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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경 Aug 29.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30일 / 볼차노 첫째 날 /  23. 07. 07

밤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추우니 담요를 하나 더 달라해서 결국 비어있는 침대의 담요 2개까지 총 5장의 담요를 덮고,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핫팩을 허리에 대고 잤다. 몇 번 잠깐씩 깨고, 새벽에 화장실에도 한 번 다녀왔지만 생각보다 깊이 아주 푹~  잘 잤다.


아침은 달랑 빵, 버터와 잼, 그리고 커피. 일일이 주문받아서 풀코스로 내온 저녁식사에 비하면 아침은 심하게 단출하다. 아우론조 산장에선 주스와 과일, 요구르트까지 나왔는데..


오늘은 일주일 만에 아침부터 해가 반짝..  오늘 저녁엔 석양에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트레치메를 볼 수 있겠구나..  비가 와도 보통 낮에 잠시 한차례 뿌리곤 하던 날씨가 내가 쎄스토에 도착한 날부터 일주일 내내 비.. 비.. 비... 하필 그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 내 로카텔리 산장 예약일.

하루만 늦었어도 석양을 볼 수 있었겠지만.. 어쩌랴..


이렇게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라니... 오늘 저녁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겠다.. 난 떠나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Val Fiscalina로 내려간다. 어제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더니만 날씨가 좋으니까 오늘은 아래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종종 길을 비켜줘야 할 정도로 붐빈다. 바닥을 보며 열심히 걷는데  갑자기 어디서 안녕하세요? 하는 남자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내 나이또래의  한국남자분.  한국사람 많은 장소에서는 아는 척 안 하는데 여긴 별로 없으니 인사를 건넸다는 이 분은 돌로미테에 석 달간 있는단다.  지난 한 달간은 혼자 걸었고, 이제 가족이 오면 가족과 함께 한 달, 가족들을 보내고 다시 혼자 한 달. 써머패스도 석 달짜리로 끊었단다.  난 석 달짜리 써머패스가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들어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브라이에스 호수에서 같이 걸었던 부부에게 코르티나 담페초 대신 코르바라에 묵는 것도 교통상 괜찮다는 얘기를 하신 분이 바로 이 분이네..ㅋ


내려와 11시 10분 버스를 타고 짐을 찾으러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호스트를 만났다. 천천히 마셔도 된다고 해도 단숨에 에스프레소 잔을 비우더니 함께 가르니로 가서 짐을 꺼내오더니 굳이 버스 정류장까지 가져다주겠단다. 어차피 장 보러 내려가는 길이라며..

당신은 내가 지금껏 여행하며 만난 호스트 중 최고라며 다음에 돌로미테에 또다시 오게 된다면 꼭 다시 오겠다고, 이곳에서 지낸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고... 정말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기쁘고 환한 표정으로 항상 이 자리에서 기다릴거라며 꼭 다시 오라고 웃으며 화답한다.

저만치 내가 탈 버스가 오는 걸 보고는 끌던 가방을 번쩍 들더니 마구 뛰어가 내 가방을 버스에 실어준다.


산 칸디도 San Candido (Innichen)에 내려서 11시 50분 기차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는 안오고..

옆사람이 역에 가서 알아보더니 지금 파업이라 기차가 없단다고.. 확실한 건 저녁 6시 24분 기차라는데, 그땐 확실히 기차를 탈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또 어떻게 믿나.. 게다가 그럼 볼차노엔 언제 도착? 여기선 버스도 없고 오로지 기차밖에 없다는데...


함께 기다리던 두 사람과 또 다른 남자와 함께 택시를 불러 Franzensfeste 역까지 합승하기로 했다. 4명이니 25유로씩. 거의 50분여를 달려서야 Franzensfeste에 도착해서 겨우 기차를 탔다. 이들이 택시를 부르고 흥정을 하고 난 올라타기만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나 혼자였음 난감했을 터...


오르티세이에서 코르티나 담페초로 버스를 3번, 기차를 2번이나 갈아타고 이동할 적에도 오르티세이에서 받은 교통카드로 기차까지 다 탈 수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에라 모르겠다 기차표를 따로 끊지 않았다. 독일 같으면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해서 무조건 티켓을 끊었겠지만 여기 이태리에선 예매하지 않았어도 기차 안에서 승무원에게 티켓을 사면 좀 비싸긴 해도 벌금까지 물지는 않으니까 복불복 그냥 탔는데 다행히도 승무원은 아예 오지도 않았다.


천상의 화원에서 내려오니 엄청 덥다. 유스호스텔은 3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라 닫혀있다. 기다렸다 체크인을 하고 일단 빨래부터 해서 널어놓고는 슬리퍼 끌고 시내로 슬슬 걸어가 부르스케다 30년 맛집이라는 Fischbanke 노천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우아하게 부르스케타에 맥주 한 잔. 인터넷도 안되고, 더운물도 안 나오고, 샤워도 못해 수건에 물 적혀 대충 땀만 닦아내고 자야 했던 로카텔리 산장에서 볼차노로 오니 갑자기 문명세상.  단 하루 불편했을 뿐이건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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