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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Aug 24. 2024

[단편 소설] D+1

그녀가 떠나간 다음 날

                                   

 우리 형제의 효도는 끔찍한 실패로 끝났다.

 바로 어제.


 어제와 오늘. 단 하루. 

 그 차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간극이 만들어 낸 것 중 가장 참혹한 것은 무엇일까.

 또 가장 찬란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반쯤 찡그린 눈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5시 27분.

 급한 일이라도 생각난 사람처럼 재빨리 침대를 빠져나간다. 잠이 엉겨붙지 못하도록.

  

 눈이 뻑뻑하다. 항시 같은 자리―침대 옆 선반―에 올려두는 안약을 눈에 떨어트린다.


 채 흡수되지 않은 안약 몇 방울이 광대를 타고 흘러내린다.


 눈물의 길과 같다.


 반쯤 열어놓은 창문으로 초겨울 서늘한 아침 공기가 스며든다.


 화장실에 비치해놓은 구강 청결제를 입에 머금고 한참을 오물거리다 뱉어낸다.


 세면대를 통해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액체의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며 실상 잠이라는 건, 민트향을 풍기는 시퍼런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한다.


 부엌 의자 등받이에 걸린 얇은 카디건을 걸친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컵에는 전날 밤 잠들기 전 미리 따라놓은 물이 덩그러니 있다.


 냉수를 꺼내 따른다. 컵의 허리쯤까지 담겨있던 물이 넘실대며 불어난다.


 단번에 마시기 적당한 온도가 된 물을 찬찬히 들이킨다.


 냉장고를 열어 쓰디쓴 홍삼 원액이 담긴 갈색의 묵직한 유리병을 꺼내든다.


 머리가 작고 몸통이 기다란 숟가락을 병 깊숙이 찔러 넣은 뒤, 포크로 파스타를 돌려 감듯 빙글 감는다.


 짙은 갈색과 검정색을 합쳐놓은 홍삼 원액이 한가득 딸려 올라온다. 입안에 넣는다.


 얼굴이 절로 찡그려지면서 아주 조금은, 건강해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본다.


 스테인리스 컵에 시원한 녹차를 한가득 따라 작업실 겸 서재로 들어간다.


 캔들라이터를 이용해 정신을 맑게 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향초에 불을 붙인다.


 은은한 향기가 서재에 들어차기를 기다린다. 향이 번진다.


 의자에 앉아 등을 곧추 세운다.

 고지를 목전에 둔 단편 소설을 마무리하기로 한 날이다.

  

 전원 버튼을 눌러 잠들어있던 하얀 노트북을 깨운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곧바로 화면에는 사흘 전까지 바쁘게 써내려가던 소설 파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흘.

 어느덧 사흘이 지난 것이다.


 사흘 전에 느닷없이 시작된 어떤 일이 바로 어제 끝났다.

       




 늦은 밤이었고, 모르는 번호였다. 그래도 나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답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 네, 저…, 혹시 성함이?


 젊은 여자. 돌연 내 이름을 물었다.

 

 ―전 서준기, 라고 하는데요. 누구시죠?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 이름을 말해줬다.


 그런데도 여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내 이름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그러면 말이 됐다. 그것만 말이 됐다.

    

 ―네…, 서준기 씨. 음,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저, 다름이 아니라 김남희 씨가… 

    

 김남희.

 김. 남. 희.


 굉장히 생경한 이름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소식이 끊긴 친구의 이름이라도 들은 것처럼 마냥 낯설었다.  

   

 ―네? 누구요?     


 하며 나는 다시 묻는 수밖에 없었다.  

   

 ―아, 김남희 씨… 아드님 아니신가요?     


 여자가 말한 이름과 어머님이라는 단어가 갖는 관계를 그제야 인지할 수 있었다.


 김남희. 엄마의 이름이었다. 순간 나는 부끄러웠다.


 척을 지고 살아온 못난 자식이 된 것 같았다.  

   

 ―네네, 제 어머니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나는 무심결에 거실 벽에 걸린 시계로 눈을 돌렸다. 언제 구매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초침이 움직였다.


 자정을 두 시간 앞둔 시간.


 평소라면 침대에 누워 온종일 작은 활자를 보느라 고생했을 눈 위에 온찜질기를 올려두고 있을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른 흐름이 누군지 모를 여자와의 통화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불현듯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에게서 가족의 이름을 듣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 네. 저… 여긴 병원 응급실입니다. 이곳으로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바로 오실 수 있으실까요?   

