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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영임 Dec 01. 2024

홀로서기도 예행연습이 필요해

#혼자 #홀로서기 #훈련 #여행 #터닝포인트 #외로움

그래, 나 혼자 해보자.



우왕~ 

굉음과 함께 비행기 동체가 45 각도로 곧추세우고 죽을힘 다해 내달린다. 러다가 한순간 무중력 상태 빠져듯 두둥~ 몸이 뜬다. 이스탄불 비행기 안이다. 인천 상공을 막 벗어나고 있다. 이제 돌아갈래 돌아갈 수 없다. 그래 떠나는 거야.

맨날 똑같이 사는 게 무슨 의미있을까? 퇴직 이전과 이후가 다르고, 60년 한 바퀴 돌아 환갑(還甲)을 기점으로 삶의 패턴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나름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필요했다. 이렇게 행동으로 실행하게 된 것은 "엄마는 참, 손이 많이 간다니까." 의 한마디 철퇴 맞은한 충격의 결과이기도 하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홀로서기도 예행연습이 필요하다. 첫 시도로 튀르키예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자.






자, 홀로서기 예행연습 해보자.

튀르키예 패키지여행 상품이지만 그 속에 혼자 끼는 것이다. 해외연수나 출장의 경우는 일행이 있었고, 그동안 해외여행은 주로 남편과 동행이었다. 트렁크 짐 꾸리는 것부터 대부분 남편 몫이다. 환전한 돈지갑과 여권도 남편이 보관한다. 분실할지 모른다고 출국심사 때 여권을 꺼내주고 통과하면 다시 거둬간다. 내 수중에는 여권도, 돈 한 푼도 없다. 그러니 길 잃어버리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남편 놓치는 것이다. 국제 미아가 될까 봐 남편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여권도 돈도  있다. 12시간 비행기 안에서도, 화장실 갈 때도 전대처럼 앞으로 메고 1분 1초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깜빡 잠들었다가도 눈 뜨면 가방부터 쓸어내려 "잘 있네." 도한다. 또 하나 핸드폰이다. "어디 뒀지?" 집이나 학교 수시로 찾아 헤매는 판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잃어버리면 일행과 떨어져도 어찌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거다. 아예 2,000원짜리 연결고리를 구입해서 가방에 매달았다. 여권, 돈, 핸드폰 어버리 꼼짝 마라. 


혼자 온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일행 중 처럼 혼자 온 사람이  바랬다. 하지만 부부, 가족, 친인척 등 다들 끼리끼리다. 식사할 때마다 어느 팀 테이블에 끼어 앉는 것이 제일 고역스럽다. 미운 오리 새끼 심정이랄까? 첫날은 아들, 딸, 엄마 3 식구와 함께 앉았다.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하나? 말 한마디 없이 역꾸역 목메는 빵을 먹어야 했다. 이, 또한 견뎌야 하리라.

잠이라도 편하게 자자. 잠잘 때 코를 골면 어쩌나 걱정하고, "씻어도 될까요?", "화장실 써도 되나요?" 이런 것까지 물어가며 열흘 동안 한 방을 쓰는 것은 서로가 끔찍한 일이. 처음부터 추가요금을 내고 싱글룸으로 예약길 참, 했네 싶다. 하지만 늦잠이 들어 나 혼자 놔두고 일행이 떠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깊은 잠을 들 수 없었다. 모닝콜을 넣어준다지만 기상시간 보다 30분 전, 10분 전, 5분 전 알람을 설정해 둔다. 날짜가 지나자 차츰 적응 되어 숙소에 들어가면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일단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고, 샤워하며 나올 때 춤도 추고….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패키지여행 것이 그렇지 . 고 찍….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끌려다니는 것이 학생들 수학여행과 다르지 않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도시로 옮겨가는 일정이라 늘 숙소가 바뀐다. 숙소에 들어가면 가이드는 떠나고 없다. 아주 큰일이 아니면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현지 직원과 의사소통도 어려우니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

숙소마다 엘리베이터 는 것부터 세면대 수도꼭지 트는 방식, 화장실 물 내리는 방법까지 다 제각각이다. 한 번은 머리와 몸에 잔뜩 비누칠한 상태인데 샤워기 조작이 안 되는 거다. 눗물에 눈은 맵고 할 수 없이 풍뎅이처럼 욕조바닥에 엎치락뒤치락하며 헹군 웃픈 일도 있다.  

무엇보다 식당에 갔다가 내 방을 찾지 못해 미로 속 같은 호텔 안을 헤맨 경우 여러 차례다. 옛날이야기처럼 실을 풀어가며 다녀야 할 듯하니 건물 입구를 살피고 모퉁이 지날 때마다 단서가 되는 특징을 머릿속에 입력해두어야 한다. 

