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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영임 Dec 08. 2024

감히 나를 무시해? 콤플렉스 탈출기

#음치 #몸치 #탈출 #운동 #춤바람 #기죽지 않기

다, 나오라 그래!


나는 얼굴이든 공부든 특출 난 게 별로 없다.

대체로 남들 눈에 안 띌 정도로 평이하다. 출신성분(?)을 따져봐공주과(科)가 아닌 무수리과(科)다. 게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중간치기’가 세상 살아가는데 유리하다면 난 딱, 중간치다. 보호색을 지닌 것처럼 이만큼 편리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중간치에도 못 드는 것, 특히 2가지가 나를 기죽인다.

이것 때문에 남들은 어깨 으쓱할 때 나는 의기소침해져 있어야 했다. 누구는 앞전에서 으스댈 때 나는 뒷전에 머물렀다.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을 넘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팍! 팍! 죽다니….

사춘기보다 무서운 갱년기에 들자 반항아처럼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겨눠보고 싶어졌다. 거기다 퇴직하면 내게 남는 것은 시간뿐이라지 않는가. 평생 기죽어 살란 법 있어? 이 참에 뿌리를 뽑아봐?  한번 붙어보는 거야. 래, 다 나오라고 해!





나는 음치로소이다


입만 뻐끔뻐끔, 립싱크 가수라고나 할까.

중학교 때 교회 학생회장이었다. 소읍의 작은 교회라 몇 명 모이는 학생회 예배에 반주자가 있을 턱이 없다. 회장인 내가 "주께 영광을~~♪♬” 찬송가 선창 하면 나머지 따라 부르는 식이다. 그런데 꼭 그때마다 첫 , 첫 소절 못 잡는다. 한마디로 ‘삑사리’ 다. 이내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쥐구멍이라고 찾아야 할 만큼 고역스러운 순간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건 고사하고 예배를 망친 죄인이라 회개해야 싶다가 오히려 “하나님! 제가 음치인 건 당신 탓 아닌가요?” 따져 묻고 싶었다. 이때부터 뻐끔뻐끔 입은 벌리지만 웃음거리 될까 봐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노래를 부른다고는 하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들릴까 말까? 립싱크 수준이다.

    

소풍 가는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신나는 게 소풍날일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공부도 안 하고, 일단 학교를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거다. 일 년에 한 번 도시락 반찬으로 싸갈까 말까 한 햄이랑 계란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김밥이 있다. 뿐인가, 칠○사이다에 삶은 계란, 것질할 용돈까지 두둑해지니 당연하다. 남들은 설레어 전날 밤 잠을 설친다는데 나는 며칠 전부터 잠 못 이루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수건돌리기' 벌칙으로 노래시키면 어쩌지? 또 오락시간은….

교사가 되어도 이 고약한 상황은 계속된다. ‘어른 먼저’ 예의범절을 잘 가르친 탓인지 꼭 선생님부터 노래하란다. 못한다고 질색팔색 뒤로 빼도 녀석들은 울상인 선생님 놀려 먹는 게 재미있나 보다. “노래해! 노래해!” 더 극성스레 합창하며 다그친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목을 가다듬고 "학교 종이 땡땡땡♪♬!” 악 쓰듯 불러댔다. 에이~, 시시하다고 다시 하란다. 멱따는 소리로 더 세게 학교종을 울렸다. 그렇게 몇 번 부르고 나니까 다음부터 나는 ‘자동 패스’다.

     

노래는 오락이 아니라 고문이다.

코로나 팬더믹을 지나며 회식이라는 게 없어졌다지만 회식 자리 뒤풀이로 노래방은 필수 코스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도 마이크 들이댈까 조마조마 미치겠다. 참내, 이게 이리 떨릴 일인가? 번쩍거리는 조명을 피해 구석자리 앉아 공부 모드다. 무슨 노래를 하지?’ 선곡 책 아무리 뒤적거려도 아는 노래가 없다. 우리 민족은 왜 이리 흥이 많은 걸까? 도대체 왜 이리 노래를 좋아하는 걸까? 차라리 이민을 가버리던지.


'절대 음감', '절대 음치' 한 끗 차이지만 기죽기에 충분하다. 

이 지긋지긋한 콤플렉스를 끝장내보자고 큰맘 먹고 실용음악학원 보컬반을 등록했었다.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18번지 노래. 딱! 한 곡 마스터하자는 각오였다. 그런데 굳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목 골절로 깁스하는 신세가 되어 그마저 흐지부지되었다.