  

 전화 속 여자는 머뭇거리는 것으로 본인이 느끼고 있는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굴었다.


 응급실이라는 단어에 깃든 무게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일단 상황 설명 먼저 해주시죠. 어머니는 좀처럼 밤에 외출을 하시지 않는데요.  

   

 나는 휴대폰 너머 여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엄마와 늦은 시간에 하는 외출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단히 고전적인 수법의 보이스피싱일 가능성도 다분해보였다.


 이제 수술비를 요구하려나?


 돌연 가슴이 진정되면서 한걸음 물러나있던 옅은 피로가 다시금 몰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흥분과 초조의 기미가 느껴졌던 여자의 목소리는 약간이나마 침착해졌다.  

   

 ―그, 김남희 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평소답지 않았다.          





 작업의 시작을 알리듯 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왼손가락은 ㅁ, ㄴ, ㅇ, ㄹ. 그리고 오른손가락은 ㅓ, ㅏ. ㅣ, ; 자판 위에 가지런히.

 그게 시작이다.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응급실은 엄마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밖은 무서우리만치 어두웠다. 휴대폰은 22:38이 적힌 화면을 보여주었다.     


 병원 입구 오른편 끝에 ‘응급’이라는 빨간 글자가 눈에 띄었다.

 달려갔다.


 긴 통로를 지나 자동문을 통과했다. 응급실이라 불리는 장소. 영화 속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진 않았다.


 간간이 어디를 다쳤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들어왔다.


 다시금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입이 마르고 불쾌한 긴장감이 엄습했다. 얼굴이 따끔거렸다.

   

 접수처로 갔다. 나는 여전히 어색하기만한 엄마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말을 하면서도 내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길 바랐다.


 엄마와 교통사고, 그리고 응급실.

 이 세 단어가 하나의 문장에 나열되어있다는 것이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졌다.     


 내 얼굴을 보며 기다렸단 듯이 미소를 지어보이는 간호사를 보자, 긴장이 한 톨 정도는 덜어진 듯했다.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간호사의 웃는 얼굴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작은 단상 같은 접수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로비의 엘리베이터 앞으로 나를 안내했다.     


 ―5층으로 올라가세요. 거기 직원한테 문의하시면 돼요.  

   

 5층으로 갔다. 또 다른 간호사가 아까부터 날 기다렸다면서 빨리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접수처 벽면에 붙어있는 시계는 11시로 맹렬히 달려가고 있었다.     


 ―여기에요.     


 간호사가 말했다.


 온몸을 휘감는 긴장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내 눈치를 살피며 새하얀 색으로 된 병실 미닫이문을 열었다.


 세 걸음이나 걸었을까. 나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전 7시 30분.

 평소처럼, 사흘 전 아침처럼 나는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는 곧장 화장실로 가 구석구석 이빨의 뿌리 부분까지 신경을 써가며 양치질을 한다.


 꼼꼼히 세수와 면도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볕을 함빡 머금어 빳빳하게 마른 새 옷의 틈으로 두 팔과 다리를 통과시킬 때의 느낌이 상쾌하다.


 진한 커피를 만들어 다시 작업실 책상으로 돌아오면 8시 30분.


 컵을 들어 균형 잡힌 무게감을 느껴본다.


 짙은 안개가 일렁이듯 하얀 김을 뿜어내는 컵을 가만히 응시한다.    

 

     



 어두운 병원 로비에 앉아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상조 회사에서 파견된 장례지도사라는 뚱뚱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친인척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만큼은 직접 전화로 전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그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차적으로 연락을 취해주시면 나머지 분들에게는 저희가 일제히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먼저 친형을 떠올렸다. 내가 병실을 나선 순간을 기점으로 내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 된.


 전화를 걸까 하다가 말았다.


 ‘저기 있잖아. 엄마가 죽었어.’ 하는 괴상하고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입 밖으로 뱉어낼 자신이 없었다.


 메신저를 눌렀다. 이내 노란 화면이 사라지고 여러 채팅 방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손가락을 놀려 한참을 내려가서야 형과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동생, 형 없는 동안 엄마 잘 챙겨.

 응.     


 4개월 전에 나눈 짧은 대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다.


 예의 뚱뚱한 장례지도사가 다가왔다.


 그의 통통한 두 손에는 검은 정장이 들려있었다. 

