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9부.
이곳은 파도파도 예쁜 곳밖에 없다. 푸른 수목들이 조경된 길로부터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해변까지 이어진 길을 바라보고 아침을 먹으러 이동했다. 물리아는 아무래도 조식 맛집임이 분명한 것 같다. 호텔라운지의 조식을 해치우고 우리의 객실로 돌아왔는데, 나는 물개에 빙의라도 된 듯 물에서 나올 생각 없이 수영장을 마구 헤집고 다닌다. 혼자서도 잘논다는 말은 나한테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자쿠지와 야외 샤워장을 천천히 즐기며 극락을 체험한 후엔 사이드 수영장의 풀바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물리아의 뷔페식당인 더 카페에서 먹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높은 밀도를 가졌으면서도 왜 이렇게 잘 가는 것인지... 우리의 마지막 밤으로 이어질 아침이 마침내 밝아왔다.
이른 시간 눈을 뜬 나는 역시 개인 수영장을 바라보는 썬베드로 넘어갔다. 물리아에서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바라본 아침인데 매일 새롭다. 아침뿐 아니라 점심이나 밤에도 아내와 함께 썬베드에 몸을 기대어 하늘을 보고 새소리를 듣는 것은 단 1초도 지루할 틈 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가볍게 쪽잠에 들거나 새근새근 소리를 내는 아내의 감은 눈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결혼 후 내가 받은 첫번째 선물일 것이다.
오늘의 조식은 물리아의 플로팅 조식이었다. 삼빠띠에서 받은 플로팅 조식은 물에서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테이블에 올려놓고 먹었지만 이번엔 플로팅 조식답게 물에서 먹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발리의 풀빌라는 미온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막 차가운 물은 아니지만 조금 시원한? 정도다.
물에서 식사를 해보니 역시 불편하다. 일단 서서 먹어야 하고 어딘가 걸터앉아 먹더라도 허리를 숙여야해서 불편하다. 그리고 물이 튈까봐 행동이 위축되고 체온보다 낮은 물 속에서 밥을 먹다보니 왠지 체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빨리 아침을 해치워버린 뒤 플로팅 조식을 정리했다. 역시 플로팅 조식은 보기에만 좋은 것 같다. 더부룩함을 느낀 나는 바로 물에 뛰어들었다. 하이퍼랩스를 보니 무슨 금쪽이마냥 가만히 못 있는데 나도 내가 놀랍다.
아내는 물놀이를 많이 즐기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와 함께 물놀이를 할 수 있을 때 야무지게 사진을 남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전 다이소(아마도)에서 방수케이스를 하나 샀는데 요거 아주 물건이었다. 내 방수케이는 워낙 오래 전에 산 것이라 물속에서 촬영자체가 어려운데, 아내의 방수 케이스는 물 속에서 아주 선명하게 영상과 사진이 촬영되었다. 이 방수케이스, 스쿠버 마스크, 해먹 튜브 세 가지는 단연 물놀이 필수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근데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적당히 아침 수영을 즐긴 우리는 버기를 불러 스파로 이동했다. 물리아에 있는 스파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리아에 있는 모든 건축 중에서 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물리아의 스파는 마치 물의 나라에 온 것처럼 모든 곳에 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건물 안과 밖에서 이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바깥쪽으로는 물리아 레이크와 비슷하게 아름다운 멋진 전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은 무엇하나 대충 만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스파에 들어와서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우리에게 지정된 룸으로 들어갔다. 마사지샵들이 대개 어두운 분위기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밝은 분위기였다. 특히 들어오는 햇빛을 자연적으로 조명으로 활용하는 것이 정말 문명의 극치이면서도 자연 속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한다. 극과 극은 통하나보다. 그런 괴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니 말이다.
정말이지 깔끔하고 잘 정돈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룸 안쪽의 샤워실과 탈의실은 마사지룸 안에 별실로 되어 있었으며 샤워실도 개별적이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나와 아내는 마사지를 받는 내내 이런 경험을 지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왼쪽은 마사지를 마치고 나서 스파 내에 있는 바에서 제공한 음료와 간식이고 오른쪽은 웰컴티다. 사람의 기분을 이루는 복합적인 구성요소 중에 모든 것을 최상으로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받는 것 같은 서비스였다. 서비스 자체가 영업인 느낌이랄까. 실제로 영업이 되어서 스파의 케어 메뉴를 더욱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리아에서의 마사지는 단연 최고였다. 스파를 위해 물리아를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스파를 받고 한껏 부드러워진 몸과 마음을 식당으로 옮겼다. 솔레일이라는 식당으로 아시안 푸드 전문이었다. 사이드 수영장을 바라보는 식당으로 처음 물리아 해변에 왔을 때 저기도 꼭 가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그곳이다. 하지만 그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험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이제 물리아의 식당에 기대를 하지 않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기대 없이 메뉴판에서 그래도 맛있으리라 생각되는 메뉴를 주문했다.
