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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경 Aug 23.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27일 / 세스토 넷째 날 /  23. 07. 04

Lago di Braies


오늘 아침기온 13도.

버스를 타서 바코드를 찍는데 기사가 내 교통카드를 보여달라고 해서 잠시 긴장. 6월 30일까지라고 펜으로 쓰여있지만 사실 계속 쓸 수 있는 거라서.. 다행히 자세히 살펴보더니 도로 준다.


근데 도비아코에서 Lago di Braies 가는 버스에서는 기사가 날짜를 콕! 집어 보이며 안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차비 5유로를 냈다. 오늘은 도비아코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잠실 산다는 부부랑 계속 같이 다녔다. 40년간 단 한 번도 휴직 없이 초등교사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고 여행하려던 그때 코로나가 터져 기다리다 이제야 남편과 함께 왔단다.


같이 호수를 한 바퀴 돌고는 도비아코 호수까지 걸어간다기에 난 원래 걸으려던 트레일이 있었지만 그냥 같이 가기로 했다. 외로워서 그랬다기보다는 가끔은 동행이 있어도 좋겠다 싶어서랄까.. 물론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거의 매일 새로운 친구들.. 벨기에 할아버지, 캐나다 아저씨, 스페인, 중국아가씨, 함께 늘 여행을 다니다가 남편이 아파서 오랫동안 병간호하다가 남편을 보내고는 다시 혼자 일어서기 위해 여행을 결심했다는 영국아줌마랑은 헤어지면서 정말 가슴깊이 꼭 안아주며 헤어졌고, 대만 아가씨랑은 이틀간 함께 걷고, 숙소를 못 잡은 그녀에게 내 방 침대를 내주어 같이 묵었고, 특히 조지아에서는 우리나라 젊은 청춘들이랑 같이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랑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낼 만큼 그 시간들이 좋았었기에 이번엔 같은 연배의 한국사람들인 데다 연배도 비슷하니 또 다른 호기심이 작동했다고 할까..


도비아코 호수까지 걸어가기로 했다는데 주변에 물어봐도 길을 아는 사람이 없어 일단 주차장 밖으로 나가 산길로 들어섰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다들 확실하게 길을 아는 사람은 없기에 구글지도를 보며 방향을 가늠하며 숲길을 걷다 보니 얼마 후엔 다시 차도로 연결되었다. 그 후로는 숲길로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중간에 버스를 타고 도비아코에 도착해서 피자로 잠시 배를 채우고는, 지도를 펼쳐놓고 고민하다가 산 칸디도까지 함께 걸어가서 난 계속 쎄스토까지 걸어가고, 그분들은 산 칸디도에서 버스를 타고 코르티나 담페초로 가기로 했다. 


info에서 알려준 길은 분명 숲길이라고 했는데 산악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조금은 넓은 흙길.  중간중간 다른 길을 기웃거려 보았으나 길이 없기에 그냥 걷다 보니 조금만 더 올가 갔음 되는데 우리가 놓친 거였다.  중간에 숲 속으로 난 길을 발견해서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나는 괜찮은데 그분들은 혹시나 마지막 버스를 놓칠세라 불안해해서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다시 함께 도비아코로 걸어가서 각자 버스를 타기로 했다. 돌아와 왠지 허전한 마음에 씻고 저녁 겸 맥주나 마시러 나갈까 했는데 천둥 치고 스산하니 나가기가 싫어서 그냥 복숭아 하나 먹고 참기로 한다.  이럴 거면 들어올 때 컵라면이라도 하나 사 올걸..ㅠ


두 분 모두 편하게 대해주고, 가지고 온 간식을 내게도 계속 나눠주며 챙겨주었다. 연배도 비슷하고 잘 걷고 이야기도 잘 통해서 좋았는데... 역시 나는 혼자 다녀야 충만함을 느끼는 체질이란 걸 절감했다. 

혼자만 다니다가 같이 종일 걸으니 걸을 땐 몰랐는데 왜 이렇게 허탈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혼자 내 페이스대로 걸었어야 하는데 동행과 걷느라 날 잃어버린 기분이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그래도 좋은 사람들 만나 하루 수다 떨며 잘 걸은 걸로 위로하자.  내일 다시 혼자만의 길을 걷고 허전한 내면을 채우고 충만한 기분으로 돌아오기를..


날씨는 계속 변덕스러워서 잠깐씩 파란 하늘도 보이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계속 흐리다. 금요일부터 흐리고 비가 뿌리는 날씨가 거의 일주일째. 낼모레 로카텔리 산장까지 걸어가서 일박을 해야는데 이 흐리고 눅눅한 날씨에 트레치메의 일몰을 볼 수도 없는데.. 가기 싫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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