         



 경쾌하게 울리는 키보드의 타격음이 방 안을 메운다.


 시간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아가 12시가 된다.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점심을 먹는다.


 식사 후에는 밀린 설거지를 하고 꼼꼼하게 청소기를 돌린다.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어느덧 오후 1시.


 작업실로 들어간다.          




 누군가 와서 엄마의 사진을 보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향을 새로 피웠고, 누군가는 국화를 꺼내 헌화대에 올려두었다.


 냅다 절부터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두 번.


 그리곤 옆에 서있는 내게 슬쩍 시선을 던졌다.


 괜스레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나는 마주한 사람과 맞절했다.


 한 번. 난 아직 죽지 않았으니.   

  

 내 앞에 선 사람들은 뜻밖의 비극에 어쩔 줄 몰라하며 하나같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건네는 위로를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언젠가는 필요할 날이 올 테니까. 누군가 선심 쓰듯 건네주는 위로 하나가 미치도록 그리울 날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문상객은 내 생각대로 많지 않았다. 엄마의 세상은 철저하게 나와 형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유가족들을 위해 마련된 작은 단칸방에서 청한 새우잠이지만 한결 정신이 맑아졌다.


 빈속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본능에 아까웠다. 밥을 먹었다.


 여느 장례식과 다를 바 없는 육개장과 가짓수 늘리기에 급급해 보이는 반찬이었다.


 떡도 몇 개 집어 먹어봤지만 그저 그런 맛이었다.


 무심결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재중 전화. 발신자는 형이었다.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을 두 번도 채 듣기 전에 형의 다급하면서도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형의 목소리가 원래 이랬나, 생각하며 나는 짐짓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형. 저기, 나 장례식장이야.


 ―동생…     


 동생이라는 말끝에 형의 짧은 한숨이 이어졌다.


 형은 나를 항시 ‘동생’이라고 불렀다. 이름으로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동생." 하며 꼭 집어 말하지 않으면 내가 동생이라는 사실을 잊기라도 할 것처럼. 

    

 ―이따 오후 다섯 시 비행기야. 미안해. 도저히 바로 출발할 수가 없었어.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형과 통화를 마치자, 돌연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분 나쁘고 의미도 없는 행사 같은 건 때려치우고 집에 가서 평소처럼 차분히 앉아 글을 쓰거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이나 하며 땀을 흘리고 싶었다.


 하지만, 상주는 자리를 비워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상주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담당 장례지도사는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옷차림이었다.

 말끔한 옷차림에 짧은 앞머리를 세워 고정시키니 왠지 모를 신뢰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남자가 말했다.    

 

 ―컨디션은 괜찮으세요? 가장 중요한 건 몸 상하지 않고 무사히 장례를 치르는 겁니다. 틈틈이 잠 좀 주무시고, 식욕이 없겠지만 식사도 꼭 하세요.     


 그는 과할 정도의 진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 모습이 꼭 내가 지불할 금액만큼의 친절과 관심을 제공받는 것 같았다.


 내가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머뭇거리며 물어왔다.    

 

 ―저, 형님께서는 언제…….  

   

 나는 형과 통화했던 일을 전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장레지도사는 이 정도 규모의 애도로는 장례비용을 무사히 치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처럼 표정이 어두웠다.       

   




 오후 5시.

 작업을 마치고 집을 나선다.


 걸어서 20분. 엄마가 살던 집. 열흘만이다.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관문을 연다.


 엄마의 반평생이 담긴 곳. 이곳에 깃든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으면 온전한 엄마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걸까.    

 

 엄마의 꼿꼿한 허리가 떠오른다.


 그녀는 다른 건 몰라도,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팡이 쇼핑만큼은 할 수 없다며 걸음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워 걷곤 했다.

 땅바닥과 몸이 늘 180도의 각도로 만났다.


 탁한 집 안 공기와 먼지 쌓인 소파, 화장실 거울의 물때. 내가 직면하게 될 엄마가 없는 새로운 생활의 궤적을 한눈에 보여준다.


 오늘과 내일이 당연히 이어져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의 방심이 집 안 곳곳에 새겨져있다.


 전기밥솥에 들어가지 못한 불린 쌀과 접시에 담긴 묵은지, 해동시킨 돼지 앞다리 살과 충전 중인 무선청소기.


 나는 식재료를 다시 냉장고에 두고, 충전기 콘센트를 뽑아 청소기를 제자리에 둔다.


