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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영임 Nov 24. 2024

엄마는 참, 손이 많이 가네

# 홀로서기 #혼자 #딸  #눈먼 소녀 #자화상 #퇴직

엄마!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1년 동안 넣던 적금이 만기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자 높은 은행 찾아 갈아탈까? 그냥 기존 은행에 재치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한 푼이 어디냐 싶어 인터넷으로 금융기관을 검색해 보았다. 원래 경제 쪽으로는 까막눈이라지만 몇 번씩 상세 정보를 읽어봐도 이율 계산부터 못 알아듣는 것투성이다. 뭘 알아야 해 먹지.

이럴 땐 딸에게 SOS를 치는 수밖에. 금융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니 ‘나보다 하나라도 더 잘 알겠지.’ 싶어 딸아이에게 부탁했다. "딸! 엄마 좀 도와줘." 말 떨어지기 무섭게 "엄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짜증 섞인 목소리다. “이제 혼자서도 할 줄 알아야지.” 어린아이 나무라듯 한다. '저런 못된 딸년 같으니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어쩌겠나? 아쉬운 사람이 참아야지. 그런데 그 끝에 면박 주듯 “엄마는 참, 손이 많이 간다니까. 이 한 마디가 훅! 명치끝을 치받는다. 순간 어느 한 지점이 건드려진 것처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내가 손이 많이 간다고? 

그러잖아도 얼마 있으면 환갑이다. 퇴직이다. 요즘 들어 착잡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나이 들면 자식에게도 이렇게 무시와 설움을 당하다는구나 싶어 참담했다. “됐어. 이제 너한테 뭐 부탁하는 일 없을 거야. 걱정 마.” 쏘아붙이듯 한마디 한다. “참내, 엄마는 별것도 아닌 걸 괜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네.” 딸도 제 엄마 반응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듯하다.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속이 후련하냐? 남도 그렇게는 말 안 하겠다.” 그동안 묵혔던 서운함이 터졌다. 딸은 딸대로 생각지 못한 봉변을 당한 것처럼 서운해한다. 그리고 다시는 안 볼 듯이 제집으로 가버렸다.

"손이 많이 간다고, 내가?" 양치질하다가도, 운전하다가도,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 말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나는 타고나기를 공주과(科)가 아닌 무수리과(科)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행정실 직원이나 선생님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기나 하는 그런 꼰대 교장은 절대 아니라고 나름 자부해 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인터폰으로 오라 가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선생님이 결재받으러 교장실에 들어오면 일단 내가 먼저 일어나 자리를 권했고, 짧은 내용이면 같이 일어나서 이야기 나누었다. 차든 커피든 내가 직접 내려서 대접했다.  

원래 타고나기를 공주과(科)가 아닌 무수리과(科)라 누가 나를 챙겨주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고, 나 때문에 불편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썼다. "나도 다 큰 어른인데 내가 할게요." 웃으며 말다. 한 마디로 '심부름'시킨다고 느낄까 봐 꽤 신경 썼다. 그런데 꼭 그런가?






부글부글~ 속 시끄러운 몇 날 며칠이 지났다. 

그제야 흙탕물 가라앉듯 차분해진 내 속들여다보게 된다. 거기에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그렇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나가 있다.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제외하면 그 이후 큰 어려움이나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 손이 빨라 빠릿빠릿하니 일을 척척 해내서가 아니다. 오히려 컴퓨터 다루는 것부터 핸드폰 조작까지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렇다면 별 수 있었겠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 했겠지. 컴퓨터 전원이 들어오지 않거나 프린터기에 종이가 걸리면 교무실로 쫓아갔을 테고, 승용차 계기판에 빨간불 들어오면 정비소 찾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큰일 났어" 전화했을 것이다. 2년 넘도록 쓰고 있는 핸드폰 모델명도 몰라 "그거 뭐야?" 사준 아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통신사 약정이나 결재 방식도 아는 게 없어 딸에게 처리해 달라하고 뒷전에서 구경하는 식이었다. 그동안 직장이든, 집이든 손 내밀면 도와줄 누군가 곁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지금까지 누구 덕에 살았을까? 한 마디로 남 덕에 살아온 셈이다.


문득 윤동주의 시「자화상(自畵像)」의 한 구절이 읊조려진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참, 부끄럽다.





존 밀레이 그림 <눈먼 소녀>가 생각난다. 

눈먼 소녀 곁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눈먼 소녀에게 "저기 하늘에 무지개 개가 떴어." 말해주는 소리가 들르는 듯하다. 그리고 "황금빛 밀밭에는 새들이 놀고 있어." 조근조근 이야기 들려줄 때 소녀는 눈을 감고 있지만 귀로 들으며 모든 장면을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그릴 것이다. 이 그림에 빗대 볼 때 나는 '눈먼 늙은 소녀' 아닐까? 

일과 삶의 조절이 중요하다지만 천칭저울로 재듯 균형 잡힌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아들, 딸이 유치원 입학해서 고등학교 졸업하도록 한 번도 입학식, 졸업식에 가 본 적이 없다. 우리 학교도 입학식이고, 졸업식 날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려 준 기억도 없다.

특히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는 퇴근해서 겨우 씻고 잠들기도 바빴다. 일에 매몰되어 '눈먼' 상태가 되어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놓치는 것들 투성이다. 내 몸 하나 추단하기도 버거웠으니 나 같은 사람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그 과정을 무사히 넘긴 것은 그림 속 어린아이처럼 누군가 옆에서 챙겨주는 조력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수고로움 덕분에 큰 불편함 느끼지 않고 살아온 것뿐이다.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덕분에 잘 살았다고 고맙다는 인사 꼭 전하고 싶다.

                                                                                                                                                                        

                          존 밀레이 그림 <눈먼 소녀>  출처: https://www.bing.com/images



모두모두 고마워요.





퇴직이란 단지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아쉬울 때 손 내밀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 나 혼자 해야 한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사뭇 다르다. 나이가 많아서, 늙어서, 힘이 없어서 못 한다면 그 비참함과 서러움이란…. 그런 신세가 될게 불 보듯 뻔하기에 엄마를 강하게 키우겠다는 것인지 괘씸하긴 하지만 딸아이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 선언하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젊은이들 앞에 쫄지 않고, 모양 빠지게 살아가지 않으려면 별 수 있나. 홀로서기해야지. 


자, 어디 혼자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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