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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Oct 16. 2024

중2. 미화부장이 되었다.

미화부장이 되었다. 이때 선생님의 가면을봤다

나를 괴롭혔던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시절의 여자아이.

내 글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아이와의 악연은 국민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바바리맨의 사건으로 판세가 바뀌었다.


학교에서 나는 인지도 높은 학생이 되었고, 이 친구는 그러 그런 내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재수가 좀 없기는 한건 맞는 거 같다.

난 자기 합리화가 빠른 편인 듯하다.

아무튼 중학교 1학년때까지 같은 반이었는데, 아무런 일이 없었고 오히려 내가 놀고 있는 무리에 이 아이가 끼고 싶어 할 정도로 안 날다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개무시했다. 그만큼 나도 상처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즐거운 중학교 1학년이 마무리되어갈 때 어김없이 또 세월은 간다.

이때만 해도 한 살 한 살 먹는 게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지금은 왜 이리도 세월이 야속한지 ㅠㅡㅠ

아무튼 이때 중2 학교 배정을 받았다.

"이런 젠장할 뭐가 이래?"

또 같은 반이다. 무슨 전생에 부부였나 보다.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그 아이도 덩달아서 어이가 없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진짜 뭐 인연이 있는 건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다.

지금은 그 아이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는 중학생 때 이야기이니까, 다시 돌아가본다.


그렇게 같은 반이 배정되었다. 주춤주춤 여자아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너 나랑 또 같은 반이야"라고 말을 붙인다.

아니꼽다. 솔직히 알고 있다. 나도 한글을 안다. 왜 굳이? 말을 시키나.

하지만 또 대답했다. "어 알아"라고 짧게 말이다.

그날 이후로 2학년이 시작되었고, 그 여자아이는 꽤나 나에게 친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녀공학이 아니라 모두 다 여자아이들이다.

난 당연히 내가 "왕따"일지 알았는데, 다행히도 학교가 설립되고 내가 1회 학생이라서 우리 학교에는 내가 2학년이 되면 한 학기 아래 여자아이들과 우리 동기 여자아이들만 있었다. 학교 규모에 비해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몇 명씩 와서 다들 과거를 알지 못한다.

솔직히 과거를 말한다고 한들 난 이미 "바바리맨"사건으로 즐거운 1학년을 보냈고 많은 아이들과 친해졌다.


그래서 두루두루 친하게 지낼 수 있던 계기가 되었기도 하다.

학번이 바뀌면 당연히 학교의 담임 선생님이 바뀐다.

1학년때는 체육 선생님이셨는데, 이제는 미술 선생님이다.

난 이때 담임선생님인 미술 선생님을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칭찬은 해주셨으나, 너무 편애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어려도 잘 사는 집 아이들못 사는 집 아이들을 갈라놓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 있다.


이 계기로 나는 나를 괴롭힌 여자아이와도 친하게 되었다.

그 아이의 집의 형편도 그리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미술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이 편 가르기를 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항상 말했다.

"오늘 000 어머니가 여러분들한테 간식을 제공하셨어요. 다들 박수"

"00아! 내일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한다고 전해줘"

" 너희 어머니는 뭐 하시는 분이니?"

"어머 너 아버지가 출장 다녀오셨나 봐. 해외 다녀오신 거야?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너무 고맙다"

보는데서 대놓고 로비를 받거나 대놓고 좋은 티를 팍팍 냈다.

뭐 그런가 보지 하고 넘어갔다. 이때만 해도 나에게 닥쳐올 미래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뭐 재네 집은 부자인가 보지. 부럽다!" 이 정도였다. 딱 그 정도.


하지만 난 결정타를 맞았고, 그 이후로는 미술에 대한 흥미와 그런 것을 좀 감추게 되었다.


[사건의 시작]

난 학교는 무조건 지각은 안 한다. 여자아이와 친해지고 나서 그 아이와 항상 함께 학교를 갔다.

이제는 서로 집에 와서 놀만큼 친해졌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왕따"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미화부장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때는 미화부장, 도서부장, 기타 등등 무슨 부장들을 만들어서 학교 내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어린아이들이 무슨 관리를 하겠냐만은 반장이 다 할 수 없는 일은 부반장이하고 부반장이 다 못하는 일들은 각 파트를 나누어서 권한을 주고 자립심을 키운다? 뭐 이런 취지였던 거 같다.