 거실 소파에 앉는다.


 환기를 위해 열어뒀을 차창으로 찬 공기가 들어와 온기를 앗아간다.


 집에 남은 그녀의 소소한 흔적들 앞에 나는 한없이 울적해진다.          




   

 밤 열 시가 되고, 형이 도착했다.


 찬 기운을 한가득 머금은 오버코트를 벗자, 맞춤하게 들어찬 어깨 봉제선과 한겨울밤 어둠처럼 선명한 검정 재킷이 드러났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보였다. 형은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내게 말했다.     


 ―동생, 넥타이 더 없어?  

   

 형은 전임자가 망쳐놓은 프로젝트를 뒤늦게 수습하는 것처럼 특유의 과감함과 우월감으로 내가 한 결정들을 번복했다.


 형과 나, 둘이서 장례식이라는 프로젝트를 무사히 치러야했다.


 형은 그야말로 단독 권한을 행사했다.


 형이 망설임 없이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수정할 때마다 나는 죄를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그의 두 눈은 강철처럼 매서웠고, 굳건히 닫힌 입술에는 떨림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에도 추위에 떨듯 떨고 있는 오른손을 바보처럼 내려다봤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초짜 배우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지금 긴장하고 있는 건가? 자문했다.

 아니.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경련에 가까운 떨림의 출처는? 절망? 낙담? 비애? 그게 무엇이든. 차라리 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자의 두근거림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병마에 시달리다 길고 긴 싸움을 끝낸 여전사의 숭고한 죽음이었다면.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한 자의 결승점이었다면.

 고통에서 해방된 자의 자유로운 몸짓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렇지 못해서, 축복이 서린 찬란한 죽음이 아니어서, 죽음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구분 짓지도 못할 만큼 순식간에 끝나버려서, 나는 한없이 떨었다.


 눈치도 못 챌 만큼 서둘러 다가온 죽음 앞에서 엄마가 공포를 느꼈을까봐.

 두려움에 떨며 눈을 질끈 감았을까봐.     


 형은 장례지도사와 대화를 마치자마자 며칠씩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육개장을 들이켰다.


 나는 그 와중에 저 새하얀 고급 셔츠에 빨간 국물이 튀지 않을까, 걱정했다.


 정작 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셔츠에 튄 자국 같은 거야 얼마든지 지울 수 있다는 듯이.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리던 형이 돌연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이에 반응한 건 조문객들의 식사를 챙겨주시던 여사님이었다.


 여사님은 훈련된 군인, 혹은 친절한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형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수육과 새우젓을 더 달라는 형의 구체적인 요구가 나는 더없이 미웠다.

     

 밤 열한 시. 갑자기 문상객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형의 회사 사람들이었다.


 빈소 입구에도 꽤 많은 근조화환이 놓여졌다. 형이 속해있는 야구클럽, 고등학교 동우회, 거래처, 등등. 다양한 장소의 다양한 사람들이 형을 위로해주었다.


 빈소로 들어서는 복도 양옆으로 쭈욱 늘어선 화환을 보며 나는, 형의 사회적 힘이 닿고 있다는 것이 새삼 당연하면서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대기업에 다니는 형 덕분에 우리 가족은 그간 적지 않은 혜택을 받아왔다. 혜택은 엄마가 세상을 뜬 후에도 이어지는 것이었다.


 회사 로고가 박힌 종이컵과 일회용 접시와 수저와 젓가락까지. 모두 형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장은 엄마만 없을 뿐이지, 형의 결혼식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형은 돈으로 하는 효도에 인색한 적이 없었다.


 반면, 흔한 안부전화와 년에 두 번씩 돌아오는 명절 때에는 한없이 인색했다.    

 

 척 보기에도 형은 장례식이 익숙한 듯 보였다. 회사 일을 내팽개치고 귀국해있는 현재 상황을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해보였다.


 그럼에도 형은 몹시 분주히 움직였다. 그 필요 이상의 분주함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남 행세.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듯이 형은 누구보다 열심히 죄책감을 덜어내는 중이었다.


 빈소의 공기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집 곳곳엔 엄마만의 소박한 규칙과 검소한 생활습관 같은 것이 산재해있는 듯하다. 그것들을 단박에 알아챈 내가 내심 기특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엄마와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왔구나. 뒤늦은 죄책감에 시달려 밀린 일을 해치우듯 지낸 게 아니라, 찬찬히 일상을 공유했구나.


