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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Sep 13. 2024

마음을 여는 열쇠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는 따뜻한 마음

  쇳대박물관을 둘러본다. 입구부터 진열되어 있는 자물쇠와 열쇠가 인상적이다. 나무 빗장, 비밀 자물쇠, 열쇠패 등 장식 기법과 열고 닫는 방법이 다양하다. 선사시대에도 자물쇠는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동굴을 지키기 위해 입구를 막아놓은 무거운 돌이 자물쇠의 시초다. 덩치 큰 바위가 작은 쇳덩이로 바뀐 셈이다. 

  현관자물쇠는 힘이 세다. 몸집이 작지만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집을 지켜낸다. 그런데 사물인지라 고장 날 때가 있다. 얼마 전, 우리 집 현관자물쇠도 고장이 났다. 집 가까이에 있는 자물쇠가게를 찾아갔다. 문이 잠겨 있어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주인을 기다리면서 유리문 너머의 자물쇠를 구경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진열장까지 차지한 자물쇠들은 마치 공예품 같았다. 

  잠시 후 주인이 왔다. 주인은 내가 전에 사용했던 자물쇠와 비슷한 것을 권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자물쇠라 열쇠를 잃어버릴 걱정이 없는 것이다. 자물쇠를 새로 단다고 애쓰는 동안 한나절이 후딱 지났다. 

출처:네에버

  저녁밥을 하려고 쌀을 퍼내는데 오동나무 쌀통에 매달린 붕어자물쇠가 눈에 들어왔다. 붕어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있어 재물을 지켜준다는 의미로 예부터 모양을 본떠 장롱이나 뒤주에 자물쇠로 쓰였다고 한다. 쌀을 퍼내며 나도 빌어보았다. 붕어가 지켜준 쌀로 지은 밥을 먹고 가족들이 늘 건강하기를…. 

  쇳대박물관에도 상징성과 장식성이 뛰어난 자물쇠가 많이 보인다. 거북은 벽사(辟邪)와 장수(長壽)의 상징이고, 물고기는 다산(多産)과 수호(守護)의 상징이다. 느릿한 거북과 힘이 약해 보이는 물고기가 자물쇠를 만드는데 상징성을 부여받는다고 하니, 우리 선조들의 해학적인 멋을 엿볼 수 있다. 


  자물쇠가 물건에만 있으랴. 때때로 내 마음은 작은 일에도 대책 없이 닫혀 버린다. 상대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섭섭해 한다. 마치 열쇠를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열리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결혼할 무렵이었다.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파타야보다는 푸켓 해변이 더 낫다는 둥, 코끼리 등에 올라탔더니 현기증이 났다는 둥, 친구들의 자랑은 끝이 없었다. 내 귀가 솔깃했다. 비용도 국내인 제주도 여행보다 저렴하다고 하니, 마음이 자꾸 가야될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접고 제주도로 가야 했다. 그 때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여서 뉴스에서는 연일 경기가 나쁘다는 소식뿐이었다. 신랑은 국가 경제를 살려야 된다며 국내로 갔다 오자고 했다. 나는 두말없이 동의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그가 밉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형제 중에 막내인 남편은 집안을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 같은 형님 내외분이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차마 외국까지 갈 수 없었다고 했다.

  남편의 변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좋을 뻔했다. 신혼여행은 일생에 단 한 번 뿐이지 않은가. 신부보다 형님 내외가 더 소중했나 싶었다. 그 일로 내 마음은 닫혔다. 어떤 만능 열쇠꾸러미를 들고 온다 해도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남편은 내 마음의 자물쇠 열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갑자기 친정어머니가 보고 싶다면 포항에서 대구까지 늦은 밤이라도 함께 달려갔다. 퇴근 후 피곤해도 집안일을 서슴지 않고 도와주었다. 따뜻한 말과 손길이라는 열쇠로 나를 달래고 다독거렸다. 남편은 점점 자물쇠와 열쇠를 잘 다루는 장인이 되어 갔다. 드디어 내 모난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의 자물쇠가 열렸다. 


  잠긴 문은 열쇠로 열면 된다.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열 수가 있다.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는 따뜻한 마음이다. 마음이 상처를 입으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쓰다듬어 주면 풀릴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마음 열쇠를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테석테석한 삶의 응어리와 회한으로 뒤엉킨 세월의 궤적이 다소곳하게 풀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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