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13부.
주마나에서의 마지막 숙박일.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아쉬움에 하루를 낭비할 수는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다녀온 뒤 조식을 먹는다. 날씨 좋을 때 메인 풀에서 아내와 함께 수영을 즐긴 뒤 인룸 마사지에 그동안의 노곤함을 풀어본다. 그리고 저녁에는 주마나에서의 하이라이트였던 인룸 바베큐까지 즐긴다. 우리의 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달은 가득 살이 올라 만월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여행도 끝이 나야한다는 이야기겠지. 아내와 함께 발리의 마지막 밤을 끌어안고 잠에 든다.
발리의 아침엔 어디서든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발리에서 듣는 마지막 닭 소리 였다. 아침에 눈을 뜬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아내를 바라본다. 달콤한 꿈을 꾸고 있나보다. 발리에서의 시간이 바로 달콤한 꿈속이었다. 꿈같은 시간에도 깨야할 시간은 다가온다. 이제 이곳을 나설 준비를 해야했다.
짐을 바쁘게 싸고 나니 우리가 이제 발리를 떠난다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짐을 야무지게 정리하고서 블랙드레스를 입은 아내를 보니 사실 여행이 대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아내만 옆에 있으면 어디든 좋은 곳이 될테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수영장에 나섰다.
"잘 있어라 발리!!!!"
마지막에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버기를 기다리는 동안 수영장을 찬찬히 바라보고 유난히 구름낀 하늘을 바라봤다. 이곳에서의 많은 추억과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모두 한 트렁크에 싣고서 우리는 현관을 나선다.
체크아웃을 위해 로비에 왔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이제 떠나야 한다는 것이 제법 서글펐지만 이곳에서 즐겼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전날까지는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는 아쉬움이 나를 잠식할 것처럼 피어올랐었는데 정작 마지막 날이 되니 무엇이든 크게 아쉽지 않았다. 아마 마음의 준비를 미리 잘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별을 예측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니 남길과 페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길은 언제봐도 반갑다. 잘 지냈냐는 안부를 묻고서 우리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주마나의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저 즐거운 곳이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마쳤으려나. 그때 클리프 원베드 룸에서 묵지 못한 아쉬움을 언젠가 꼭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발리의 길거리에 오랜만에 나왔다. 발리에 있는 고급 리조트 안과 밖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삼빠띠에서 머무를 때만 해도 이런 발리의 모습이 익숙했는데, 물리아와 주마나를 거치고 나니 온도차를 실감하게 된다. 마지막 날이지만 굉장히 바쁜 날이었다. 스케줄이 아주 꽉 차있었는데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점심으로 한식당에 갔는데 사실 한국사람이 외국에서 한국음식을 먹는 것은 조금 웃긴 일 같다. 본토의 맛을 아는데 외국에서 한식을 먹다니. 하지만 여행사 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 별다른 기대 없이 식당에 들어섰다. 다양한 한식 메뉴가 있었다. 나는 육개장, 아내는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금방 나온 육개장을 한 입 먹어보았는데 오잉? 맛도리였다. 발리에서 만난 한식 장인의 느낌은 어딘지 생소했다. 의외의 맛에 아내와 나는 즐겁게 점심 식사를 마쳤다.
마지막 날이 바쁜 이유는 단연 쇼핑때문이었다. 들러야 할 곳이 많았다. 가장 먼저 폴로 랄프 로렌에 들렀다. 인도네시아에서 직영 공장이 있기 때문에 싼 가격에 폴로를 살 수 있다고 한다. 가족들의 선물로 폴로 옷을 사갔다. 폴로는 내 취향과는 조금 안 맞아서 아무리 싼들 그닥 구매 욕구가 피어오르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기념품 샵에 들렀다. 사실 이 기념품 샵까지 오기 전엔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다. 여행사에 제휴된 기념품 샵을 먼저 세 군데 들러야 했던 것이다. 가니 모두 한인이 하는 곳이었는데 역시 뭐랄까 좀 그랬다. 여행사에서 제휴된 기념품 샵이 뭔가 메리트가 없는 느낌이랄까. 여러가지 물건을 보여주면서 여기 물건 정말 좋다고 하는데, 한국에 없는 물건들도 아닌데다가 가격이 꽤 비쌌다. 특히나 뱀가죽 가방같은 물건들은 어딘가 짜쳤다. 옛날이야 해외여행이 어렵고 수입품을 구하기 어려워서 그런 물건들이 부의 상징이었다 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이런 기념품 샵을 돌면서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다가 나와 아내는 남길에게 말했다. 이런 곳들 말고 정말 현지인들이 다니는 마트나 가게로 가줄 수 있냐고 했다. 사실 남길은 여행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요구가 조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남길은 여행사 후기나 설문에서는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 뒤 우리가 원하는 기념품 샵으로 이끌어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한인이 운영하지 않는 현지의 마트에 오니 나와 아내는 눈이 돌아갔다. 정말 예쁘고 독특하고 신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가격도 쌌다. 이곳에서 가족들의 선물을 많이 고를 수 있었는데, 가격이 싸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사자! 하면서 마구마구 담았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던가 사다보니 250만 루피아를 썼다.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다음으로 면세점에 갔다. 발리 안에 있는 면세점이었는데 정말 넓 깔끔하고 모던하게 꾸며져 있는 면세점이었다. 정말 정신없이 아내와 면세점 쇼핑을 해서인지 면세점 내부의 사진은 없다. 쇼핑한 물건들은 공항에서 받을 수 있었다. 가족들 선물로 가방을 사고서 글렌데보른 28년 산을 아내가 사주었다. 친구들과 마시라고 통크게 사주었는데 이렇게 마음씨까지 예쁘다니 당신은 대체... 그리고 구찌에서 썬글래스를 하나 골라왔다.