 나는 새삼 안심한다.


 엄마를 잃었던 그날에서 한참이나 멀리 온 것 같다. 사흘이라는 시간은 가을과 겨울을 가로지르기에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누군가의 생과 사를 구분 짓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반면, 누군가를 잊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검은 정장을 입고, 아주 오랜만에 형을 만나고, 처음 보는 사람과 절을 주고받고, 엄마를 따뜻한 불로 감싸 안고, 좁디좁은 곳에 모시는 것으로 장례는 끝났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이번 겨울은 유독 길고 시리고 나는 종종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밤을 지새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엄마는 내 얼굴을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가끔 보면 너는 놀랄 만큼 무정한 아이라고, 그래서 겁난다고, 부모자식 관계로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을 것 같다고.


 엄마의 그 말이 나는 조금 슬펐고,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영정으로 쓰인 엄마 사진을 보자기로 감싼다.


 그녀의 피에 젖어 세상에 처음 났을 때에는 눈앞의 이 여인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될 줄은 몰랐으리라.


 이렇게나 짙은 인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으리라.


 그녀는 나의 시작을 책임지고 나는 그녀의 끝을 지켜봐주었다.

 그녀는 내 시작을 응원해주었고 나는 그녀의 끝을 위로해주었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고요히 샘솟는다.  

        




 나는 형 옆에 서서 우리의 어머니였던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발가벗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것에게 옷을 입혔다. 그것은 천사의 옷처럼 새하얗다.


 역시 엄마는 천국으로 가는구나. 정말 다행이다. 나는 잠시 안심했다.


 누군가는 이어 그것의 두 손을 가지런히 했다. 이제 저 손을 잡을 수 없는 건가. 나는 잠시 울적해졌다.


 베에 묶인 그것.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본 적이 있었나. 그녀가 내 시선의 중심이 된 적이 있었던가.


 나는 궁금해졌다. 있었겠지. 분명히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슬펐다.     


 반함(飯含)하고 수의를 입히고 염포(殮布)로 감싸 묶는다. 그것으로 염습(殮襲)이 마무리된다.

 온통 생경한 단어.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정교한 과정을 홀린 듯 보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엄마를 잃었구나.


 누군가가 말했다.     


 “……올라가시죠.”     


 나는 그렇게 했다.     


 그날 저녁에도 형은 열심히 손님을 맞았다.


 나는 이름 모를 문상객과 쉴 틈 없이 맞절을 했다. 형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 공짜니까 많이 먹고 가라는 장난스런 말을 덧붙였다.


 테이블 위로 드러난 형의 두툼한 상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더웠는지 상복 재킷은 의자 등받이에 걸려있었다.


 넥타이로 수직 양분된 형의 몸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형의 오른편/왼편, 어느 쪽에 있었을까.


 형은 어느 쪽을 더 소중히 대하고 어느 쪽을 등한시했을까.     


     



 나는 엄마가 살았던 집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내 흔적들을 보며 그녀와 확실히 이어져있었다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인연으로 분명히 이어져왔다고 확신한다.

 그러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결코 발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울적하다고 말하기에도 무척 애매한 기분. 이게 상실감일까. 자문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나무랐다. 고작……, 입을 다문다.


 액정이 깨진 엄마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최근 통화목록 상단 부분에 내 번호가 당당히 적혀있다.


 사흘 전 통화목록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못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내 목소리가 핸드폰의 스피커를 통해 엄마의 귀로 흘러들어갔다.


 그게 더없이 기쁘다.

 그저 차분하게 일상의 언어를 주고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는 듯하다.


 내 번호는 ‘왕자 돼지’라고 저장되어있다.


 저장된 이름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돼지 왕자’가 어감 상 자연스럽다고 엄마에게 수정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기어코 바꾸지 않았다.


 15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내 안에 축적된 그녀와의 시간과 그것들이 가져다줄 거대한 애정을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난다.


 폭우 속에 튼튼한 우비를 입은 소년처럼 든든하다.


 엄마가 되살아나 언제 그랬냐는 듯 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적. 이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던데.


 여생은 그 기적의 행방을 찾으러 다녀볼까.


 뜬금없는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기적이 작용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천벌이나 불운의 사고 같은 게 아니다. 인류의 순환이라고 생각하자. 기적을 바라는 대신,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뇐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어요.


 이 세상에 이처럼 완벽한 문장이 또 있을까.      

