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차게 밥벌이함에 감사할 때
교수로 일하면서 좀 뿌듯하다고 느끼는 순간 중의 하나는 누구에게든 좀 도움이 된다 느껴질 때가 아닌가 싶다. 세상이 변할 정도로 대단한 도움이 된다 느낄 때는 없지만, 소소하게 누군가에게,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 것만 같이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고, 그러면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보람차게 밥벌이를 하는 것이 참 축복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같이 뿌듯함을 느낄 때,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질 때는 대충 아래와 같다.
내 수업들을 통해서 학생들이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보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력이 나아지는 학생들을 볼 때
학생들 과제를 봐주면 과제가 향상되는 것이 보일 때
학생들이 가끔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거나, 수업 시간이 지나서까지도 남아서 공부를 하거나 과제를 하는 열정을 보여줘서 마치 내가 그런 열정을 불어넣어 준 것만 같을 때
학부생들이 다른 대학교 석사를 가거나 유학을 갈 때, 혹은 학부/석사생들이 취업할 때 추천서를 잘 써줄 수 있을 때
여학생들과 비백인, 비영국인 학생들에게 희망과 롤모델이 된다 느껴질 때
박사생들이 매해 일취월장하고 나보다 더 나은 논문을 쓰는 것을 볼 때
학생들을 인턴이나 연구원으로 뽑아서 푼돈이라도 용돈을 주고 CV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때
졸업한 학생들이 가끔 나에게 많이 배웠다, 고맙다고 연락을 해줄 때
다른 교수들이 조언을 구해서 도와줄 수 있을 때
학교 내 연구비 신청서 심사를 통해 최대한 많은 (특히 젊고 경력이 짧은) 교수들이 연구 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때
내 논문과 저서들이 도움이 되었다 말하는 다른 학교 석/박사생들이나 연구원들을 만날 때
내가 연 학회나 모임에 와서 영감을 받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얘기들을 들을 때
학술지나 학회지 논문들 심사를 해서 유의미한 논문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에 기여를 할 때
영국의 연구재단 연구 제안서 심사를 해서 훌륭한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받아 좋은 연구들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할 때
동네 사람들이나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사들을 열 때
분명 리스트에 빠진 것들이 있을 것 같은데, 당장 생각나는 것들은 이 정도다. 매일 보람차고 뿌듯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 정도(40퍼센트의 확률)는 좀 좋은 느낌을 받지 않나 싶다. 무슨 일이든 결국 돈 벌려고 하는 일이 맞긴 한데, 그래도 본인에게 납득이 되고 의미가 있는 명분이 있어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이지 않은가 싶다. 그래서 다른 크고 작은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8년 차 근속을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