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8부.
해변에서의 완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 부부.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발을 옮겨보는데, 메인 수영장 옆엔 풀바를 끼고 있는 비슷한 규모의 수영장이 있다. 다음에 꼭 가보기를 기대하며 점심 식사를 하러 로비로 이동한다. 그런데 넓어도 너무 넓은 탓에 길을 헤메다 겨우 식당을 발견하는데... 맛이 좀...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탓에 다소 실망을 한다. 뭐 완벽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텔 로비에서 3단 트레이에 제공된 애프터눈 티와 디저트를 먹고 난 후 알차게 룸서비스를 저녁으로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침 일찍 눈을 뜬 우리 부부는 요가 클래스에 참여한다.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을 하면서 마치 나무의 목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오늘은 또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기대되는 아침이다.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요가를 마친 후 아내와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누나! 나 완전 자연하고 교감한 것 같아!"
"그래? 나는 동작이 너무 단순해서 아쉽던데."
"Inhale~~~ exhale~~~~"
평소에 운동을 매우 빡세게 하는 아내였기 때문에 명상에 가까운 요가 수업이 조금 아쉬웠나보다. 우리는 다시 객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아침을 먹기 위해 버기를 불렀다. 오늘의 조식은 호텔 라운지에서 먹을 계획이었다. 아침공기가 일품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일부러 호텔 로비 근처에서 하차 후 조금 걸은 후에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호텔 로비 옆길로 들어섰다.
정말 또 어떻게 이런 공간이 있나 싶을 만큼 초록으로 잔뜩 물든 길이 나타났다. 마치 정글 속에 있는 듯 들숨마다 초록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는 것만 같다. 그 가운데를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어딘가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가 기다려온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양껏 받는 것처럼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가득 차있었다. 저 길은 전날에 봤던 사이드 풀장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내친김에 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세상 한 켠에 숨겨진 비밀의 공간인 것처럼 이곳은 아름다웠다. 마치 짓궂은 신들이 자신의 영역을 내어주고 싶지 않아 숨겨놓은 곳을 우연히 찾아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푸른 나무들이 가득 심어진 곳으로부터 푸른 하늘과 바다가 반겨주는 곳까지 걸어나오니 아내와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자각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내 삶에서 매우 짙은 농도로, 높은 밀도로 자리잡겠구나. 그러니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러워하고 있겠구나. 지금을 온전히 만끽하지 않으면 나에게 죄를 짓는 셈이었다.
호텔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메인 풀장과 해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멋진 경치를 보면서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매번이 놀라운 경험이었다. 호텔 라운지에서도 아침 식사는 맛이 뛰어났다. 아무래도 물리아는 조식 맛집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전날 호텔 라운지에서 3단 트레이에 나오는 애프터눈 티와 디저트를 먹었는데 이것도 좀 실망스러웠다. 디너에 좀 더 주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룸서비스는 나쁘지 않다.
아침도 많이 먹었겠다, 우리는 해변을 따라 쭉 걸어보았다. 멀리서부터 불어온 바람이 마치 순풍이 되어 우리의 등을 밀어주는 것같다. 방향과 상관없이 우리는 바람에 등을 떠밀려 걸었다. 어느덧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아쉬운 마음 없이 다시 돌아나왔다. 우리는 우리의 객실로 향했다.
00:3
물리아에 있는 동안 70퍼센트의 시간을 객실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중에서 60퍼센트의 시간을 물 속에서 보낸 것 같다. 거의 물개였다. 물속에서 정말 열심히 논 것 같다. 물에서 나올 생각없이 스쿠버 마스크를 쓰고 한 참을 떠다니고 수영하고 난 뒤엔 튜브에 몸을 맡겨서 둥둥 떠다니는 신선 놀음을 했다. 그러다가 또 썬베드에 누워 쉬면서 온전히 여유있는 한 때를 만끽했다. 마치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처럼 온전한 자유와 조용한 휴식, 평안한 시간이었다.
장모님께서 주신 스쿠버 마스크가 없었다면 정말이지 큰 손실을 볼 뻔 했다. 스쿠버 마스크 덕분에 물속에서 지치지 않고 놀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침대형 튜브도 너무너무 잘 산 꿀템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아내는 물속에서 열심히 노는 내 모습을 보면서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나역시 나를 보고 좋아해주는 아내의 모습이 더 없이 사랑스러웠다.