취지는 좋으나, 나는 그냥 학교 가서 엄마 말대로 지각 안 하고 받을 수 있는 그냥 졸업장만 받으면 된다.

가끔 미술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거나 체육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음악 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항상 정해져 있다. 예체능 쪽으로는 타고난 듯하다.


이 사건은 내 가미화부장으로 선생님한테 "콕"하고 선택을 받으면서 일어난다.

나보고 미화부장을 하라고 하신다. 미화부장이 말만 좋지 학교뒤에 게시판 꾸미기부터 교실 내에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것도 솔선수범해서 주워야 하고, 학교 청결 관리를 우리 반내에서 내가 해야 한다.

학교 다녀와서 와이셔츠도 던져놓는 내가. 무슨 미화부장이란 말인가.....

하지만 미술을 한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사건의 서막]

어느 날이다. 학교에서 미화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각각 게시판을 꾸미기에 바빴다. 다른 반을 염탐해보니 다들 꾸민다고 정신들이 없다.

학교 바닥은 마룻바닥이었는데 얼마나 왁스로 닦아 댔는지 미끄러지기 일쑤다.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시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어머니는 많이 바쁘신가 봐?"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니?"

난 그저 "엄마 아빠가 좀 많이 바쁘세요 일나 가시거든요"라고만 말했다.

그러니 선생님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어 그래" " 그건 그렇고 너 이번에 미화검사 있는 거 알지?"

"그래도 선생님이 미술선생인데 우리 반이 2학년에서는 1등을 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뒤에 있는 게시판에 절반은 네가 좀 알아서 꾸미길 선생님은 바라는데"

"우선은 게시판에 제일 중요한 알람표를 만들어 오고 그리고 "학급 게시판 월요일 과목부터 금요일 과목까지 우리 배우는 시간 있지? 그거를 큰 보드판에다가 만들어와"

하면서 어떤 재료인지 어떤 식으로 만들어 오라고 하는지 설명해 주셨다.

그러더니 " 이거 내일까지 만들어 와야 해"라고 하신다.

일찍 마치고 집에 가니 3시 정도 되었다.


엄마한테 선생님이 게시판 꾸미라고 해서 재료사야 하니 돈을 달라고 했고, 그 돈을 받아서 문구점으로 가서 필요한 도구들과 꾸밀 스티커등 여러 가지를 샀다.


게시판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월요일은 1교시 채육/2교시 수학/ 뭐 이런 식으로 그 주 거를 만들어야 했다.

그 담주 꺼는? 그건 모르겠고 일단 그주꺼만 만들어 오라고 해서 만들어 갔다.

너무 힘들었다.

창작의 고통이랄까 그런 거 같다.

일일이 다 조각칼로 파서 하나하나 다듬고 문지르고 해서 글자 하나하나 다 만들어서 표처럼 해서 게시판을 마침내 완성하긴 했다. 이걸 하면서 밤을 새웠다. 울면서 했다.

어떻게 이런 걸 하루 만에 하라고 하지?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약속은 중요하니까 내가 약속한 거니까....

지금으로 치면 거의 엠보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글자 하나하나 파서 입체감을 살려서 게시판을 꾸몄다.


첨으로 엄마가 인정해 주었다.

"야. 선생님이 좋아하시겠다. 이렇게 이쁘게 만들다니 네가 미술에 재능은 있나 보네"

"밤새 질질 짜면서 만들더니 결국은 만들었네"

"역시 너는 하려면 잘하는데 그 하기 전까지 맘먹기가 힘든 거지. 거봐 얼마나 잘해"

라고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아빠한테 보여주니 아빠는 "우리 딸 최고"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정확히 충격을 받은 기억이기 때문에 그날 잠을 두 시간도 못 자고 학교에 간 기억은 생생하다.

같이 가는  여자친구에게 보여주니 깜짝 놀라면서 "이걸 너 혼자 다 했어?" "고생했다~"

라며 상냥한 말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얼른 빨리 이것을 선생님에게 드리고 나서 나는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다.


