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12부.
주마나의 객실로 돌아온 우리는 물놀이부터 시작했다. 수심이 깊은 주마나의 수영장은 더욱 수영할 맛이 나는 것도 같다. 햇빛이 비칠 때마다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수영장을 바라보며 따끈한 자쿠지에 몸도 담가본다. 오후 산책으로 로비에 나선 우리는 풀바로 이동했다. 꽃다운 아내를 보고서 꽃잎 하나를 건네주는 직원분이 이곳에서의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한편으로 자꾸만 피어오르는 아쉬움을 흩어버리고자 넓은 메인풀에 풍덩 빠져본다. 밤이 되자 달은 점차 몸집이 커지고 우리의 마지막 숙박일이 다가온다.
발리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에 차츰 슬픔이 끼어간다. 발리에 가는 날이 언젠가 올까 생각했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이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마치 그런 마음이 반영된 것처럼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었다. 그동안 발리에서 이렇게 구름이 많이 낀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유난히 흐리다.
나와 아내는 산책을 나섰다. 주마나가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경치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좋은 리조트답게 잘 조경이 되어 있었다. 역시 아쉬운 점은 당시에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는 점. 1년 가량 지난 지금은 공사가 잘 마무리 되었으려나. 지금 아마 더 멋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바다가 펼쳐졌다. 역시 바다는 높은 곳에서 봐야하나보다. 물리아 이후의 일정을 추가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물리아는 지대가 낮은 해변에 위치한 곳이라서 수평선을 눈 높이로만 보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낮은 곳에서 머물렀으면 높은 곳에서도 머물러 주어야했다. 삼빠띠를 초반부, 물리아를 중반부, 주마나를 후반부라고 치면 밸런스가 딱 맞았는데, 후반부라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역시 쉬이 떨쳐지지않았다.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메인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아침에는 조식뷔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예브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주마나의 음식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정말 맛있었다. 예외가 있다면 역시 과일들인데 그건 주마나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점차 구름이 걷혀가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넓은 하늘과 바다, 멋진 수영장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기분 좋은 것이었다. 마치 세상을 살짝 비껴간 틈새의 차원에서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로움이었다.
멋진 수영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역시 풀장에 뛰어들고픈 욕구가 마구 일어났다. 나와 아내는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일어났다.
빠르게 환복 후 우리는 수영장으로 왔다. 이곳의 수영장은 정말 빛이 비칠 때 색감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에메랄드 색이 마음을 정말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바다와 하늘이 비쳐주는 푸름이 우리의 수영장을 더욱 빛내주는 것 같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그래서 열심히 개헤엄을 쳐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영장의 입구부터 끝까지가 정말 거리가 멀었다. 워낙 큰 수영장이었다. 게다가 수십이 1.4미터라서 꽤나 깊었다.
수영장 안으로 들어오니 시야가 수면보다 조금 위였다. 그런 시야로 헤엄을 쳐보니 마치 수면 위로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세상의 마지막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세상의 마지막은 먼 바다와 이어졌다. 나는 세상의 끝을 향해 헤엄쳐가면서, 점차 세상이 끝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세상의 끝에 이윽고 손이 닿았을 때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마치 선물같이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푸른 땅과 나무들이 있었고 먼 바다는 정말로 먼 곳에 있었다. 이 수영장의 입구에서 끝까지 헤엄을 쳐본 그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렬한 경험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나저나 아내가 수영을 이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다닌 수영장이라고 해봤자 주로 호텔 인피니티 풀이 다였으니 마구 수영할 공간은 없었던 것 같다. 아내의 유려한 수영 동작을 보니 마치 인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사람은 못하는 게 뭘까.
야무지게 수영을 하면서 쉬다가 자연히 배가 고파지면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주마나에서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식당을 한 곳밖에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섰다. 질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이곳엔 많은 메뉴가 있었는데 모든 메뉴에는 실패가 없었다.
전날 우리는 로비에 다시 방문했을 때 주마나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였다. 인룸 마사지와 인룸 바베큐. 야무지게 놀았으면 야무지게 몸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멋진 우리 객실에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니 너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 두 가지를 예약해두었다.
