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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동물의 길
삶이 그토록 고단한 것이니, 사람에 대한 예의는 타인의 삶이 쉬울 거라고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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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한 나머지 지나치게 행복을 꿈꾸어도 죄를 짓게 되고, 아예 꿈을 꾸지 않아도 무력해진다. 자기 아닌 것을 너무 갈망하다 보면 자기가 소진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자신이 왜소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가끔은 탁월한 무언가가 되고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떨 땐 정녕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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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해 보이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해 보이지 않을 때 정치가 있다. 당연한 듯한 현실의 그늘에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위태롭게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것을 낯설게 보는 데 정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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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운이 좋다. 그 좋은 운을 누리다가 때가 되면 평화롭게 죽기 바란다. 그러나 거기에 정치는 없다. 인간이 그저 행복해지는 게 불가능할 때 정치가 시작된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이며,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정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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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보면 태어나 있고, 죽을 게 아니면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고, 살다 보면 만나야 하는 게 타인이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데 정치가 있다. 욕심과 질투와 배척을 넘어서 타인과 공존을 모색하는 데서 정치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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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 귀찮음과 싸워왔다. 망연하게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학생들은 그가 무슨 심오한 학술적 사색에 잠겨 있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귀찮음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귀찮음과의 한판 승부, 그건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 치르는 세계대전 같은 것이 아닐까. 오늘도 귀찮음은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기세로 존재의 구석구석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귀찮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단련해온 의지력이라는 군대를 파병한다. 잘 싸워다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내가 사람 꼴을 하고 살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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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가 왜 앉아 있지? 큰 손해라도 본 듯이 부랴부랴 누워본다. 아, 이거였구나. 나에게 맞는 자세란.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진정한 내가 되는 느낌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해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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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해보고 싶은 욕망. 우리는 흔히 욕망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 욕망이 없다면 이 세계는 텅 비어버리고 말 것이다. [...] 욕심이 있어야 인생이 있고, 인생이 있어야 욕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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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정치 공간에서는 각종 불의와 부패가 판치기 쉽다. 외부로의 연결과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정치 공동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선의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현실의 인간은 언제 어떻게 폭력적인 존재로 타락할지 모른다. 그 타락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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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행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세속을 초월하려고 드는 선사도 해탈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