르투갈이다. 주말에 영국 다른 도시에서 관광하는 것보다 더 싸고 좋다. 특히 포르투갈 생선구이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