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17분 버스로 코르티나 담페초에 도착해 버스를 갈아타고 미주리나 Misurina Genzianella에서 내려 다시 트레치메행 버스를 탔다. 길이 어찌나 밀리던지 원래 9시 12분인데 25분이나 연착해서 37분에야 탔다. 주차 톨게이트를 통과하느라 승용차들이 몇 백 미터나 길게 늘어서 있어 엄청 밀렸는데, 6월 말인데 이 정도면 7, 8월 성수기엔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안된다.
인터넷에 보면 여길 통과하는 여러 가지 요령들이 올라와있다.
밀리는 길을 어느 정도 가다가 버스는 경찰차의 호위를 받아 비어있는 반대편 차선으로 신나게 역주행하여 도착. 어쩌다 역주행한 게 아니라 통상적으로 경찰차의 호위하에 역주행을 해서 운행시간을 맞추는 것 같다.
미주리나부터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까지는 이 구간만 운행하는 전용버스를 타야만 하는데, 30분도 안 되는 이 구간 버스요금이 15유로. 일반버스 요금이 1.5~2.5유로인데 비해 엄청난 폭리다.
알토 아디제 지역이 무료교통카드를 도입해서 승용차 운행을 자제시킴으로써 도로정체나 주차난을 해소하려애쓰는데 비해 여긴 비싼 주차요금과 버스요금으로 교통난을 해소하려는 건 설마 아닐 테고...
아우론조 산장은 도미토리 2박에 아침, 저녁 포함한 하프보드가 120유로.체크인을 하고, 짐은 맡길 수 있으나 입실은 오후 3시 이후라야 가능하다고. 내가 위층 침대는 힘들어서 아래쪽 침대를 써야 하니 미리 아래쪽 침대를 맡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하니 친절하게도 함께 올라가 침대 위에 내 소지품을 올려두어 침대를 미리 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살짝 배는 고픈데 점심시간은 멀었고... 크로와쌍과 레몬소다 한 캔을 마셨다.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는 아우론조 산장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어느 쪽으로든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내가 참고한 블로그에서는 오른쪽 시계방향, langalm 쪽 105번 트레일로 걷는 게경치가 좀 더 아름답다고 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반대편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나도 그냥 20여분을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마음을 바꿔 다시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와 반대편 방향으로 걸었다. 사람들과 반대방향으로 걸으니 사람 없고 한적해서 좋다.
랑암산장Malga Langalm엔 점심을 먹는 사람들로 테라스가 꽉 차있다. 조금 더 가면 로카텔리 산장이 나오고, 다들 로카텔리 산장에서 트레치메를 바라보며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화장실만 다녀와서 바로 로카텔리 산장을 향해 걷다가 혼자 여행하는 한국남자분을 만났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날 멀리서부터 봤는지 저 멀리부터 인사를 건네며 반긴다. 53년생. 혼자 캠핑을 하면서 다니고, 어쩌다 산장에 자리가 있으면 산장에서 잔단다. 영어도 안 되고, 예약 같은 건 할 줄 몰라서 그냥 배낭 메고 비박하면서 다닌다고.. 한참을 선 채로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사연이 있어 보이는 표정.. 어쨌든 대단한 용기다. 많이 걷고 행복하시길...
여기서부터 로카텔리산장까지는 산장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어찌나 멀고 힘들던지..
로카텔리 산장 뒤편 호수
트레치메가 바라다 보이는 로카텔리 산장 테라스
2시 반이 되어서야 로카텔리산장에 도착했다. 마카로니 라구파스타를 주문하고 맥주 한 잔을 마시려니 줄이 엄청 길다. 기다리다 보니 맞은편에 bar가 있길래 들어가서 직원에게 음식을 주문했는데 여기로 가져와서 먹어도 되냐고 물으니 OK. 맥주를 주문하니 처음엔 여기서는 안되고 맞은편 식당에서 해야 한다고 하길래 한숨을 내쉬며 줄이 너무 길어서... 했더니 웃으며 알았다며 주문을 받아준다.ㅎ 덕분에 긴 줄 서지 않고 자리에 앉아 맥주와 파스타를 먹었다. 양이 어찌나 많은지.. 그나마 점심시간 지나서 도착했는데 이 정도이니, 아까 langalm 산장이 왜 그렇게 밥 먹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볐는지 알겠다.