한바탕 수영을 즐긴 뒤에 우리는 자쿠지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넓은 자쿠지에서 나오는 따뜻한 온수와 거품으로 묻어있던 세상의 모든 시름과 걱정을 씻겨보냈다. 말그대로 극락이었다. 욕실 주변은 푸른 수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 한 가운데서 자쿠지를 누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와 손을 잡고 잔잔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자쿠지에 몸을 뉘였다. 층고가 높은 천장에선 부드럽게 팬이 돌아가고 나의 머리 위로 얕은 바람을 불어준다. 누군가는 삶을 고통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고행이라고 하는데 실로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같은 순간이 있다면 그것대로 감당할 만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창 자쿠지를 즐기고 나서 우리는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어제 지나친 풀바에 가보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고 풀바에서 간단한 칵테일과 버거, 파스타를 시켰다. 그리고 해변에서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게 뭔가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래시가드를 입은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날 것의 자유를 느끼고 싶은 나는 과감히 탈의했다. 그리고 느껴졌다. 이 자유로운 느낌. 태고의 상태로 돌아간 느낌! 나는 이후 래시가드를 입지 않게 되었다.
풀바의 직원분들도 너무나 위트 있고 친절하셨다. 우리가 있는 내내 즐겁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셨고 우리의 커플 사진도 찍어주셨다. 너무나 좋은 곳이라 그런지 좋은 사람들밖에 없다. 풀바의 음식들도 꽤나 맛이 좋았다. 대체 뭘까 메인 레스토랑만 맛이 좀 별로인 것인가...
역시 해변에 왔으니 우리는 또 해변의 썬베드에 누워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정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시원한 바람과 바다를 쏟아내고 있는 하늘의 모습. 세상엔 나와 아내, 그리고 바다와 하늘만 있는 것 같았다. 수건을 덮고서 바람에 춤을 추는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푸른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보는 것만으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우리는 한 번 앉으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자리를 지켰다.
참 먹으러 다니기도 바빴다. 오후에는 또 메인 로비 라운지에서 애프터눈 티를 먹으러 가야했다. 저녁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우리는 간단한 메뉴만 주문했다. 오늘의 저녁은 물리아의 메인 뷔페인 더 카페다. 평소에 뷔페는 정말 좋아하지 않는 나와 아내였기에 물론 큰 기대는 안 했다. 롯데호텔의 라세느같은 호텔 뷔페에서도 사실 결국 뷔페는 뷔페라는 아쉬움을 느끼고 나오는 취향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게다가 물리아의 메인 레스토랑에는 이미 기대를 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뷰는 맛집이다. 애프터눈 티를 간단하게 해치운 뒤 우리는 메인 건물로 향했다. 아직 오픈까지 시간이 좀 남은 관계로 우리는 메인 건물 윗층의 테라스로 나갔다. 물리아에서는 어느 곳이든 나의 발목을 잡는 경치가 있었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경치를 완상하다가 신선이 자신을 붙잡는다고 느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빼어난 경치가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말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발리의 하늘은 정말 더 없이 아름다웠다. 해변에서는 하늘과 바다가 세상을 양분한 것만 같았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아니었다. 세상은 하늘로 가득찼다. 나와 아내는 하늘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가운데 뜬 별같이 앉아 있었다. 마치 하늘 속에 있는 것처럼, 나의 시선엔 세상을 둘러싼 하늘과 아내의 모습이 한 번에 들어왔다.
곧 더 카페의 문이 열렸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정말 규모가 큰 식당이었다. 대단히 넓어서 다 둘러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조형물들이 음식을 더 예쁘게 빛내주었다. 그러나 역시 맛까지 높여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역시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물리아 곳곳에 이런 조형물이 많은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번 따라해봤는데 거북목 진행단계가 맥스인 경우가 아니라면 몹시 따라하기 어렵다. 나도 한 거북목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림없는 오만이었다.
저녁에 방으로 객실로 돌아오고서 역시 수영장으로 퐁당 들어갔다. 밤수영은 또 밤수영의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하루도 거르지 않고 1일 3수영을 한 것 같다. 아내가 정말 물개가 아니냐며 웃었는데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발리는 일교차가 거의 없어서 밤이건 낮이건 적당히 시원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수영할 맛이 났던 것 같다. 수영을 하고나면 항상 야외의 샤워장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샤워를 한다. 몸의 물이 마를 새 없는 발리에서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갔다.
"물리아의 마사지는 진짜 차원이 다르네..."
"이번엔 진짜 플로팅으로 먹어볼까?"
"물리아에서 자꾸 시간이 가는게 조급해..."
"그래도 지금을 마음껏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