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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 Aug 17. 2024

갱년기와의 동행으로 새롭게 시작한 도전기

습관성 유산이라는 함정에 빠졌던 젊은 날의 일기장엔 눈물 자욱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10년 동안의 길었던 슬픔은 끝이 있었고, 아이들을 키우며 슬픈 기억은 어느새 잊혀졌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은 자식들의 청첩장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제 성년이 된 우리 애들을 보면 앞으로의 내 인생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늦게 출산하다 보니 아이들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가 겹쳤다. 


걱정이 되어 미리 아이들에게도 당부하며, 잘 이겨내 보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기가 왔을 때는 아이들보다 내 갱년기 증상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예민한 성격인 나는 신혼 때 남편과 작은 일로도 싸움이 커졌다.

나중에 생리전 증후군 때문이라는 걸 알고, 마법의 시간이 다가오면 서로 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갱년기 증상도 심하게 왔다. 


바람처럼 슬픔이 내 몸을 스칠 때면 그 감정은 몇 초에서 몇 분으로 늘어났고, 하루에도 몇 번씩 허무함이 몰아쳤다.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지낼 순 없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같고 있는 조리사 자격증으로 구인 광고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모집 광고를 보니, 50대 이후 괄호 열고 ‘준고령자’라는 단서가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왜? 내가 벌써 고령자라니...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아무튼 단체급식 조리사 공무직으로 첫 출근을 하면서 사무실에 인사를 갔다.


 “안녕하십니까, 준고령자 000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큰 소리로 인사하며 ‘준고령자’라는 말을 거부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 후로 근무하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빨리 움직이다 보니 강아지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하다 보니 갱년기 증상도 사라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체력이 떨어지는 날이

생겼고, 나는 준고령자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열심히 일하다가 결국 지치고말았다.     


현재 우리나라도 이웃 나라 일본처럼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가고 있다. 내가 50대가 되어보니, 마음만 20대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앞으로 불편함이 더 생길 것이다. 


습관성 유산으로 건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평소 걷기운동을 자주 했다. 건강한 몸이 건강한 정신을 만든다. 스쿼시나 가벼운 등산 등으로 근력운동도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체력에 맞게 이번엔 짧은 시간 근무하면서 즐겁게 일할수 있는 어린이집에 취직했다. 50이 넘어 좋은 점은 가족이 나의 도움 없이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일 하는데 돈도 준다. 남은 시간엔  배우고 싶은 거 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과 취미도 즐길줄 아는 나는 자유로운 50대가 되었다. 

     

“냠냠쌤 맛있어요. 오늘 간식은 뭐예요?”하며 급식실앞에서 애교도 부리고 사랑스럽게 핫트도 날려주는 아가들. 그런 아가들과 지내면서 영양에 대한 공부를 했고 오랜 실패를 경험하면서 영양사 면허를 취득했다.      

‘갱년기가 뭐야?’ 그런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행복하게 영유아들과 함께 지내 온 시간이 어느덧 4년이 됐다. 또 스믈스믈 가슴속에 메아리 친다.      

도....전...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들은 놀라지 마시라.

“나 보육교사 딸거야”라고 했더니 남편과 아이들이 응원을 해준다. 나의 갱년기로 자신들도 피곤할 것이라는 것을 감지 했는지 적극 환영해 준다. 

     

아가들의 냠냠쌤으로 행복했다. 정년까지 앞으로 5년.

하지만 ‘얘들아 나 선생님 되서 다시 돌아올께~’  

    

물론 지금의 아가들은 커서 그 자리에 없겠지만 이번엔 선생님이 되어 아가들과 오랜시간 

함께 할 생각에 지금부터 가슴이 몽글몽글해 진다.  

    

요즘 젊은 세대는 결혼을 미루거나 비혼주의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재능을 포기하고 싶지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결혼은 늦어졌고 출산과 양육이 또 발목을 잡는다.  

    

어린이집 근무하면서 새내기 학부모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해 왔던 일도 못하고 아이 키우는 걸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본다. 때로는 열이 나는 아이도 데리고 온다. 예쁘지만 키우기는 힘든 양육을 대신 보육교사가 맡고 학부모 심리상담까지 도와주는 현실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12시간 보육할 수있도록 전문적인 인력확보에 나섰다. 그리고 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유보통합), 방과후 돌봄 확대를 추진중이다. 

     

앞으로 100세 시대. 변화되는 사회가 어떠한 인재를 또 필요로 할지 모른다. 

     

“저는 영양사이면서 조리사로 아이들의 첫 먹거리를 책임질수 있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처할수 있는 

간호 조무사자격도 있는 보육교사입니다.”라고 하면 어떨까? 


갱년기를 이겨내기 위한 무한한 여정을 통해 나의 또 다른 재능을 찾을 수 있었다.     

“갱년기가 뭐예요?~”   그건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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