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10부.
물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한 우리 부부. 그전에 너무나도 멋진 물리아 스파에서 마사지도 받고 열심히 물놀이를 즐겼다가 함께 썬베드에 누워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단 1초도 물리아의 시간과 하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해가 떨어지는 시간에 우리는 해변으로 나갔다. 해변의 썬베드에서 우리는 말 없이 침전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짙은 아쉬움이 나를 덮쳐왔지만 그것은 물리아의 해변에 두고 가기로 결정한다. 나의 행복은 아내에게 있으니까. 이제 아내와 함께 어떤 행복을 느껴볼 수 있을지 찾아나설 시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청아한 새소리가 어두운 하늘을 깨운다. 물리아에서 맞게 되는 마지막 아침을 만끽하기 위해 나는 역시 객실의 썬베드로 나섰다. 자꾸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어딘가 떠오르는 태양도 처연해보인다. 하지만 어김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나의 머리 위로 펼쳐져갔다. 푸른 하늘에 비쳐 수영장이 맑게 빛나게 되자 물개 버튼이 눌린 나는 아침부터 물 속에 뛰어들었다.
발리의 하늘이 늘 티 없이 맑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욱 그런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헤어질 때 웃으면서 헤어지자는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맑은 웃음을 보며 같이 웃음 짓고 싶어졌다. 나는 일부러 바쁘게 움직였다. 이곳을 떠나는 아쉬움을 필요 이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와 아내는 행복하기 위해, 다시는 없는 결혼 후의 온전히 우리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니까.
짐을 다 챙기고 객실을 나서려는 때에 나는 문득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빠뜨렸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영화 '기생충'의 최우식 뷰 관람하기였다. 집 안에 있는데 집 밖에 누워있다고 하는 그것 말이다. 나는 얼른 타월을 깔고 누웠고 아내 역시 좋아보였는지 따라왔다.
정면으로 응시되는 하늘은 또 다르게 아름다웠다. 또한 푸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무들 틈으로 하늘을 바라보니 마치 미의 절대적인 기준을 경험하는 것만 같다. 짧은 완상을 끝내준 것은 버기가 문 앞에 도착하는 소리였다. 버기에 짐을 싣고서 나는 객실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무언가 이렇게 짙게 아쉬운 적이 있었을까? 너무나도 농도가 짙은 이 아쉬움을 달래기 쉽지 않았다. 나는 발을 쉽게 떼지 못했다.
"가자."
"응."
아내가 내 손을 따뜻하게 감싸쥐었다. 나는 등을 돌렸다. 그곳에 많은 것을 두고 왔다. 많은 추억과 사랑의 흔적들을 두고 왔다. 언젠가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그것들을 찾으러 오는 날이 있기를 바란다.
물리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빌라의 로비로 올라왔다. 로비에서 마지막으로 물리아 전체를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바다에서 보내오는 파도가 나를 향한 작별인사처럼 느껴졌다. 그것만큼은 처연하지 않았다. 밝은 하늘처럼 밝은 웃음과 발랄한 손짓으로 우리를 배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불어왔을지 모를 바람은 나에게 안겼고 나는 품에 들어온 바람을 안고서 말 없이 서있었다.
작별로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만남의 반가움도 있다. 마치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거자필반 회자정리의 이치가 있는 것이다. 물리아와의 작별에 아쉬움이 사무치는 동안 반가운 얼굴을 맞이했다. 바로 남길이었다. 4일만에 만난 남길은 왠지 모르게 너무 반가웠다. 지금 이곳에서 떠나는 아쉬움이 올라와서 더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다.
체크아웃을 마친 나는 남길과 함께 짐을 옮겼고, 남길과 페릭이 짐을 실어준 뒤 우리가 차에 타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 타고 우리는 물리아의 외부로 나갔다. 지난 4박 5일동안 모든 세상이 물리아였다. 물리아 밖의 세상이 어떤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물리아는 아예 다른 세상이었으니까. 등 뒤로 점차 멀어지며 작아지는 물리아와는 그렇게 작별했다.
지나간 것에 아쉬움을 품는 것은 내 마음 속에서 추모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젠 현재가 아닌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므로 그것은 숭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겨놓아야했다. 우리에겐 다음이 목적지가 있으니까 말이다!
초기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 계획은 물리아에서 종료되는 것이었지만 나는 생각했다. 6박 8일? 짧다. 시내와 해변에 있는 숙소에 있었다면 해안 절벽에 있는 숙소도 가는 것이 인지상정! 우리의 마지막 일정을 책임져줄 아주 고급스럽고 멋진 곳을 찾았고 나는 주저 없이 일정을 추가하였다. 이제 우리는 주마나 웅가산 발리 매니지 바이 힐튼(구 반얀트리)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름이 좀 긴데 그냥 주마나 발리라고 하겠다.
남길과 간만에 만난 것이 반가워 열심히 회포를 풀며 물리아에서의 좋았던 추억을 이야기했다. 30여분을 차로 달렸을까, 우리는 금방 주마나 발리에 도착했다. 우리는 체크인을 위해 주마나의 로비로 들어섰다.
