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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Nov 02. 2024

속삭임

기대와 환상


가냘픈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속삭임이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울린다

귓가를 긁어대는 작은 목소리

한번 더 뒤를 돌아본다

역시나 그곳엔 아무도 없다


흐르는 물에 머리를 헹군다

잘못 들었던 건 아닐까

방금 그 소리는 뭐였을까

머리카락과 함께 생각을 씻어낸다


하얀 거품이 잘게 쪼개진다

부서진 덩어리들이 흩어지고 흘러간다

번뇌의 이물질들이 씻겨진다

뻣뻣한 머리칼이 손에 잡힌다


미끄러져 흐르는 건 거품일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각의 쓰레기일까

뒤죽박죽 엉킨 새카만 머릿속을

하얀 비누거품으로 덧칠할 수 있다면


또 다시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난 절대로 잡히지 않을 거야

계속해서 너에게서 도망칠거야

잡을 수 있을테면 따라 잡아봐


미끄러진 손바닥 사이로

하얀 거품은 온데간데 없고

물 먹어 뻣뻣한 머리칼이 잡힌다

손바닥 한 줌엔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남았다


한 손으로 모든 것을 움켜 잡을 수 없기에

오늘도 물 먹은 머리 위로 생각을 덮는다

빳빳하게 말라 건조한 수건으로

축축하게 젖은 두 눈까지 덧씌워 감춘다


그러자 사방이 고요해진다

세계의 문이 닫힌 듯 순식간에 세상이 암흑이 된다

내가 들은 건 속삭임이었을까 환청이었을까

내가 잡고자 한 건 기억이었을까 기대였을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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