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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냥이 Aug 21. 2024

뚱냥똥냥2-폐공장에 버려진 노령묘, 키움이 와 티나

아쉽도록 짧았던 인연의 사랑스러운 딸, 키움아 고양이 별엔 잘 도착했니?

뚱냥똥냥 2화




. 2023.10.30. 저녁 10시 41분.




"키움이는 사망했습니다."




 한 시간에 걸친 심폐소생술의 끝은 그 한 마디였다. 마취 회복을 위한 링거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눈도 감지 못하고 내 딸 키움이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폐공장에 버려졌던 두 자매, 노령묘도 이렇게 사랑스러운걸>  




내가 키움이를 처음 본 건 자주 들락거리던 유기묘 분양 사이트에서였다. 올해 초순의 일이었다. 문을 닫은 공장의 쪽방에 버려진 8살짜리 아메리칸숏헤어 남녀 한 쌍, 조만간 공장은 철거될 예정이고,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 분양을 한다는 글이었다. 하루에도 100여 개의 이런저런 사유로 유기되거나 파양 된 아이들의 글이 올라오는 사이트에서 본 그 글이 왜 그리 눈에 밟혔을까.


내게는 이미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있었고,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을 내가 다 구원할 수 없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 당연함에 그 어떠한 의문도 깃들 새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글이 신경이 쓰여, 누군가 데려가주기를 기도하며 원래도 종종 방문하곤 하던 사이트에 하루에도 여러 번 들락거렸다.


'나이가 있어서 아무도 안 데려갈지 몰라.'


어느 날은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품종묘고, 남녀 한 쌍이라니까 함께 데려가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또 어떤 날은 희망적인 생각을 품은 채.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아이들의 글은 이따금씩 복사 붙이기가 된 채 새 페이지에 떠있었다. 폐쇄된 공장 앞 밥자리에 남겨진 고양이 남매가 너무 신경이 쓰여 남편에게 말을 해봤지만, 좀 더 기다려 보라고, 한 아파트에서 키울 수 있는 개체수가 우리는 이미 적정선을 넘겼다고 남편은 나를 말렸다.


남편의 말은 타당했다. 이성과 감정이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을 뿐.


개체수가 한계치를 넘어선 고양이 아가들이 좀 더 쾌적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세컨드 하우스로 내 책과 옷, 안 쓰는 가구를 옮기고 돌아오다가 길에서 만난 아이를 우연찮게 구조하게 된 날, 남편이 집에 공간이 생겼으니, 신경 쓰인다던 아메숏 아이들이 아직 분양 안 되었다면 연락해 보라고 허락해 주었다. 뜻하지 않은 허락에,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잘 키워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내 곁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품은 채로 사이트에 적혀 있는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아이들을 공장 단지에서 구조하여 구조단체로 옮겨준 이였다. 동물구조 사단법인에서 임보자를 구하여 현재 공장 앞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임보 중이라고. 빠른 분양을 원하여 자신은 여러 사이트에 글을 대신 올려준 상태이고, 내가 원한다면 구조 법인에 연락을 취해주겠다지만, 구조자는 내가 다묘 가정의 보호자임을 들어 우려를 표했다.


본인은 아이들의 빠른 분양을 바라며 부러 나이를 낮춰 올린 거라고, 이미 열 살이 넘은 아이들이고, 다묘 가정에서 아이들을 케어하기는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실제로도 열 살이 넘은 아이들이라는 입양 문의 전화는 제법 걸려왔지만, 다들 포기했다고. 하지만 아메숏 아이들이 구조한 다른 아이들과,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쪽방에서 임보자와 지내고 있노라는 말을 전해 들으니, 더욱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강아지와도 잘 지낼 정도로 성격이 좋다고 하지만, 좁은 원룸에서 개와 함께 여러 개체가 함께 지내는 게 불편하고 힘들지 않을 리 없으리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나는 구조 단체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문의 통화를 했다. 다묘 가정의 보호자임을 밝히고, 주거환경 사진과 함께 설문을 겸한 입양계약서를 써서 전송했다. 아이들은 구조 단체에서 우리 집까지 픽업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원래 사단 법인의 일이란 게 늘 그렇듯이, 빠르지 않았다. 입양을 확정 짓는 서류를 보내고도 삼주나 지나, 4월 1일 토요일 오후, 나는 처음으로 키움이와 티나를 만났다.