[사건의 마무리]

선생님에게 갔다.

"선생님 이거 제가 만든 건데요" " 어떨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으신다.

"어. 거기다가 두고 그냥 가있어" " 선생님이 지금 좀 정신이 없어서 그래"라고 하면서 나를 돌려보내신다.

조금의 칭찬도 없고, 미동도 없다. 바쁘겠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내가 만든 게시판의 반쪽의 일부는 내가 아침에 만들어 온 다른 그림들이나 조각들로 붙여놓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조각들과 내가 해온 것들이 사라졌다.

"반장! 왜 내가 해놓은 거는 없어?"라고 물었는데, 반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송이 흘러나온다.

오늘 전체 학급에 대한 게시판 꾸미기 교내 우수상 학급선정을 위해서 교장 선생님이 직접 교실에 방문하실 예정이니, 학생들은 자리에서 기다리세요"라고 말이다.

이 멘트 진짜 잊을 수 없다. " 그래. 아직 교장선생님이 안 오셨으니까 우리 선생님이 내가 꾸민 거 위치라던지 그런 것 바꾸시려고 아마도 다 때 놓으신 걸 꺼야"라고 생각했다.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걸 혼자 절반이상 꾸민다는 건 하루 만에 그것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 자체였다. 

하지만 난 맡은 바 역할을 했고 결과물을 가져다 드렸다.


이후 이제부터 2학년 반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선생님이 반장과 부반장을 불러서 뭐라 뭐라 하신다.

그러더니 생전 처음 보는 게시판과 게시물들, 조각들이 게시판에 붙여져 있다.

"아니 내가 만든 건?" " 내가 한건 어디 있지?"라고 주변 친구들에게 물었다.

친구들도 아침에 내가 해온 것들을 봤기 때문에 웅성웅성 거린다.

선생님. 그래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드러나 보자. 이때부터는 원망스러움이 가득했다.

"애초에 그럴 거면 선생님이 다 하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킨 거야?"라는 생각이 말이다.


선생님이 "00 이가 만든 거도 좋지만 혹시 몰라서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게 있는데, 이거로 붙일 거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다른 조각물들은 00이, 00이, 00이, 한테 선생님이 이야기한 거 다들 만들어 왔지?라고 하신다.

"네" "네" "네"라고 다들 입을 맞춘 듯이 이야기하더니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선생님과 꾸미기 시작한다.

반에서 총 6명. 반장, 부반장 그리고 4명의 부잣집 아이들. 그 아이들이 모든 게시판을 장악했다.

그걸 선생님이 주도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기 바쁘다.


순간 눈물이 터져 나올 만큼 서러웠다. 성질 같아서는 "선생님 제가 드린 거 보긴 하셨어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럴 용기가 그때는 나지 않았다.


학급 미화 점수 반영에 따른 선생님의 교과활동에 대한 점수 +  같이 게시판을 꾸민 학생들에게 상장

물론 우수상, 최우수상 학급의 반을 따로 선점한다.

우리 반은 그렇게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최우수상이 아닌 것에 대해서 너무 아쉬워하는 듯한 선생님이었지만 나름대로 뛸 듯이 기뻐하셨다. 그 여섯 명만 말이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리 기뻐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너무 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말 못 한다. 이때 교권은 하늘과도 같았다. 선생님 말이 곧 법인 그런 때이다.

억울하지만 참아야 했다.

여기서 나의 최고의 정점을 찍은 것은 "쓰레기통"을 보아서 이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장을 발견했다.

쓰레기장에 내가 만든 것들이 버려져 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나는 형광색으로 바탕을 꾸몄고 눈에 잘 띄게 글자를 하나하나 다 조각해서 붙였다. 내가 만든 거... 친구도 한눈에 알아본다.

"야. 이건 진짜 너무 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버리는 건 아니지"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은 상처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밤새 해왔던 열정과 그리고 선생님과의 약속이 허무할 뿐이었고, 이런 나의 노력이 부모님의 재력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집으로 도착]

친구와 나는 대화가 없었다. 아마도 나의 어두운 분위기를 친구가 읽었나 보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래도 나와 함께 하면서 나에 대해 많이 안거 같다.

이렇게 집에 가니 엄마 아빠는 어떻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했나 보다.