    




 ―고생 많으셨어요.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지도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형도 나도 힘겹게 고개를 숙였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났다.


 길고 긴 한숨을 늘어놓은 형이 불쑥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동생, 고생했어. 첫날부터 힘들었겠다.     


 다정한 동작이었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난 사흘간의 일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일상과 절망. 두 단어가 이토록 근접하게 붙어있을 줄은 몰랐다.


 또한 나는 지난 사흘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그래서 무서웠다. 언제 무너질지 몰라 두려웠다.


 나는 용케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다.


 엄마를 잃었을 때조차 무너지지 못한다면, 나는 대체 언제 무너질 수 있는 인간인지. 의문스러웠다.


 제때 무너지지 못하는 인간이란 기실 이미 무너져있는 인간이 아닐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 손상될 부분이 남아있지 않은, 엉망진창인 인간.

     

 두 손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내가 엄마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옆에서 다급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형’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 남자를 제외하고는.    

 

 가만 생각해보면, 지난날의 나는 언제나 형 앞에서 절절맸다. 발랄한 미인, 혹은 거북한 직장 상사와 독대하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과 몸이 뻣뻣해졌고, 목소리도 평소의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형과 대화를 할 때마다 나는 우리 형제 사이에 어떤 존재론적 균열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각자가 세워둔 진영을 넘나들지 못하는 경직. 메울 수 없는 간극. 융화될 수 없는 부조화. 

    

 그 균열의 출처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알아보려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형과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흘려보냈다.


 그 방대한 시간 속 어느 시점에 닻을 내리고 바로 여기야, 이곳이 문제였어, 하며 진단을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왜 엄마는 내게 형을 대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걸까.


 내가 묻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만큼은, 형과 가까워지는 방법만큼은 나 혼자 터득했어야했나.


 자문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눈동자를 돌려 형을 슬쩍 봤다.


 형은 더없이 무감각한 얼굴로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무서우리만치 고요한 냉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엄마를 향한 무심함? 장남이라는 책임감? 이미 넘칠 정도로 효도를 했다는 자만? 혹은 자부심? 눈앞에 열거되어 있는 바쁜 일상? 


 형은 무너질 줄 아는 인간일까.

 조금은 궁금했다. 묻지 않았다.  

   

 엄마에게 우리 형제는 어떻게 기억될까.

 같은 자식임에도 전혀 다른 형태의 기억으로 남게 될 테지.


 나는 엄마에게 어떤 자식이었나.

 궁금했다. 물을 수 없었다.     


 당연히 나는 엄마의 아들이었고, 때론 남편이었고, 때론 오빠였고, 때론 남동생이었다.

 투정부리고, 툴툴거렸으며, 응원했고, 경시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그녀를 감히 사랑했다.

 

 돌연 언젠가 겪게 될 상실의 고통이, 뒤늦게 나타나 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그 고통이 겁났다.


 그녀가 없는 인생을 떠올리기에는 내 상상력이 너무 친절했다.


 그녀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동생, 잘 지내.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래, 형. 잘 가. 라고 나는 대답했다.


 택시에 오르는 형의 움직임은 가벼웠다.


 줄곧 어깨에 이고 있던 짐에서 해방된 사람처럼 개운해보였다.


 내 어긋난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일까. 끝까지 형을 악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옹졸한 착각일까. 악인으로 만들어야하는 나만의 비겁한 정의일까.


 형과 달리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아들이었다고, 어떤 부탁도 어떤 얘기도 서슴없이 꺼낼 수 있는 할 수 있는 편한 아들이었다고, 그동안 형이 해왔던 건 물질적 봉양이었을 뿐 결코 효도가 아니라고, 호소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우리 형제는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형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고, 형도 내게 어떤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멀어져가는 택시를 보며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렸다는 고독감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오늘은 그저 어제에서 하루만큼의 시간이 더해진 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평범한 날 중 하나라는 듯이. 나는 다시금 빽빽한 계획들로 인생을 채워나갈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리고 나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내가 엄마라고 불렀던 누군가를 그리워 할 것이다.


 하루는 다시 하루를 얹어가며 몸집을 불려갈 테고, 나는 그 위에 서서 어느덧 까마득해진 어제를, 사흘 전 그날을 떠올릴 것이다.


 과거를 밟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설 방법은 없다지만, 착실하게 켜켜이 늘어갈 하루가 나를 무디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더디지만 자연스러운 망각 속에서 불현듯 눈물을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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