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7부.
드디어 물리아에서 아침을 맞게 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물리아를 만끽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조식을 먹었는데 세상에, 모든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식사량이 적은 우리 부부이기 때문에 둘이서 메뉴 세 개를 시켜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였다. 다음으로 메인 풀장으로 이동하는데 버기를 타고 가면서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너무나 아름답다. 메인 풀장에서 그 웅장한 규모에 놀라고 해변의 썬베드에서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점차 알게 된다. 마치 넋을 놓은 듯 우리 부부는 말 없이 해변에서 깊은 휴식을 취하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얼마나 듣고 있었을까. 결코 적은 시간은 아니었을테지만 일어나자니 자꾸 아쉬운 생각만 들어 쉽사리 일어나지를 못했다. 하지만 아직 둘러볼 곳이 많았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수건을 개며 일어났다. 우리는 옆에 붙어있는 사이드 풀장으로 향했다.
아니 이게 뭐람. 메인 풀장 옆에는 또 메인 풀장 규모 못지 않은 수영장이 또 있었다. 심지어 여기에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 수영장엔 풀 바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수영하면서 가벼운 음료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서 한 사바리 하고 싶었지만 곧 점심을 먹을 시간인지라 우리는 역시 다음을 기약했다. 수영장 위 썬베드가 잘 되어 있어서인지, 풀 바가 매력적이어서인지 모르지만 메인 풀보다 이곳이 더 인기가 많았다. 이 수영장 뒤쪽으로는 리조트의 양식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저 곳 역시 다음에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비에서 버기를 타고 물리아 중앙의 메인 건물로 이동했다. 물리아 레이크와 대부분의 식당 및 의류점과 잡화점이 있는 주요 건물이었다. 문제는 규모가 너무 커서 길을 잃기가 딱 좋다는 것이었다.
식당과 주요 상점들은 아랫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로비층에서는 리조트 수영장이 눈 앞에 펼쳐졌다. 리조트 수영장에도 풀 바가 있었다. 풀의 규모가 다른 메인 풀에 비해 아담해서 가족 단위로 오기 딱 좋아보였다. 양 옆으로 리조트 건물이 쭉 늘어서 있다. 높은 열대 나무들과 수영장을 바라보는 뷰도 너무나 훌륭할 것 같다. 물리아에서는 어느쪽으로 시선이 돌리든 모든 곳이 아름다웠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건물 안에서 물리아 레이크의 멋진 풍경을 그늘 아래서 완상할 수가 있다. 채플 뒷면을 바라보는 물리아 레이크에서 아내와 손을 마주잡고 섰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진행한다는데 불과 며칠 전에 결혼식을 마치고 이 곳으로 떠나온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결혼을 떠올렸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정말 결혼식이 빨리 끝나고 신혼여행을 어서 떠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곳에서 결혼할 수 있다면 아내와 한 번 더 힘든 일들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일단 주린 배를 채우고서 심미적인 것들을 즐겨야 할 일인데 우리는 정확히 그 반대로 하고 있었다. 물리아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은 것도 있었지만 이 건물이 너무 커서 우리가 가려는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행사에서 이곳을 예약할 때 몇 가지 특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식사와 스파 이용인데 오늘의 경우 테이블 8이라는 중식당에서 점심 식사가 예약된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테이블8이 어딨는지 우리는 한참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직원분에게 물어 찾아올 수 있었다. 물리아에서는 정말 숨박꼭질은 하면 안 될 것 같다.
청나라를 컨셉으로 하는 듯한 중식당이었다. 겨우 식당을 찾아냈다는 안도감에 굶주린 배가 더욱 난장을 피우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차분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점심 식사 메뉴를 보고 있었다. 역시 고급 리조트인 만큼 가격이 싸지 않았다. 메뉴 자체는 당연히 프리였지만 주류는 엑스트라 차지였기 때문에 신중히 고민했다. 평소에 반주를 즐기는 우리 부부에게 주류 없이 식사를 하라고 하면 그것은 조금 아쉬울 것 같았다.
식당의 내부는 정말 잘 꾸며져 있었다. 금빛으로 장식된 식당이라 그런지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중식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이곳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보고 자연히 음식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코스 메뉴를 시킨 뒤 차분하게 성난 배를 쓰다듬으며 기다렸다.
그런데 왠지... 어딘가... 맛이 글쎄, 당연히 맛은 있는데 너무 기본적인 맛이라는 느낌이었다. 시그니엘 부산의 차오란이나 포시즌스의 유유안 정도를 기대하고 있어서 그랬을까. 파인다이닝의 코스 요리를 생각하고 있어서였는지 조금은 실망스러운 식사였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역시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서로 여기가 생각보다 별로라고 말하면 서로의 흥을 깨버릴까봐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의 표정은 투명했다.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식당에서 나왔다. 물리아에는 단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것 참 아쉽게 됐다. 역시 완벽이란 어려운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근처의 디저트 가게에 가서 구경을 하다가 이제 우리의 객실로 향했다.