예정된 시간에 마사지를 해줄 직원분들이 도착하셨다. 마사지용 베드와 여러 물품을 가져오셨다. 마사지에 필요한 향, 차, 여러 소품들이었는데 객실에서 받는 것인데도 너무나 차분하고 훌륭했다. 마사지의 야무짐으로만 따지자면 주마나가 1등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항상 마사지에서 강한 강도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조금 더 세게 해달라고 하자 직원분께서 팔꿈치를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상황이 뭔가 웃겨서 나와 아내 사이에 여전히 유행어와 같이 남아있다.
시원한 마사지를 받고서 역시나 아름다운 우리의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역시... 들어가야겠지? 야무지게 마사지 받았으니 야무지게 또 놀아야했다. 그게 우리 하루 일과의 거의 전부였다. 먹놀먹놀. 가장 보람차고 즐거운 일과였다.
그러는 사이 오늘의 진짜 하이라이트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룸 바베큐. 이른 시간부터 저녁 준비를 위해 직원분들이 와주셨다. 수영장 앞의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바베큐였다. 분주한 직원분들을 보고 있으니 이렇게 정성스러운 서비스를 받는 것 자체로 기분이 마구 좋아졌다.
수영장과 테이블을 예쁜 꽃으로 수놓아주셨다. 해가 점차 져감에 따라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무엇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나와 아내를 위해 준비된 것이고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아내를 위해 정성을 다 해주고 있었다. 결혼을 축하받는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세상에서 나와 아내가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무슨 와인인지, 무슨 식재료가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고서는 요리를 시작해주셨다. 차례차례 올라오는 해물 바베큐가 정말이지 무엇 하나 빠지지않게 기가 막힌 맛이었다.
특히나 새우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너무나 취향저격이었다. 아내는 황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음식의 맛뿐 아니라 식기 하나하나 조성된 풍경들 모두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해가 빛을 잃어갔지만 우리 테이블에서 빛나는 촛불은 언제고 계속해서 빛날 것만 같았다.
직원분께서 굉장히 친절하셨는데 우리가 한국사람임을 알아보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발리 사람들은 참 친절한 것 같다. 특히 케이팝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블랙핑크의 제니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나는 트와이스가 좋다고 했는데 같은 케이팝 팬으로서 동질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직원분들은 우리의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셨다.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밝게 떠있었다. 만월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달은 반쪽에 가까웠는데 어느새 보름달이 되었다. 달이 가득찬 것을 보니 우리의 여행이 곧 종착역에 닿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내와의 지난 열흘을 돌아보았다. 신혼여행 출정식으로 여겼던 결혼식부터 신혼 여행 전날, 발리로 이륙하는 비행기, 발리의 첫인상과 삼빠띠, 물리아 그리고 여기까지. 모든 것이 쏜살같이 지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돌아볼 때 분명 그 시간의 밀도는 굉장히 높았고 농도가 짙었다. 하루하루가 가득히 행복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른아른 흔들리는 촛불에 의탁하여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뽀얀 피부에 불빛이 비춰져 서글서글한 웃음이 마음 속에서 상 맺힌다. 아내의 손을 잡고서 말 없이 커다란 만월과 밤과 발리와 우리를 바라본다. 검은 연기가 속을 가득 메우는 것 같은데 이거 정말 아쉬움이 전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밤의 어두움이, 그 특유의 포근함이 가슴 속에 들어차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쉬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모든 일에 끝이 있고 필연적으로 마지막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에 전전긍긍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저 받아들이고 내가 느낀 이 강렬한 아쉬움도 추억의 한 조각으로 박제한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아름다울 것 같았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 안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어놓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시간을 보냈다. 마치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아니 마지막을 가장 기분 좋게 보내는 것처럼. 행복함과 즐거움으로 가득채웠고 오직 우리만으로 가득 찼던 신혼 여행의 마지막 날에도 우리는 함께 누웠고 바로 옆의 퍼즐 조각처럼 꼭 안고 있었다.
밤을 붙잡고 싶은 마음마저도 이제는 잠에 들 시간이다.
"잘 있어라 발리!!!!"
"현지인들이 다닐 만한 로컬 샵으로 가고 싶어요!"
"남길!!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