"어제 열심히 만들었는데 어떻게 됐어? 상 탔어? 선생님이 뭐라 하셔?"

엄마가 들뜬 건 첨 본다. 그렇지만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 왜 우리는 가난한 거야? 내가 만든 건 다 쓰레기통에 있고 부잣집 아이들하고 반장하고 부반장 하고 선생님이 직접 만든 게시판으로 그냥 꾸며서 했어" " 이게 다 엄마랑 아빠가 다른 집 애들처럼 선생님한테 자주 연락도 안 하고 찾아오지도 않고 그래서 내가 미워서 그런 거 아냐?"라고 말이다.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그랬어"라고 말을 했다.

말했지만 난 어릴 때부터 슬픔을 혼자 감당하려는 습관이 배어있다.

감정을 감추기 바빴고 드러내기 힘들어했다.

그냥 나만 입다물면 된다는 식으로 살았다. 어릴 때부터 그건 고질적인 습관이 되었던 모양이다.


엄마 아빠는 그냥 수고했다고 하면서 밥을 먹자고 하셨다.

난 그날 저녁을 먹지 않았다. 너무 속상해서 그냥 먼저 잔다고 말하고 혼자 울었던 기억이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왜 꼭 그래야만 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난 단 한 번도 교사가 되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때는 더더욱이 교사라는 직업이 너무나 싫었고, 내가 좋아하는 미술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돈"이고 사람도 결국에는 "돈"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해도 결국에는 부모의 재량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구나....라고 생각한 최초의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로 난 미술은 수업시간에만 하고 누가 보는 데서는 절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집에 와서 몰래몰래  그림을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면 노트에 끄적이는 정도로만 그렸다.

이모는 어릴 때부터 내가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대를 가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집의 사정이 그리 되지 않았기에 그 꿈은 포기해야 했다.


공부로 교사가 되지 않고 예체능으로도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쯤은 중2 때도 알았다.

교사의 꿈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교사라기보다는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맞겠다.

장래희망에 "선생님"이라고 쓰던지 어떤 과목의 선생님이라고 쓰던지 했던 아이들이 많다.


솔직히 한창 자랄 나이 때에는 꿈이 자주 바뀐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선생님. 또는 교사"가 꿈이 라고 말한 적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권이 바닥을 친다고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정말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당한 그런 꿈을 짓밟고 노력을 짓밟는 그런 교사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선생님의 얼굴이 생생하고 그때의 상황이 어제의 기억처럼 생생하다.

그렇게 나의 2학년은 "어쩌다 보니 선생님이 적"이 되었고 나 자신의 환경을 자악하고, 엄마 아빠를 더 부끄러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2학년은 "무전유죄""유전무죄" 같았다.


[정말 싫은 에피소드]

2학기때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엄마가 학교에 다녀가셨다고 한다.

"엄마가 왜요?"라고 물었다.

그냥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생전 처음 보는 미소를 보여주신다.

집으로 가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학교 왔어?" " 선생님이 불렀어?"라고 물었다. 아니 따져 물었다.

엄마는 "애가 왜 이렇게 화를 내!" "그냥 엄마가 볼일이 있어서 가는 김에 들렀어"라고 말을 한다.


성인이 되어서 들었다.

그때 왜 2학기때 그 선생님이 그렇게 상냥했는지.....

매일같이 우는 나를 엄마가 그때는 유심히 지켜보신 모양이다.

그리고 윗집 여자아이의 엄마와도 만난 모양이다. 윗집 아이가 다 이야기한 것 같다.

엄마가 바카스 병에 지폐를 나름대로 담아서 선생님에게 건네주고 왔다고 한다.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엄마들이 선생님들에게 뇌물을 주는...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엄마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난 2학기때 수시로 선생님에게 불려 가서 "엄마한테 고맙다고 전해줘"라는 어이없는 전령을 들었다. 한두 번이 아닌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2학년 한 학기뿐이었던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충격적인 결말이다. 하지만 현실이었고 난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감히 말하지만 "선생님""교사"라는 직업은 무엇보다 학생을 보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지 학생의 가정환경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직업은 아니다. 그것과 도둑질과 뭐가 다른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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