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11부.
물리아에서 떠날 때를 맞이한 우리 부부.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진한 아쉬움이 나를 덮쳐온다.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던 곳이기에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아내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겨두고 아내의 손을 잡고 물리아를 나선다. 남길과의 반가운 재회도 잠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숙소인 주마나 발리에 도착한다. 주마나 발리에 도착해서 멋진 수영장과 고급스러운 객실을 둘러보며 만족감이 마구 드는 가운데, 주마나의 식당에 들렀다. 그리고 한 입 먹자마자 터져나오는 감탄사. 이제 음식까지 맛있다니. 여기서는 아내와 함께 어떤 행복을 느껴볼 수 있을지 기대가 가득 차는데...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잠깐의 산책을 다녔다. 발리의 날씨는 언제든 사랑스럽다.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다녀도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깨는 발걸음처럼 가벼웠고 나의 손은 따뜻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검은 연기가 조그맣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어느덧 마지막 숙소에 도착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이 검은 연기는 벌써부터 흘러나오는 아쉬움이겠다. 1년간 기다린 모란이 피어났음에도 온전히 기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찬란한 슬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얼른 검은 연기를 흩어버렸다.
물리아의 물개는 주마나에서도 물개였다. 나는 객실로 돌아와 곧장 물에 뛰어들었다. 폭 자체는 물리아가 더 넓었지만 수심이 주마나가 더 깊었다.
무려 1.4미터였다. 이정도 수심이면 애들이 놀기엔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물이 깊으니 물놀이 하는 재미가 더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주마나 발리가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한 탓에 바람이 물리아보다 많이 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추웠다. 풀빌라의 물들이 모두 온수 풀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차이는 몸을 조금 경직되게 만들었다.
물이 조금 차서 물에 들어갈 때나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물놀이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수영장 옆에는 바로 야외 자쿠지가 있었다. 온수가 뜨끈하게 나오고 거품이 요동을 치는 자쿠지로 바로 몸을 옮겨 몸을 담그면 그만한 행복이 없었다. 자쿠지에 들어와 팔을 편하게 늘어뜨리고 고개를 젖힌 채 하늘을 바라봤다.
아내는 옆에 있고 하늘은 푸르다. 주마나의 수영장은 햇빛이 비칠 때 정말 아름다운 에메랄드 색으로 빛이 났다. 아쉬웠던 점은 주마나 발리에 오고서부터 구름이 조금 많아졌다는 것이다. 전날까지는 정말 구름을 구경하기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고, 마음껏 볼 수 없는 것이라서 더 아름다운 것 같았다. 마치 옥색 보석의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수영장의 물은 빛을 받아 산란시키는 파장이 나를 끌어당긴다.
물에 있으면 몸이 가벼워져서 그런지 아무리 놀아도 잘 지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아마 어머니를 닮은 나였지만 아내는 물놀이에 그렇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놀이를 혼자 하면서도 신나게 노는 나를 보는 것이 아내에겐 가장 큰 유희인 것 같았다. 나를 보는 얼굴에 일말의 지루함이나 따분함도 없다. 나는 아내의 그런 맑은 웃음이 좋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발리의 따뜻한 겨울에서 어느덧 해는 다음날 다시 돌아올 단장을 하고 있다. 객실에서 물놀이를 할 만큼 한 나는 아내와 함께 로비로 향했다. 로비의 풍경이 멋져서 다시 한 번 가보자는 아내의 제안이었다.
트여있는 로비의 프레임 밖으로 이 세상의 풍경이 보인다. 마치 우리는 객석에 앉아있고 프레임 바깥으로 세상이 준비한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아무런 대사도 없었지만, 등장인물은 나무와 풀, 하늘과 바다, 구름과 집들뿐이었지만 흥미로웠다. 아내가 그 프레임 가운데로 섰을 때는 연극의 공간이 확대된 것 같았다. 아내가 바로 이 세상이 준비한 멋진 연극의 주인공이었나보다. 조금 떨어져 아내의 뒷모습과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아내의 곁으로 움직였다.