어떻게든 ‘노래 젬병’이라는 한(恨)을 풀고 싶다. 퇴직하면 아줌마 ‘노래교실’은 꼭 다녀볼 생각이다. 노래에 대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 ~ing다.

          






|나는 몸치로소이다|


소풍 다음으로 끔찍한 게 운동회다.

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학교에서 틀어놓은 행진곡으로 온 동네 고샅까지 들썩거린다.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먹거리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 돗자리 깔고 자리 잡는다. 아이들은 경기 하나 끝날 때마다 무슨 개선장군처럼 쫓아가 음료수 병나발을 불었고, 이것저것 주전부리하느라 이만한 잔칫날이 없다.

그런데 나는 운동회가 싫다. 청군, 백군으로 나눠어 경기가 진행될 때 그 어떤 종목에도 뽑히지 못한다. "너 때문에 졌잖아!" 아이들 원망 듣느니 차라리 잘된 셈이다. 그렇지만 100M 달리기 이게 고역이다. 전교생 모두 빠짐없이 달려야 하니 빠져나갈 수 없다.


땅! 

출발 신호 총소리는 나의 심장을 저격한다. 

죽어라 뛰어도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는 악몽처럼 누구는 골인점 통과할 때 나는 트랙 3분의 1 지점을 지난다. 운동장 그 많은 사람들이 온통 나만 주목하고 있다. "어휴, 뉘 집 딸여?" "어쩜 저리 뒤둠발이 일까?" 손뼉 쳐가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6학년 졸업까지 달리기 꼴찌는 내 차지다. 그래도 5학년 때 6명 중 5등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골인점에 도착했는데 모든 시선이 내 뒤에 머무는 것이다. "어, 뭐지" 덩달아 돌아보니 저만치 한 명이 달려오는 게 아닌가. 길게 땋아 내린 머리에 할머니들 흰 고무신을 신고 살랑살랑 춤추듯 달리고 있다. 창피한 기색 없이 환하게 웃는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아이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이 이름을 잊을 수 없다. 고·임·선!

그리고 내가 이긴 게 아니라 '그까짓 거 늦으면 좀 어때?' 즐길 줄 아는 그 아이가 챔피언이라는 것을.


, 이제부터 몸치 탈출이다.           

운동 중에서 탁구와 수영이 나이 들어 딱 좋단다. "저 몸집에 탁구를 친다고?" 걷는 것도 벅차 보이는 통장 아줌마가 최소한 움직임으로 가볍게 톡! 톡! 공을 받아친다. "바닥이 미끄러운데 넘어지면 어쩌나?" 싶은 할머니도 수영장에서는 물 찬 제비가 따로 없다. 오히려 무릎 관절에 무리 없어 이만한 운동이 없단다.

"그래? 나도 해볼까?" 내 팔랑귀가 팔랑팔랑 움직인다. 퇴직 후에 배우겠다고 기웃대면 얼마나 모양 빠질 일인가? 지금부터 배우자 싶어 탁구와 수영 강습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힘 빼요! 힘" 잔소리만 듣고 있지만 퇴직할 때쯤이면 탁구는 랠리 50번 정도 주고받지 않을까. 수영은 개구리 뒷발차기 평형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부부 일심동체'란 말은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심동체(一心同體) '몸과 마음은 하나' 말은 인정, 인정한다. 그동안은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다 싶었다. 그런데 이 나이 되고 보니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 아무리 강단 있는 사람일지라도 몸이 무너지면 마음까지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러고 보니 노래 잘하는 거야 기분 문제지만 건강과 직결되는 몸치 탈출 음치탈출보다 더 우선이다 싶다.  


댄스도 배워볼까? 젊은 날 동료가 탱고나 브루스를 배워보자 제안했을 때 "나는 피가 뜨거운 여자야. 바람날지 몰라. 위험해." 농담처럼 말하고는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나이에 그럴 염려는 없지만 난 혼자가 좋다. 중년 나이에 안성맞춤이라는 셔플댄스를 배워 볼까? 라인댄스를 배워 볼까? 쾅쾅! 울리는 음악만 들어도 심장이 뛰고, 들썩들썩 신바람 나지 않을까?      




어디, 춤바람 났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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