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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경 Aug 16.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20일 / 코르티나 담페초 셋째 날 /  23. 06. 27

 Rifugio Nuvolau, Rifugio Averau, and Cinque Torri Hike


9시 50분쯤 팔자레고 falzarego행 버스를 타고 Col Gallina에서 내렸다. 소풍을 가는지 견학을 가는지 버스에 하나 가득 타고 있던 학생들은 전 정류장인 친퀘토리 Cinque Torri에서 모두 내렸고, 두 정류장 더 지나 여학생 둘과 나만 여기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주변엔 트레일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없고, 반대편 산 쪽에 있는 표지판을 확인하니 내가 가려는 방향은 아니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사람도 없고... 난감한데 마침 나랑 버스에서 같이 내린 여학생 둘이 아직 안 가고 저만치 서서 둘이 얘기하고 있기에 혹시나 쟤들이 알려나 싶어 다가가 물으니 길을 건너서 올라가라고 알려준다.


419번 트레일을 걸으라고 되어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고, 441번 트레일만 있다. 할 수 없이 441번 트레일로 걷는다.  처음엔 호수도 있고 걸을만하더니 점점 가파르고 험해지더니 협곡을 올라갈 땐 스틱을 팔에 걸고 돌을 잡고 기어올라가야 했다. 이어서 가파른 경사 위에 폭이 50여 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걸어 가 숨을 돌리니, 이번엔 다시 오르막. 그 가파른 오르막 끝에 아베라우 산장 Rifugio Averau이 나타났다.


산장사진을 찍은게 없어서 산장사이트에서 한 장 가져왔다. 저 산길을 걸어 끝에 이르면 산장 앞마당으로 내려서게 된다.

아베라우 산장으로 내려서는 순간 바로 앞에서 한국인 여행자들 한 팀을 만났다.  트래킹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기는 드문 일이어서 서서 잠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산장 안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30분 거리의 리프트에서 산장까지 인접되는 도로가 없다 보니 음식값이 비싸다.  캔음료수가 4, 맛도 없는 라구파스타가 13.5€. 심지어 3€ coperto까지.  


아베라우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칼등처럼 날카로운 산등성이 위를 사람들이 걸어 올라가고 있다.  헐.. 누볼라우 Nuvolau에 가려면 저길 또 기어올라가야 하나?  한숨이 나온다.  다행히 막상 걸어가니 가파르긴 해도 길이 넓어 위험하진 않다.


Nuvolau에 오르니 12시 50분.

전망대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며 멍하니 쉬고 있는데 아까 만났던 그 팀이 와서 자리를 펼치더니 숙소에서 해가지고 온 밥을 꺼내고, 야채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비더니, 미안해서 사양하는데도 넉넉하다면서 종이접시에 수북이 담아 비닐장갑과 함께 권한다.  세상.. 산꼭대기에서.. 그것도 이탈리아 돌로미테에서 비빔밥을 얻어먹다니~  해외까지 나와서도 챙겨 먹이는데 진심인 한국 아줌마들~ 존경합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뭔가 우리 음식이 고플 때 가장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건 다름 아닌 된장.  그리고 이 된장국과 함께 먹고 싶은 게 바로 비빔밥. 이 귀한 비빔밥을 돌로미테 산 꼭대기에서 한 사발씩이나 얻어먹다니...


"한국사람들은 항상 산에서 밥을 먹더라고요."

또랑또랑한 발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걸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알렉산드리아라는 이탈리아 아가씨.  발음이며 억양이 어찌나 정확하고 또랑또랑한지..  2012년부터 광주에서 1년 반 동안 학생들을 가르 치르면서 배운 한국어란다.  걸음걸이가 영심이 닮았다며 아이들이 그녀에게 지어준 한국이름은 영심이.


그녀에게도 역시 비빔밥 한 접시가 건네졌고, 비닐장갑까지 받아 낀 우리는 손으로 신나게 비빔밥을 퍼먹으며 한국어, 영어 섞어가며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다.  난 아까 분명히 아베라우 산장에서 점심을 먹었건만 다 잊어버리고 비빔밥 한 사발을 가볍게 다 먹었다.  예쁜 데다 성격까지 좋은 그녀는 한국에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까지 있어서 내 버벅거리는 서바이벌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어려운 단어, 숙어, 문법 같은 건 개나.... ㅋㅋ  조카랑 함께 왔는데 조카는 힘들다며 저 아래 Rifugio Scoiattoli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서둘러 내려가봐야 한단다. 아니.. 나이 든 이모도 걸어 올라왔는데 젊은것들이? ㅎ 그녀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어 내려왔다.  



스코이아톨리 산장 Rifugio Scoiattoli엔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들이 친퀘토리가 내다보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다.



다시 걸어서 버스에서 내렸던 Col Gallina로 가야 하는데 내가 제대로 잘 찾아갈 리가... 내려오고 보니 한 정류장 전인 Ra Nona로 나왔다. 무슨 상관이람... 그냥 여기서 버스 타면 되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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