정신없이 쇼핑을 하고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금방 저녁이 되었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정말 입이 떡벌어질 사이즈였다. 발리에서는 식당마다 수영장이 있는 건가. 아주 넓은 정원에 수영장이 있고 풀 바에서는 디제잉까지 하고 있었다. 파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내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남길이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주었다. 우리보다 우리 사진 남기기에 더 진심인 것 같았다. 남길과 함께라면 스냅 작가 안 부럽다.
발리에서 공항에 가기 전 마지막 행선지는 스타벅스였다. 사실 스타벅스가 뭐 그리 대단한 장소인가 가기 전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이곳의 데와타 라떼를 먹어보기 전까지는...
발리의 데와타 라떼는 살면서 먹어본 모든 커피 음료 중 가장 맛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원래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아서 그냥 발리에 있는 독특한 음료를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켰는데 한 모금 들어오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꿀떡꿀떡 들이켰는데 커피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였다.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라서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느긋하게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남길과 페릭은 마지막까지 우리의 짐을 챙겨주었다. 이제 남길과도 이별할 때가 된 것이었다. 발리에 있는 동안 정말 알뜰살뜰 우리를 잘 챙겨주었다. 친절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꿈을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정진하는 멋진 사람을 발리에서 만났다. 누구든 발리에 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남길에게 가이드를 맡기길 바란다. 그리고 그가 한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길과 이별하고 나니 이제 정말 발리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났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친 우리는 이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쉬움을 한 톨도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털썩 의자에 쓰러져 앉아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륙하는 비행기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발리의 바다 위로 한껏 높이 뛰어오르는 비행기는 고요함이 가득 찼다. 금방 기내식이 나왔는데 인도네시아 가루다 항공의 맛도리 기내식을 맛 본 뒤여서 대한항공의 기내식도 몹시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흠 비행기의 좌석이나 기내식이나 가루다가 더 나았던 것 같다.
새벽 비행기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그저 어둠뿐이었다.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칠흑 속에서 비행기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나와 아내가 만들었던 발리에서의 행복한 기억들도 검은 천에 싸여 허공 중에 떠있을 것만 같다. 어두운 하늘에서 햇빛을 찾아나서는 듯한 우리의 여정은 이제 한국으로 향했다.
감았던 눈을 슬쩍 떠보니 창틈으로 밝은 빛이 조금씩 새어들어왔다. 맑고 밝은 하늘이었다. 어느새 이렇게 맑아진걸까. 이윽고 비행기가 땅에 닿았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모양의 산과 익숙한 채도의 푸름.
그렇게 우리의 신혼여행은 끝이 났다. 삶에 있어서 단 하나의 빛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이 열흘 동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순간처럼 지나간 추억은 여전히 우리의 아카이브에 남아있고 나와 아내는 언제든 그것들을 꺼내보면서 웃음을 짓는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 조금 희미해졌을 뿐 퇴색될 줄을 모르는 빛은 여전히 발리를 향하고 있다. 언젠가 그 빛을 따라서 우리가 남기고 온 행복과 아쉬움을 모두 주으러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도 아내와 빈틈없이 행복하기를.
"이제 우리 집에 가자!"
무더운 한국의 여름 아침도 눈부시게 밝았다. 아내와 나는 손을 잡고서 공항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