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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영임 Nov 17. 2024

힘 좀 빼세요. 힘!

#힘 #성취욕 #노력 #오기 #편안함

너무 거만한 거 아녀요?     


"푸우우~" 수영장 물을 다 들이켤 듯하다. 그럴 때마다 강사는 "몸에서 힘 빼세요!" 주문한다. 힘을 빼야 몸이 물 위로 뜬다는 것이다. 나는 물에 안 빠지려고 손발 사지를 버둥거리며 안간힘 써 버티는데 힘을 빼라니 "이게 말이 돼?" 그런데 말이 되었다. 수없이 지청구 들어가며 보름 정도 지나니 내 무거운 몸이 물 위로 뜨는 것이다. 

탁구 배울 때도 그렇다. 번번이 탁구공으로 뻥! 뻥! 홈런을 날린다. "회원님! 힘 좀 빼세요. 힘!" 코치가 탁구 잘 치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것은 고사하고 힘 빼라는 주문만 한다. 힘 빼는 데만 석 달이 걸렸다.  

그 탓인지 고질병처럼 어깨가 문제다. 늘 곰 한 마리 올라탄 것처럼 천근만근이다. 오십견까지 겹쳐지니 뒷목까지 뻣뻣하다. “너무 거만한 거 아니에요?" 목에 너무 힘이 들어간 탓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농담을 던진다. 그렇지만 농담만은 아니다. 어깨와 목에 잔뜩 힘준 채 어금니까지 악물고 안간힘 쓰는 나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릴랙스~, 릴랙스~" 달래듯 중얼거리며 힘을 푼다.       

그런데 내가 '힘'을 쓴다는 것은 몸으로 힘주는 것만이 아니라 '기(氣)'를 쓰는 것과 같은 의미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힘주고 살까?      


내 별명은 ‘개천 용출이다.’

내가 시골 여중, 여고를 졸업한 후 대학 들어갔다고 '개천에서 용 났네.' 누군가 장난 삼아 붙여준 명이다. 가난한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옆집 숟가락 몇 개까지 훤히 아는 내 고향 진천이 싫었다. 지긋지긋한 고향, 진천을 벗어나기 위해서, 신분상승(?)을 위해서는 죽어라 공부해 대학을 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취업 위주로 대학 진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각자도생 하는 수밖에 없다. 영어, 수학은 어쩔 수 없지만 암기과목은 교과서 몇 쪽, 몇 번째 줄까지 맞힐 정도로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그 결과 드디어 진천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살아가는 방식도 ‘죽기 살기’ 되었나 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에디슨의 말을 철저히 신봉한다. 천재도 99%의 노력이라는데 천재가 아닌 나는 오로지 노력만이 살길인 것이다. 남들은 3번만 읽어도 된다 하면 나는 5번은 읽겠다 마음먹고 무식하게 덤빈다. 거기에 더한다면 ‘두고 보자’오기랄까? 



#1.

'독수리타법'으로 워드 1급 자격증을 따다.

이거야말로 라떼이야기지만 82년도 국어교육과는 시험에 타자(打字) 과목이 있다. 작성할 분량은 고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니 우선 급한 대로 시작한 것이 손가락 두 개로 콕! 콕! 찍는 '독수리타법'다. 이후 타자는 없어지고 컴퓨터로 대체되었지만 자판 두들기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래도 어느 정도 속도가 나오는 편이라 별 어려움 없이 '워드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그걸 보고 친구가 한 마디 한다. "두 손가락으로 1급은 죽었다 깨나도 못 딸걸?" 만약 독수리타법으로 워드 1급 자격증을 딴다면 본인 손에 장을 지지겠단다.

"죽어도 안 된다고? 어디 한 번 해보지 뭐." 컴퓨터 용어도 잘 모르는 컴맹 주제에 슬며시 오기가 발동했다. '독수리 부리를 더 뾰족하게 갈고 갈자.' 초시계 재가며 수없이 연습했다. "다! 다! 다!" 차츰 현란한(?) 손놀림으로 시간이 빨라졌다. 그 친구 손가락에 된장을 끓였는지 확인한 바 없지만 '워드 1급 자격증'을 한 번에 따냈다. 내게 꼭 필요한 자격증도 아니고, 굳이 목숨 걸지 않아도 되건만 '안 된다' 하니 기를 쓰고 덤빈 경우다.     

