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바치는 헌사
누군가에겐 묻어두어야 할 추억이 있고, 누군가에겐 다시 꺼내어 헤집어야 할 추억이 있다. 가슴이 아프지만, 어쩌면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이기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글로 풀어본다.
아버지는 나에게 큰 하늘과도 같은 분이셨다. 나의 신에게 늘 기도를 하면, 한낱 사람이면서도 그 기도를 힘에 부쳐가며 끝내 들어주셨다. 나에게 모든 귀한 것을 다 안겨주고도, 여전히 부족하다며 연민을 품으시던 나의 부친. 아버지께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버지란 존재는 신의 이름으로 내려온 온정이었는지, 아니면 도를 넘은 부정(父情) 탓에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몸앓이를 했던 건지, 나로선 아직 아량이 부족하여 그 답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이기에, 나를 너무도 잘 아시는 아버지이기에, 세상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알려주셨다. 아버지의 어깨에 목마를 타는 건 외삼촌의 어깨 목마보다 더 신이 나고 재밌진 않았지만, 더 안정적이었고 나는 그걸 바탕으로 하여 세상을 높이 바라볼 수 있었다. 고급 음식부터 평범한 식사까지 다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시고, 제비에게 부족한 듯하면서도 늘 넘치게 무엇이든 물어다 주시는 나의 아버지.
신이 가호를 할 수 있다면, 내 가족을 깊이 품어주리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어쩌면, 나의 아버지처럼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보호자, 아니, 삶이 허락한 위대한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는 사회에서 늘 책임과 역할을 다하셨다. 아랫사람을 살필 때는 조용히 지켜보다가도, 꼭 필요한 순간엔 북돋아주고 방향을 잡아주셨다. 윗사람께는 예의를 다하면서도, 해야 할 말은 끝내 진심을 담아 전하셨다. 위기가 닥쳤을 땐 물러서지 않으셨고, 답답한 흐름엔 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셨다. 그런 아버지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몸담은 자리에서 물러나신다.
오늘은 리스트의 위로(Liszt: Consolations, S.172: No.3 in D-Flat Major. Lento placido)로 아버지께 헌사를 부친다. 원래 이 곡은 한국어로 '위안'이라 번역하지만, 나는 이 곡을 위로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리스트는 1800년대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내게, 쉴 때마다 스며드는 조용한 휴식처다. 선율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스러운 손끝이 닿아 있다. 감동보다 휴식을 우선시하는 아버지의 삶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혹시 아직 관심의 폭을 넓히지 못한 분이 계신다면, 한번 권하고 싶다.
오늘 여러분의 하루에도 조용한 위로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