돌아오는 길은 1시간 정도로 그나마 경사도 별로 없고,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서부터는 거의 넓은 대로나 마찬가지.Langalm 쪽으로 걷는 게 더 경치가 좋다고 했는데 난 잘 모르겠다. 이쪽 방향으로 걷는 게 덜 힘들 것 같고,더 편하려면 이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같은 방향으로 걸어와도 되겠지만 그러면 다른 풍경들을 놓치겠지..
산장엔 오늘 한국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내가 있는 3층 2인실, 3인실에 묵고 있어서 오가며 계속 만났다.
2개의 화장실은 깔끔한 수세식이고, 큼지막한 2개의 세면대에선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와서 깜짝 놀랐다.아무리 도로가 인접해 있는 곳이라도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속 산장인데..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안 해봤다. 더운물이 나온다기에 그저 차가운 기운을 면할 정도로 졸졸 나오려니 생각했고,그저 최소한만을 생각했다. 샤워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알타비아를 걷고 왔다는 일행분들 말로는 지금까지 다닌 산장 중 여기가 제일 후지다고..
나중에 만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1인당 하룻밤에 130유로, 즉 2인실이 260유로, 우리 돈 거의 40만 원에 가까운산장에서도 잤다고도 하는 걸 보니 돌로미테 산장이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가 보다. 힘든 산행뒤 편안한 쉼이 정말 소중하긴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도심 호텔에서와 같은 수준의 편안함을 누리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한편 들기도 한다. 수영장과 사우나가 갖춰져 있는 곳들도 많은데 산속에서 그 물과 전기를 다 어떻게 공급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여기 아우론조는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송전탑이 있는 걸 보니 아래에서부터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것 같다. 그런데도 방엔 전기코드가 한 개 밖에 없고, 밤 10시 이후엔 그마저도 전력이 차단된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니 아까 내 캐리어를 3층까지 들어다 준 한국인 남자분이 일행들에게 혼자 여행하는 50대 아줌마가 있다고 했단다..ㅋ 4인 테이블에 세 분이 앉아있다가 날 보더니 같이 식사하자고 해서 자리를 함께 했다.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일주일간 알타비아 코스를 걷고, 마지막으로 트레치메를 걸으러 왔는데 알고 보니 나랑 같은 58년 개띠들. 게다가 내 옆에 앉아계시던 분은 부인 이름이 나랑 똑같다. ㅋ 부부가 함께 온 사람도 있고, 혼자만 온 사람도 있고 한 1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와~ 고등학교 동창들과 나이 들어 함께 여행이라니~ 일행 중 한 분이 코믹해서 어찌나 웃기던지... 나이 들어서도 그 정도면 학교 다닐 땐 어땠을까.. 오래된 친구들끼리의 농담들을 내가 다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맨날 혼자 밥 먹다가 이런 분위기 참 재밌다. 이런저런 여행얘기에, 맥주까지 한 잔 얻어마시고 올라오니 벌써 9시.
베개와 이불은 있지만 둘 다 커버는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도미토리에서 자려면 반드시 침낭 라이너를 챙겨 와야 하고, 없으면 9유로를 주고 1회용 라이너를 사야 한다. 침낭 라이너를 펴고 안에 들어가 누웠는데 화장실 한 번 가려고 나왔다가 다시 라이너 안으로 들어가려면 라이너가 움직이고 옆으로 돌아가고.. 다시 똑바로 펴고 들어가면 잠이 다 깨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