#2.   

10년 동안 시조에 매달린 것도 그렇다.

목표는 오직 하나다.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등단'3년 정도 공부하면 되겠지.' 마음먹었다. 웬걸.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식이다. ‘10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은 안 된 셈이지만 적어도 예닐곱 번 정도는 떨어졌다. 연말쯤 신문사에 원고를 투고하고, 마음 졸여 기다리지만 1월 1일 자 신문에 내 이름은 없다. 그 해 꽃샘추위가 물러날 때까지 그지없이 추운 봄날을 보내야 했다. 나에겐 '빼앗긴 봄'이었다. "그냥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끝이 어딘가 해 보자’ 버티고 버티다 보니 결국 10년 만에 등단하게 되었다. 7전 8기(七顚八起)가 무슨 뜻인지 보여준 산증인이다. 

등단 후 어느 순간 “아~”하고 탄식처럼 계속 떨어져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글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응축이 아니라 농축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단어와 이야기를 욱여넣다 보니 걸쭉하다고 할까. 글 맛이 안 났던 거다.   

      

#3.    

마흔 중반 늦은 나이에 전문직 도전도 그랬다.

24년 교직생활에서 인생 턴(Tun)하자고 덤빈 관문이다. 방학이면 핸드폰도 끊고,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식곤증으로 졸릴까 봐 김밥 한 줄로 점심, 또 한 줄로 저녁식사를 때운다. 독서실 총무가 퇴근하는 새벽 1시. 나도 하루를 마치는 시간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갔다가 새벽 1시에 독서실을 나섰다. 그런데 온통 세상이 하얗다. 순간 머릿 속도 하얘졌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 서 있는가? 감이 오지 않았다. 창문 없는 독서실에 갇혀있으니 그동안 폭설이 내린 것을 모를 수밖에. 겨우 정신 차리고 눈 덮인 차를 찾으러 독서실 부근 골목을 헤맸던 기억이다.  

필기시험, 면접 등 과정마다 거꾸로 매달린 채 정수리 끝에서 진액이 똑! 똑!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올해 못 붙으면 이 끔찍한 과정을 다음 해에 또 겪을 생각 하니 끔찍했다. '숨 막혀 죽느니 차라리 죽어라 공부하자' 싶었다. 거기에 더한다면 후회 없이 해보자는 오기였다.





기형도 시인은 ‘질투가 나의 힘’이고, 황규관 시인은 ‘패배는 나의 힘’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는 ‘오기가 나의 힘’다.

고향을 벗어나 '개천 용출이'라는 별명을 듣게 된 것도, 두 손가락으로 콕, 콕 찍어 워드 1급 자격증을 딴 것도, 뒤늦게 시조에 매달려 10년 만에 등단한 것도, 마흔 중반에 24년간 교사에서 장학사로 전직하게 된 것도 어느 것 하나 공짜는 없었다. 살아오는 과정 중 발돋움하듯 큰 변화가 있었는 것은 오기 부린 결과일 것이다.  

'치열하게 살았노라' 내 묘비명에 이런 문구가 써지는 건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펼쳐놓고 보면 '죽기 살기로 싸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것도 남들과 싸우기보다는 나와 싸우는데 온 힘을 다 써버린 셈이다. 그러니 정작 문제해결하고 나면 기진맥진이다.    


 



이제 알겠다. 힘 빼라는 의미를….

초임병들이 무서워하는 훈련 중 하나가 '유격 레펠훈련'이라고 한다. 인간이 최악의 공포를 느끼는 지상 11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급속하강훈련이다. “자, 내려갑니다!” 교관의 지시에도 벌벌 떨고만 있다. “애인 있습니까? ”좋아하는 사람 이름 부르며 뛰어내리라고 한다. 목청껏 “영자야! 사랑한다.” 외치고도 손을 놓지 못한다. 손 놔도 괜찮다는데도 말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초임 훈련병이 낙하하는 순간처럼 두 손 놔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꽉, 움켜쥔 것을 놓고, 힘을 풀 때 주르륵- 줄을 타고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요즘 들어 나 스스로 풀어주었을 때의 편안함을 알겠다. 어깨에 힘준 채 이 악물고 살일 없다는 것을 말이다.


죽고 살고 할 일 하나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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