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혜경 Aug 16.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19일 / 코르티나 담페초 둘째 날 /  23.06.26

Lago di Sorapis


7시 34분 버스를 타기 위해 조식을 30분 앞당겨 7시에 먹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8시 34분 버스를 타면 편한데 혹시나 트래킹 후에 타야 하는 마지막 버스를 놓칠까 봐 불안해서 여유 있게 일찍 가서 일찍 돌아오기로 했다. 너무 이른 시간인 데다 마음이 급해 먹기는 힘들어서 커피만 한 잔 마시고는 빈 페트병에 주스를 담고, 햄과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크로와쌍, 삶은 달걀, 바나나, 요구르트 등을 바리바리 싸서 배낭에 넣고 나왔다.


                                                                  어딜가나 야생화 천지.. 여긴 유난히도 이 보라색 꽃이 많다.


8시 45분쯤 트래킹 시작점인 Passo Tre Croci에 도착해서 처음 한 시간 정도는 돌로미테에선 보기 드문 숲길이라 천천히 음미하며 걸었다.  하지만 그 이후 호수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는 경사도 좀 있고 살짝 험한 돌길이라 좀 힘들긴 했지만 이 정도야 뭐... 계속 사람들과 함께 걸을 만큼 북적였는데, 코르티나 담페초에 오면 거의 누구나 다 한 번은 오는 곳이라 그래도 이 정도를 많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성수기엔 줄 서서 걷지 않을까 싶다.  주차난도 엄청날 듯.. 아침 이른 시간에도 이미 길가에 차들이 줄줄이 주차되어 있어서 조금 늦게 오면 주차도 어렵지 싶다.  이럴 땐 버스가 역시 최고.


그렇게 두 시간 산길을 걸어 마주한 소라피스 호수 Lago di Sorapis!  이 깊은 산중에 이런 호수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험한 산중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비췻빛 호수라니~~ 그야말로 말잇못...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마도 힘든 산행을 두 시간쯤 한 뒤에 깊은 산중에서, 그것도 아름다운 비췻빛 호수여서 더 그랬겠지만 정말 감동적이었다.

좋은 자리는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좀 그늘진 편한 곳을 찾아 찾아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그야말로 물멍~~


혼자 다니면 사진도 못 찍을 텐데 사진 찍어 드릴게요~ 하며 카메라를 어깨에 맨 남자분이 선뜻 내 폰으로 사진을 찍어주며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하필 내 재킷색이랑 호수의 물빛이 깔맞춤..ㅠ   게다가 어둡게 나와서 사진은 건질 수가 없게 되었다.  카메라까지 메고 다니길래 안심하고 그 자리에선 사진을 확인도 안 했건만..ㅋ


일행들과 함께 여행 중인데 내가 혼자 다닌다니까 너무 부러워한다.  한 분은 61년생, 조금 있다 형님~ 하면서 옆으로 오신 또 한 분은 아이가 고3이라니 아마 50대인 듯.. 직장을 다니니 길어야 열흘에서 보름 정도가 최대한으로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언제나 이렇게 여유롭게 여행을 해보나요...


...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여행이 아쉽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거죠.  시간 남아돌고 여유 있으면 여행도 그렇게 달콤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을 거예요. 좀 더 나이 들면 가능하죠.  저도 아이들이랑 함께 여행 다니다가 거의 60 다 되어서야 혼자여행을 시작했거든요. 지금 비록 짧은 여행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건 나를 둘러싼 주변이 편안하다는 것이니 그보다 감사할 수 없는 일이죠~


오래간만에 괜찮은 한국남정네들과 편하게 오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은 산장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고 난  3시 5분 버스를 타야 해서 산장에서의 점심은 패스~   싸가지고 온 것들을 먹어서인지 배가 안 고프기도 하고 다시 걸어 나가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하기도 하고..


일찍 호텔에 와서 씻고 호텔 지하 레스토랑에서 라구 파스타랑 와인 한 잔을 하는데,  바로 옆좌석에 한국인 부부가 함께 식사하고 있다. 역시 렌터카로 여행 중 잠시 들렀다고.. 호텔은 넘 오래된 구식인데 나름 음식도 괜찮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앞저트( 내가 노상 장난스럽게 쓰는 애피타이저를 말한다 ), 메인디쉬, 뒷저트(디저트) 이 3가지를 다 먹을 수 있는 대식가가 난 가끔 부럽다. 파스타나 뇨끼까지도 메인디쉬가 아니라 메인디쉬 전에 먹는 전채요리에 속하니 난 맨날 전채요리만 먹고 메인요리까지는 가보지도 못하는 셈... 주로 육류요리인 메인디쉬는 소화도 부담스럽고, 별로 즐기지도 않으니... 그래도 요즘은 워낙 여행이 대중화가 되어서 동양사람들도 워낙 많이 오니까 한 가지만 주문해도 별 눈치를 안주는 분위기이고,  너무 배불러서 디저트 못 먹는다고 해도 그러려니 웃으며 이해해 주니까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다.  


그런데 정말 여기오니 왜 이렇게 유난히 배만 볼록 나온 이태리 아저씨들이 많은지... ㅋ 거의 임신 8개월은 되어 보이는 배를 늘 달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면 내가 다 힘들게 느껴진다.  점심 먹고 시에스타 즐기고, 저녁은 늦게, 그것도 저렇게 풀코스로 먹으니 어찌 아니 찔 수 있으리.. 우리나라 배 나온 아저씨들 배하고는 차원이 다르다..ㅎ


계속 이런 웅장한 암봉들을 보며 내려왔다.



작가의 이전글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