관광할 때  여행가이드가 보이는 사정거리 안에 머문다. 출발을 지연시키는 민폐녀가 될라 집합 시간 10분 전, 5분 전마다 핸드폰 알람 설정으로 2중, 3중 단도리를 한다.






저 여자는 왜 혼자 왔을까?


내가 왜 혼자 왔는지 무너무 궁금한가 보다. 

'저 나이에 왜 혼자지? 이혼녀인가? 뭐 하는 여자지?'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지만 자기들끼리 눈으로 말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행 중에는 부부끼리 온 팀이 가장 많다. 그중 50대 중반쯤 되는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 기회가 있었다. “어떻게 혼자 오셨어요?” 조심스럽게 물어 온다. “다 큰 어른인데 혼자 올 수 있지요?”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왜?”하는 의아한 표정이다. 내 나이에 혼자 해외여행 오는 경우라면 그에 합당한 대답을 내놓아야 하나보다. 그렇지 않으면 이혼녀 거나 부부간에 치명적인 갈등이 있다고 여기는 눈치다. 

“남편은 몇 년 전 이 나라 여행을 다녀와서 저 혼자 오게 되었어요.” 친절하게 답해주자 그제야 난감한 표정을 풀며 "혼자 무섭지 않아요? 외롭지 않아요?" 신 궁금을 쏟낸다. “홀로서기해 보려고요.” 웃으며 간단히 응대하자 이내 “어머, 멋있다. 부러워라.” 손뼉 치며 감탄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절대 못 할 거예요.” 손사래 친다. 그녀의 남편도 "남자인 나도 혼자는 엄두를 못 내겠는요." 그러니까 부럽기는 하지만 시도하지는 않겠다는 거다.


혼자라지만 단체여행이다.

람들과 적당히 맞추는 게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자 사진 찍어 주겠다는 사람도 생기고, 자연스레 찍어달라는 부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안궁안물'이다. 남들에 대하여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 사느냐? 결혼은 했느냐? 자녀는 몇 명이냐?" 묻지 않는다. 남편하고 왔으면 결혼은 했을 테고, 아들하고 왔으면 자식은 있는가 보다. 하면 그만이다. 서로 관찰할 뿐. 더 이어지는 참견은 피하고 싶다.

사람들은 사소한 대화 중에도 본인에 대한 단서를 흘리게 된다. 유심히 사람 얼굴을 살피며 어디가 불편하지 않느냐? 묻는 노년남자는 의사인 듯하고, 틈만 나면 한국으로 통화하는 젊은 남자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일 테고, 연신 남편에게 "~챙겼어? 확실해? 알았지?" 확인하는 중년 여자는 초등학교 교감선생님 틀림없고, 아내에게 꽤 값나가는 목걸이척하니 사주는 중년남자는 원 몇 명쯤 거느린 사장으로 보이고…. 확인해보지았지만 얼추 맞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뭐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딱, 봐도 교사네~." 하지 않을까?


"언제 이 나라에 또 오겠어?" 

관광지마다 빠짐없이 챙기자고 기를 쓰는 열성 관광객에 비하면 나는 '날라리'다. 선택관광 중 일부는 과감히 빠지기로 다. 일행이 올림포스산 케이블카를 탈 때 나무 그늘에 앉아 숲멍을 하고, 묘기에 가까운 지프차로 카파도키아 절벽을 다녀올 때 나는 터키 커피를 홀짝거린다. 노천카페에서 맥주도 한 잔 하고, 시장이나 도로 휴게실에 들리면 주전부리 사서 나눠먹으며 소소하게 돈 쓰는 재미 즐겼다. 처음부터 뭐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의지 없었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어떻게 달려졌을까?’ 그걸 보고 싶은 거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인천행 비행기 안이다.

비행 11시간을 버티느라 불편하긴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10여 일 동안 혼자 보낸 시간 순간순간이 참 대견하다. 지나고 나니 별 것도 아닌데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두려웠다. 앞으로는 그렇게 겁먹지 않고 충분히 즐기면서 혼자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을 듯하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여행 아닌가? '노영임! 잘 해냈어. 대견해.’ 혼자 중얼거린다. 머리 하나정도, 한 뼘은 성장한 기분이다.

다음엔 어디로 떠나볼까? 퇴직 일자가 2025년 8월 31일이니 바로 다음 날인 9월 1일 떠나는 거야. 발칸반도 크로아티아직금도 손에 쥐었겠다 40년 가까이 수고한 나에 선물로 태어나 처음,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보는 거야. 물론 자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혼자라서가 아니라, 홀로서기를 못 하기 때문이라잖아


나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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