음... 그러니까 물리아의 식당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물리아 식당 완전 구려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좀 평범한, 보통의 정도라는 것이다. 고급 리조트에 고급 스러운 인테리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멋진 식당이 평범한 맛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뭐랄까 비유를 하자면 차은우님과 대화를 하는데 차은우님이 중학생 말투를 쓰는 느낌이랄까... 외관은 참 화려한데 오묘한 부조화가 있었다.
그래도 그게 대단히 아쉽지는 않았던 것이 우리가 이곳에 식사를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이 여행에 주요한 목적 또는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다행히 우리 부부는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사실 한국음식 추종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기 때문에 한국을 벗어나서 대단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리라는 기대가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까 물리아의 식당이 조금 아쉽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에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휴양이다. 우리는 쉬러 왔다. 여행은 휴식이다. 그저 편안한 상태로 마음껏 쉬는 것이다. 여행이야말로 같이 가는 사람과 성향이 정말 잘 맞아야 하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찰떡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여행 와서 갖는 스케줄, 여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모두 놀랍게 일치했다. 참 아내와 같이 있으면 어떻게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이 있나 싶다. 마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삶의 과정이 모두 아내에게 수렴하는 것같다.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은 내가 인지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모두 아내를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당신, 혹시 나 아니야?"
"당신, 나지?"
꼭 하고 있는 생각도 겹친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투명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다. 누군가는 여행와서 이렇게 가만히 누워서 쉬는 것을 이해 못할 지도 모른다. 유명한 관광지나 명소를 가고 바쁘게 돌아다니고 가성비를 챙기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도 있겠지. 다행히 우리는 둘 다 이런 널부러져 있는 휴식을 최고로 여겼다. 우리에겐 이게 바로 여행이었다. 우리는 해가 어느 곳에 위치하든 썬베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객실의 썬베드에 쉬면서 낮잠에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면서 바람을 맞은 후에 해가 뉘엿뉘엿해졌다. 우리는 저녁의 해변을 느껴보자는 생각으로 해변으로 이동했다. 해가 점차 기울자 긴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웠다. 파란 하늘에 주황빛이 점차 퍼졌다.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천천히 주황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의 밝음이 점차 씻겨나가는 듯, 태양의 상흔에서 배어져 나오는 혈흔인듯 하늘을 처량하게 물들였다.
해변의 썬베드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저녁 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수목같이 흔들렸다. 지금 바라보는 이 밤이 물리아의 마지막 밤이구나. 태양이 생명의 빛을 잃고 소멸해가는 한편 그 옆에서는 뒷짐을 지고 모든 과정을 방관하는 달이 떠올라 있었다. 상현달이었다. 해를 붙잡고 싶은 애처로운 마음을 반영하듯 달빛 역시 밝았다. 푸른 하늘과 바다는 태양을 따라 먼 곳으로 이동하듯 수평선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태양에 비하면 애처로울 정도의 빛을 머금은 달이 하늘과 바다에 어두운 장막을 씌운다. 밝은 빛에 조응하던 연초록의 수목들도 눈을 감은채 몸을 흔드는 것 같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렇다면 나는 과정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일까. 끝나는 것이 아쉽다면 끝에 가까운 지금은 온전히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압도한다. 지금으로 간절히 돌아오고 싶은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다.
우리는 몸을 일으켰다. 해변에서 메인 풀장으로, 메인 풀장에서 호텔의 로비로.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금기둥이 되는 금기가 있더라도 돌아봤을 것이다. 돌아본 자리에 나와 아내가 없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는 과정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슬퍼졌다. 한동안 말없이 창 너머의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던 나를 아내가 부른다.
"왜? 뭐 놓고 온 거 있어?"
뭔가 놓고 왔던가. 그런 것은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왔지만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내의 물음에 나는 아내를 돌아봤다.
"아니! 없어."
물리아의 하늘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리아의 바다와 수영장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을 함께 누리는 옆자리의 아내에게 있었다. 나는 무겁던 발을 옮겨 아내에게 달려갔다. 등 뒤에서 은은히 빛나던 상현달은 점차 살을 찌워갔다. 물리아의 마지막 밤에 나는 아내를 끌어안고 깊이 잠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짙게 아쉬운 느낌은 처음이야."
"남길! 오랜만이에요!!"
"이제 주마나 발리로 가자!"
"어! 여기 뭐야! 어떻게 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