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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경 Aug 22.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26일 / 세스토 셋째 날 /  23. 07. 03

Prato Piazza / Platzwiese High Plateau


호스트는 내가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면 항상 MIN! 하며 반가이 맞아주고, 어제는 잘 지냈는지, 오늘 기상상황은 어떤지 등을 알려주며 세심하게 배려해 준다. 이 작은 배려가 혼자 여행하는 내겐 참 따뜻한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식탁엔 각 방 번호가 적힌 카드가 꽂혀있고,  음식은 항상 떨어지지 않도록 채워 넣고, 커피를 마실지, 티를 마실 지를 물어보고 포트에 담아 가져다준다.  

오늘은 날 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오늘과 내일, 어쩜 모레까지도 태풍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며 높은 곳은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알려준다.


날씨가 안 좋아 많이는 못 걸을 테니 서둘러 일찍 나갈 필요는 없겠고, 어디를 갈까 뒹굴거리다가 9시 55분 446 버스로 도비아코에 내려 잠시 기다렸다가 Prato Piazza 행 443번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정류장엔 브라이에스 호수 Lago di Braies, 트레치메 Tre Cime 등으로 가는 버스시간표가 시시각각 표시되고, 티켓구매부스도 설치되어 있다.  브라이에스 호수와 트레치메는 성수기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지만 지금은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준성수기.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걸 보면 성수기엔 며칠 전 미리 예약을 해야 탈 수 있어 보인다. 이 버스는 Sesto/Sexten 카드는 안되고 오르티세이에서 받은 교통카드로는 가능하다. 카드에 6월 30일까지라고 펜으로 적혀있지만 상관없다. 굳이 버스기사가 날짜를 확인하려고 들지만 않는다면.. 기계에선 QR 코드로 작동되니까.

실제로 몇 번이나 티켓을 보여달라 해서 확인을 했지만 두 번 정도는 날짜를 가리키며 안된다고 해서 버스비를 냈고, 대부분은 그냥 돌려주며 타라고 했는데, 안 내던 버스비를 내려니 어찌나 아깝던지..ㅋ


오르티세이를 거쳐서 왔기 때문에 교통패스를 쓸 수 있었는데 경로가 반대였다면 매번 버스비를 내야 했을 터.  사실 이 패스 덕분에 교통비가 거의 안 들었고, 일일이 버스 티켓 사거나 돈 내느라 번거로운 일도 없고, 버스마다 프리패스다 보니 그게 여행에서 참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거의 다들 버스비를 내는 데 나만 프리패스로 그냥 타면 은근 기분이 좋았다.


도비아코에 버스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브라이에스 호수나 트레치메행 버스를 타고 떠났고, 피아토 평원 Prato Piazza으로 가는 버스엔 나 혼자 뿐.  가다가 한 커플이 타서 버스엔 단 세 명.. 그나마 그 커플도 중간 Ferara에 내리고 나 혼자만 가다가 중간에 다시 한 커플이 탔고, 거의 다 와서 Ponticello 에선 많은 사람들이 탔다.


사람들이 우르르 브라이에스와 트레치메행 버스를 타고 떠나고 나만 덜렁 다른 버스에 타고 갈 땐 나도 사람들 따라갈 걸 그랬나 싶고 썰렁한 기분이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사람들이 좀 있다.  비상시를 대비해 보통 500미리 물통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데 오늘은 물을 채워 넣는 걸 깜빡해서 하나 사려고 했더니 가는 곳마다 산장들이 다 닫혔다. 테라스에서 쉬고 있는 가족여행객에게 물으니 이 주변 산장은 다 닫혔다며 자신들이 가져온 1리터 물병에서 물을 나눠주었다. 산에서 물을 나눠주는 건 쉽게 마음내기 힘든데...


비 오고 흐리던 하늘은 파란 하늘을 드러내고 해도 나왔다. 산중 날씨란 알 수 없다.

3주간 렌터카로 캠핑하며 돌로미테를 여행하고 있다는 부부를 만났는데 내가 오르티세이에서 만났던 혼자 다니는 여자분을 Val di Fassa에서 보았단다. 난 그 이후로는 그분은 못 만났지만 이후로도 이 분 소식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간간히 들었다.  아마 내 소식도 그렇게 날아서 갔겠지?


걷다가 Rifugio Vallandro에서 화장실도 가고, 점심을 먹기엔 좀  애매해서 중간에 배고프면 먹을 요량으로 애플스투르들도 하나 사서 배낭에 넣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왼쪽 / monte specie summit.   오른쪽 / 저 앞이 트레치메라는데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안보인다


이 트레일은 Monte Specie 정상으로 이어지는데 경사는 완만한 편이라 그리 힘들지는 않다.  여기서 날이 맑을 땐 트레치메와 Cadini di Misurina가 보인다는데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산장으로 내려오니 2시 30분.

폴렌타를 먹어보고 싶지만 아까 먹은 애플파이 때문에 좀 부담스러워 그냥 토마토파스타랑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스산하니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 카푸치노도 주문했다. 계산을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했더니 3시부터는 브레이크 타임이고 정리시간이라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다고...  걸어내려 가서 버스 타고 숙소까지 가려면 2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다행히 여긴 여기저기 숨을 곳들이 많다..ㅎ


버스를 타러 다시 삼십여분 정도 걸어 내려오는 내내 날씨가 어찌나 오락가락하는지.. 비가 와서 좀 참지 싶어 쟈켓 입고 가방 커버 두르면 더 많이 오는 거 같아서 다시 판초 꺼내 입으면 그 몇 초 사이 비가 그치고, 덥다가 춥다가..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다.


초원에선 풀 뜯는 젖소들의 워낭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꽃을 뜯어먹은 젖소에게서 짠 우유에선 꽃향내가 나려나...


도비아코로 돌아가는 버스에도 나 혼자.

버스엔 기사와 차장 둘인데 승객은 나 하나.

4시 41분 443번 버스로 Prato Piazza 출발,

5시 20분 도비아코 도착.

5시 31분 도비아코에서 446번 버스를 타고 sesto로 오는 중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 판초를 뒤집어쓰고 내려 슈퍼에 들러 비빔라면, 컵라면, 피클, 주스, 맥주, 생수 등을 사들고 들어왔다. 비가 와서 밥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으니 오늘은 컵라면으로.  


그렇게나 한국사람들이 많은 오르티세이나 코르티나 담페초에선 라면을 구할 수가 없었는데 우리나라 사람 거의 없는 이곳 세스토엔 비록 우리 라면은 아니긴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라면들이 있다. 한국식 바비큐 맛 라면이 있는데 메이드인 차이나. 그래도 좀 칼칼한 맛이 나서 개운하겠지 싶어서 샀는데 들큰짭짤..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고 맛도 없는데 한국식 바비큐라니.. 지들 맘대로 만들어놓고 한국식이라고 붙여놓다니 화난다.


계속 비..비..비... 이거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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