로비에서 잠깐 완상을 마친 뒤 우리는 풀바로 이동했다. 메인 풀 옆에 너무나 멋지게 인테리어된 풀바가 있었기에 지나칠 수가 없었다. 주마나 발리의 모든 곳이 럭셔리하고 멋졌다. 넓은 메인풀 옆에 이렇게 큰 규모의 풀바가 있다니. 메인풀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참이었던 당시였기에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내향인인 나와 아내로서는 그것이 매우 좋았다. 우리는 잔잔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좋다.
간단한 음료를 주문하니 직원분께서 예쁜 꽃을 하나 꺾어주셨다. 참 마음으로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곳이다. 이런 작은 꽃 하나가 사람에게 선물이 되고 사람을 감동시킨다니 참으로 멋진 이야기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은 어렵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다. 주마나에서 받은 꽃은 뽀얀 아내의 피부에 잘 어울리게 부드러운 분홍색이었다. 아내가 활짝 웃었다. 꽃처럼.
사람 없이 바람과 나무, 저녁만 있는 주마나 발리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이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자연히 여러가지 사색에 잠기게 되는데, 역시 마음 한 구석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지펴졌다. 지는 해처럼 잠깐은 침전하는 마음을 따라가볼까 싶었지만 아직 내일도, 모레도 남은 마당에 그건 아닌 것 같아 얼른 손을 휘저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메인풀로 갔다.
해가 없어서 앞쪽의 썬베드에 몸을 뉘였다. 뒤쪽에는 햇빛이 가려지는 동그란 구체의 썬베드가 있는데 해가 밝게 뜨면 내일 저기에 몸을 맡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건과 물을 받아서 썬베드로 왔다. 작은 탁자가 있었는데 풀바에서 마시던 음료를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옮겨주셨다.
구름이 많은 날이어서인지 절벽 위의 고지대여서인지 바람에 서늘함도 조금씩 섞여 있었다. 발리에서는 야외 썬베드에서 수건을 덮고 있으면 가장 완벽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사람의 모든 감각은 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말 없이 수영장과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나는 수건을 걷어올리고 윗옷을 벗었다. 역시 이렇게 크고 넓은 메인 풀을 앞에 두고 들어가보지 않는 것은 물개라고 할 수 없겠지.
풀 밖에서 볼 때는 여기가 넓다는 것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직접 들어와서 보니 정말 굉장히 넓었다. 이렇게 넓은 수영장에 와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스쿠버 마스크를 쓰고 수영장 안을 보면 너무나도 넓은 빈공간이 있어 왠지 공포감까지 들었다.
먼 거리의 수영장 끝부분에 다다르자 시야가 트인다. 물이 깊다보니 수면 조금 위까지만 보이다보니 이 수영장의 끝이 마치 바다로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차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수영장의 끝이 바다와는 많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왠지 슬펐다. 많이 온 것 같은데 닿을 수 없나 하는 감상적인 생각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포근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를 너무 혼자 오래 두었나 싶은 생각이 반, 빨리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반이었다. 그렇게 꽉찬 마음을 가지고 나는 아내에게 열심히 헤엄쳐갔다.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는 시간이 갈수록 짙어질 것이었지만 이 넓은 물 속에서 흩어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안고 싶지 않았다. 돌아오니 모든 썬베드가 접혀있었다. 나도 마음을 접고 돌아가야 할 때였다. 아내와 함께 객실로 돌아갔다. 머리 위로 농담이 흐드러지는 저녁이 있었고 달이 점차 밝아졌다. 해가 지는 것은 밝은 달을 맞이하기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필요가 없었다.
객실의 모든 등을 소등한 우리는 발리가 주는 편안한 밤에 안겼다.
"와 이것도 너무 맛있는데?"
"인룸 마사지? 이거 좋겠는데?"
"이렇게 멋진 식사를 할 수 있다니!! 너무 신나!"
"이제 정말 마지막이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