리조트의 규모 자체는 물리아가 훨씬 더 컸지만 이곳도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모든 곳은 버기로 이동해야했다. 로비의 전경 또한 탁월했다. 바다는 역시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는 나의 기호가 충실히 반영된 공간이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의 모습과 리조트 내부의 전경이 너무나 멋지게 다가왔다.
전 객실이 풀빌라인 이곳은 물리아보다 약 2배에서 3배 가량 비싼 가격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래 우리는 절벽뷰의 클리프 베드룸 객실을 예약했는데 갑자기 리모델링을 한다는 이유로 일반 객실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만큼은 정말 쉽게 잊어지지 않는 아쉬움이다. 아쉬움을 로비의 직원에게 한 번 더 어필해보았지만 역시 방법이 없었다.
객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은 객실에 수로가 파여져 있고 그 위로 길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고급스러운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주마나의 수영장 수심은 1.4미터로 물리아보다도 더 깊었다. 물놀이할 맛이 야무지게 나버림과 동시에 야외 수영으로 차가워진 몸을 바로 스근하게 데워줄 야외 자쿠지까지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리아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객실의 사이즈때문이었다. 물리아가 약 152평이었는데 주마나의 객실은 약 120평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120평이 작진 않지만 더 넓은 곳에 있다가 오면 작은 평수에 실망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실망할 틈이 없다.
물리아가 객실에서 실내 공간보다 실외 공간에 신경을 더 쓴 느낌이 있다면 이곳은 반대였다. 실내의 공간이 아주 넓고 쾌적했다. 침실과 욕실, 거실이 너무나 깔끔하고 넓었다. 침실에서는 바로 수영장으로 통할 수 있었는데 이게 또 한 감성했다. 욕실 또한 통창으로 조성되었고, 두 개의 샤워실을 갖추고 있었다. 통창 밖엔 수목과 모던한 석재로 장식이 되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연과 함께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도 야외 샤워시설이 있었다. 해피. 하지만 실내 샤워실이 이미 통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굳이 밖을 이용하지 않아도 좋았다.
거실에는 웰컴 과일과 디저트가 있었는데 코코넛에는 내 이름이 야무지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참 놀랍다. 이 환영받는 기분 뭐지? 몹시 마음이 들떴다.
웰컴 과일이 있는 김에 나는 가방에서 망고스틴을 꺼냈다. 남길이 그렇게 맛있다고 했으나 물리아에서는 먹지 못했던 바로 그 망고스틴이었다.(신혼여행 일지 5화 참고) 나는 그래봤자 얼마나 맛있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망고스틴을 까보았다. 거뭇거뭇한 겉껍질과 다르게 속은 하주 뽀얗고 통통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한 입을 쏙 먹었다.
"오!!"
역시 남길이 그렇게 강권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나보다. 달달하고 산뜻하고 포근한 맛이 풍기는 게 그동안 발리에서 먹었던 그 무엇보다 맛이 좋았다. 기가 막힌 망고스틴의 맛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입안에서 맴도는 것 같다.
하지만 망고스틴으로 식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나섰다.
주마나는 당시 전체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왜냐면 주마나는 기가 막힌 바다 절경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식당도 리모델링 중으로 메인 수영장 쪽에 있는 식당만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눈물을 머금은 채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본 메인 풀장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아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풀 바가 수영장 옆에 있었다. 해안 절벽에 위치해서인지 경치가 너무나도 좋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역시 아름답다.
그간 발리에서 한 경험 중 고착된 것이 하나가 있다면 발리의 음식은 기대를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나와 아내는 별 기대 없이 킹 쉬림프 요리와 바베큐 요리를 주문했다. 리모델링 중이라 사람들이 많이 없었던 이곳은 굉장히 한적하고 쾌적했다. 멋진 풍경을 완상하는 동안 우리가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나와 아내는 풍경에 정신이 팔려 생각 없이 입안에 음식을 작게 썰어 넣었다.
"어, 이거 뭐야!!"
"오?!?!"
여태까지 먹었던 발리에서의 음식은 잊어야했다. 와우. 어썸. 진짜 존맛이었다. 주마나의 음식은 결이 다른 것이었다. 역시 최고급 리조트의 식당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물리아의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와중에 음식 하나가 아쉬웠는데 이곳의 음식은 첫입부터 나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마치 나의 혀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어 라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고소하게 직화로 구워진 새우의 맛은 정말 오동통한 것이 입속에서 룸바를 추는 것만 같았다.
나와 아내는 너무나 좋은 식사를 마치고서 산책을 다녔다. 한적한 식사를 마치고서 나른한 고양이처럼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다녔다. 푸른 하늘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배를 가득 채운 맛있는 식사와 가슴을 가득 채우는 푸른 하늘이 나의 만족감을 더해갔다. 불과 한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짙은 아쉬움에 허덕이던 나는 금방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가득 찼다.
"여기 밤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여기 음식은 대체 왜 이렇게 맛있는거야?"
"여기도 역시 너무 사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