역시 언제 보아도 멋진 우리의 객실이었다. 실제로 물리아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70퍼센트는 우리의 객실에서, 20퍼센트는 해변에서 보낸 것 같다. 그만큼 물리아 빌라스의 객실은 다른 곳을 돌아다니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특히 개인풀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아내는 둘 다 내향인으로 사람이 붐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프라이빗한 환경을 가장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제곡을 틀어놓고 풀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썬베드에 누워 하늘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빈틈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너무 밖에서 많이 돌아다닌 탓에 우리는 다시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보다는 룸 서비스를 시키는 쪽으로 선택했다. 앞선 식당에서 실망스러운 식사를 해서였는지 룸 서비스 역시 딱히 기대가 되지 않았다. 주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분들께서 식사를 가지고 우리의 객실로 와주셨다. 수영장을 바라보는 테라스 테이블에 쭉 세팅이 되어가는데 식기들이 이너무나 예쁘고 고급스러워 일단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이 경치 좋은 곳에서 우리의 메인 풀장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니 마음이 너무나 벅차는 것이었다. 심지어 음식도 맛있었다. 룸서비스 음식이 테이블8보다 더 괜찮은 맛이었다. 우리는 차분하고 편안하게 어두워져 가는 발리를 완상하며 우리의 객실에서 식사를 마쳤다.
하루가 저무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있을까. 심지어 시기상으로 겨울인 이곳은 해마저도 빨리 진다. 밤이 오는 것이 아쉬운 것은 아니지만 밤은 이제 하루를 마무리 해야한다고 자꾸 나를 재촉한다. 떠나가는 해는 내일 다시 나오겠지만 해가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부터 나는 하루를 떠나보내는 것이었다.
흘러가는 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위로 도화 한 잎 떠내려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겠지만 나는 서툴게 조그만 손으로 물을 막아보고 싶다. 그리고 그 물을 가두고 싶다. 나와 아내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을 가둬두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서 머물고 싶다. 나는 마치 미래의 나와 연결된 것처럼 지금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3차원에 종속된 인간의 착각인 걸까. 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것을 만끽하는 지금을 이렇게 간절히 아쉬워하고 그리워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쉬운 마음으로 저물어 가는 하루는 나를 특별히 여겨주지 않았고 그렇게 지나갔다.
물리아에 있는 동안 나는 항상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썬베드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거기에서 말없이 몇시간이고 해가 뜨는, 아침이 당도하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둘째날인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아침 요가 클래스에 참석해야했기 때문이다! 물리아에는 투숙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매일매일 시간대별로 굉장히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평소 요가 등의 운동을 즐기는 아내가 아침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버드나무보다는 뻣뻣하고 소나무보다는 유연한 정도의 유연성을 가진 나는 요가를 상상하면 지옥에서 온 레깅스맨들이 사람을 찢어놓는 무시무시한 것이 아닌가 망상을 하면서 극구 부인하고 있었는데 왠지 이곳에서는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버기를 불러서 탁 트인 전당같은 곳으로 이동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요가 클래스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아침에 해가 비치면서 넓은 광장이 펼쳐지고 그 앞엔 아름다운 수목들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런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요가를 할 수 있다니 역시 오기를 잘 한 것 같다.
곧 이어 현지의 요가 선생님이 오셨다. 흰 옷을 입은 남자분이셨는데 왠지 외관만으로도 신뢰도가 마구 상승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요가 선생님은 레깅스맨인데 정말 도인같은 느낌의 현지인 강사님을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 같다. 강사님은 향을 피우고 차분한 음악을 튼 후 아주 맑은 소리를 내는, 독특한 모양의 종을 치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자연과의 교감을 하기 위해 내면의 에너지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천천히 여러 동작을 시작했다.
"Inhale~~~~ exhale~~~~"
거듭 들숨과 날숨을 강조하시는 소리를 따라 나는 호흡을 조절하고 눈을 감았다. 차분한 음악 사이로 여러 새들의 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눈앞에 놓여진 자연의 풍경이 마치 가슴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어렵지 않은 동작을 하면서 차분히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자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듯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왠지 나무의 목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요가는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처음 알게 되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서 이루어진 나의 첫 요가는 너무나 인상깊은 것이었다. 왠지 눈빛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시작부터 충만해진 이 아침이 오늘 우리를 또 어디로 이끌어줄지 기대가 가득해졌다.
"여긴 완전 정글같다."
"진짜 여기 파도파도 예쁜 곳밖에 없는데?!"
"자기 거의 물개 아니야?"
"이 시간들이 정말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