티나와 키움이는 플라스틱과 철제로 된 켄넬에 실려 왔다. 털결은 떡져 있었고, 비듬이 많았다. 둘째(티나)는 겁이 많아서인지 구석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첫째인 키움이는 호기심이 많은 얼굴로 켄넬에서 나와 거실을 빙글 돌더니, 내 곁으로 다가와 손의 냄새를 맡았다. 조심스레 이마로 손을 뻗어보니 부비작 거리는 게 사람 손을 잘 타서 보자마자 정이 담뿍 들었다.


검진표에는 임시 보호자님인지, 구조단체에서인지 정해준 하니와 아리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행복한 기억을 갖고 다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에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첫째는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잘 키워주겠다는 뜻에서 키움이. 둘째는 행복한 티가 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티나. 두 아이는 구조단체에서 구두로 말해준 것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키움이는 열네 살, 티나는 열두 살로 동복 자매인 것 같다고. 처음 글을 보았을 때와 나이도 성별도 달랐지만 내겐 크게 달라질 게 없었다. 어찌 되었거나 그 아이들은 만난 순간부터 내 딸이 되었으니까.


구조단체에선 둘이 몹시 사이가 좋고 의지하고 있으니 반드시 같이 입양해야 한다고 했으나, 키움이와 티나는 눈이 마주치자 서로 하악질을 했다. 남편은 두 할머니의 짜증이라고 웃었다. 목이 아예 쉬어버린 듯 내 곁에 있는 두어 달간 키움이는 단 한 번도 낭랑하게 울지 않았지만, 쉰 목소리로 하악거리거나 대답하는 키움이는, 내게는 그저 사랑스러울 따름이었다.


기본 검진표에는 간과 신장 수치만 위험할 뿐,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다. 외관상으로 볼 때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털결은 푸석하고 아메숏 특유의 회오리 무늬도 퇴색한 듯 흐려지고 빛바랜 흰 털이 많이 나 동년배인 우리 첫째 달땡이와 달리 훨씬 많이 늙어 보이고 얼굴엔 묘하게 지친 기색이 있었었다.

 

우리 집 첫째도 열네 살이지만, 열네 살 스코티쉬 폴트 첫째 아이보다 몸이 가볍고 점프력이 좋아 식탁 의자로도, 테이블 위로도 잘 뛰어올라 손바닥에 얼굴을 부비작 거리며 가르랑 거렸으니까.


다만 이가 안 좋은지 사료를 씹지 않고 삼키는 통에 자주 사료 주위에 급체토를 하는 게 내심 신경이 쓰였다. 급체토를 하는 아이들은 간혹 있었지만, 키움이는 유난히 자주 하는 느낌이었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할 때도 있었기에, 키움이의 토인지 티나의 토인지 처음에는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지만, 돌이켜 보자면 키움이의 것이었던 것 같다. 거의 사나흘에 한 번씩은 먹은 사료를 고스란히 토해놓던 키움이.


아이는 겉으로 보기에 사료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각종 캔, 그리고 츄르 같은 액상 간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고 잘 뛰어오르고 애교도 많이 피웠지만, 나는 무의식 중에도, 나는 키움이와의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자그마한 터널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급체토를 볼 때마다, 그런 불안감이 가슴 한 편에서 떠나지 않았다.


키움이와 티나가 편히 쉬기를 바라며 현관 근처의 쪽방을 휴식처로 만들어주었다. 조립식 수납장 위에 올라가 기대어 있던 우리 키움이와 티나. 눈만 마주치면 자매들끼리 하악질을 하는 주제에, 잠들 때면 머리를 기대어 잠들던 귀여운 내 천사들.

  

사나흘 간의 격리 후, 키움이와 티나는 큰 무리 없이 집 안의 다른 아이들과 합사가 이루어졌다. 키움이와 티나는 사람에겐 상냥하고 독점욕이 많아 고양이들에겐 사나운 아메숏 특유의 성질머리를 갖고 있었다.


우리 집엔 덩치가 큰 수컷냥이도 있었지만 다른 고양이와 마주치면 기선제압을 하는 성격이라, 나이가 있고 덩치가 작아도 어리고 젊은 친구들이 함부로 키움이와 티나에게 덤비지 않아서, 유교적 장유유서를 신봉하는 내게는 아주 바람직한 합사라 할 만했다.


키움이와 티나의 영역권은 점점 넓어졌다. 티나는 아직껏 맨 처음 정착했던 작은 방을 주된 거점으로 삼고 있으나, 키움이는 거실 소파에 잠자리 겸 쉴 장소를 마련했다. 창가로 빛이 잘 드는 따스하고 바람이 통하는 명당에 자주 길게 누워 있는 키움이를 볼 때면, 사랑스러워서 나도 소파에 앉아서 오래도록 쓰다듬어 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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