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간송의 컬렉션을 빼고 한국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간송은 겸재 정선과 심사정,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의 서화와 청자, 백자 등 12점의 국보, 그리고 전쟁 중에도 품에 간직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다. 보화각은 한국 최초 사립미술관이다.
전형필 선생의 최대 업적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보존이다. 원래 광산 김씨 문중의 가보였던 해례본을 사위가 안동 자택에 보관하고 있었으며, 선생은 판매가로 제시한 금액의 열배를 치르고 거간을 통하여 해례본을 구매하였다. 간송은 문화재의 가치를 정확히 치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 이충렬, 《간송 전형필》, 김영사
이번 전시는 보화각의 청사진을 공개하는 1층 전시와 서화 36점을 소개하는 2층 전시로 나뉘어 있다. 전시장 내부는 촬영을 금지하고 있기에 간송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가져왔음을 밝힌다.
서화와 전적,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나는 수집에 나선 것이다. 성북동에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간송 전형필(1906~1962)
1층은 보화각의 청사진을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인이 서양식으로 지은 초기 건축물에 속한다고 한다. 1세대 건축가인 박길용(1898~1943)선생이 건축을 맡았으며, 그는 화신백화점, 박노수 가옥과 경운동의 민가다헌(閔家茶軒)을 설계하였다.
전형필 선생은 최고의 전문가만을 선정하여 보화각을 건립하였으며, 보화각 내의 모든 디테일에도 직접 관여하였다. 가령, 전시 물품 중엔 대리석 견본도 있었는데, 계단실 마감재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구해온 1938년의 샘플 조각들이다. 30대의 전형필 선생이 견본을 들고 열정적으로 공간을 상상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1. 계단실 마감재 선정 과정에서 활용된 대리석 견본 2. 보수를 거친 후 전시에 활용 중인 자단목 진열장 (1938) 3. 서화·골동 구입내역을 기록한 『일기대장日記臺帳』 (1936~1938)
그는 진열장의 제작에도 시간과 공을 들였는데,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리서치를 한 후, 스스로 도면을 그려가며 원하는 부분을 세세하게 적었다. 견고한 진열장을 보고 있으니 문화재 보존에 대한 그의 염원이 현연(現然)한 것만 같았다.
문화재를 수집하면서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전형필 선생의 업적을 보면서. 무언가를 귀히 여기는 태도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해례본이 그랬다. 한국전쟁 중 피난에 나섰을 때도 해례본만은 끝까지 몸 안에 지녔고 잠을 잘 때도 품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은 그 가치를 알아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해례본은 ‘간송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국보 70호,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1997).
2층 전시관에는 조선시대 ‘나비 대가’의 그림 네폭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비를 잡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린 '남 나비(일명)' 남계우와, 유리 항아리에 온갖 나비를 넣어두고 관찰했다는 ’고접(高蜨)’ 고진승의 그림이다. 남계우의 제자이기도 한 고진승은 19세기 도화서 화원이였으며 그의 나비 그림은 기록으로만 전해지다가 수장고 증축 과정에서 발견되어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배경을 생략한 고진승의 그림은 나에게는 대단히 현대적으로 느껴졌는데, 나비를 크게 그리지도 않았고 중앙에 배치하지 않았지만 균형감이 완벽했다. 화폭에는 상단의 글과 나비 한마리, 혹은 세마리만 있었지만 고요함이 아닌 활기가 느껴졌다. 화폭을 창공으로 사용하는 나비의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었다. 눈이 피로해지지 않아서인지, 그림의 고아한 정취때문인지 한참을 그 앞에 있었다.
1 「도원도(桃源圖)」 조중묵, 40 x 127cm, 복숭아꽃이 만개한 봄. 속세를 벗어난 도가적 이상향을 상징: 조중묵 화가는 <고종어진도사>의 주관화사일 정도로 초상화에 능했다고 한다. 그의 산수화는 단정하고 깔끔한 구도지만, 형식에 치우쳐 생기가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작가의 노년작인 이 작품은 은은한 복숭아꽃의 색채가 어두운 전시실을 밝힐 정도로 화사했다. 뒤뜰의 두루미 한 쌍, 누각에서 밖을 바라보는 인물들, 연두빛이 떠오르는 정돈된 낮은 언덕, 높은 산... 따스하지만 청아한 봄날이 작품 안에 있다. 여유롭고 느긋하다.
2. 「추협고촌(秋峽孤村)」 심산 노수현 (1899∼1978), 지본수묵, 168.5x88.7cm, 1930, 가을 협곡의 외로운 마을 :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이다. 신문에 흑백 사진으로 보도될만큼 관심을 모았으며 이번이 최초 공개다. 안개를 넣고 담채 (붓에 물기를 머금고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늦은 가을 고요한 산촌을 그린 그림이다.
3. 「계화앵무」 이도영 (1844∼1933), 45.7 x188.7cm, 1927, 계화나무와 앵무새, 「홍류취옥」 석류와 대나무: 작가는 전통적인 구도와 소재를 유지하면서 과감한 색채와 세필로 탈전통을 시도한 듯 보인다. 「계화앵무」에서는 선비를 상징하는 계화나무와, 사랑스러운 여인을 상징하는 앵무새가 등장한다. 앵무는 또한 짝을 이루면 평생을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져 해로를 상징한다. 「홍류취옥」은 여인을 상징하는 석류와, 군자를 빗댄 푸른 대나무를 소재로 하였다.
4. 「이백간폭도 (李白看瀑圖)」 사쿠마 데츠엔(1850∼1951), 81.7 x 145.3cm, 1908, 당나라 시인 이백이 폭포를 보다: 카누파 화풍(일본의 야수파)과 중국의 화원 화풍에 정통한 이론가이자 화가인 사쿠마 데츠엔은 대한제국을 방문하여 고종황제의 명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세로의 길이가 약 1.5m인 이 작품은 앞에서 보면 그림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필묵만으로 호방하게 그려낸 폭포, 태평하게 기대어 앉은 시인 이백이 물줄기를 중간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유유자적하는 인물에 이입과 집중이 된다. 작가는 '생략'을 구도적인 도구로 사용한다. 거대한 물줄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작은 인물의 모습이 그대로 다가온다. 단순함이 만드는 아름다움 (모두 지우고, 반드시 필요한 것만 배치할 때 발생하는 뚜렷함)이 이 작품에 있다. 큰 화폭을 가르는 이토록 거침없는 붓질이라니. 동경심이 일었다.
(그림의 우측 상단은 고종의 명으로 사쿠마 데츠엔이 그렸다는 것을 친일파 행정직 인물인 민병석이 기록한 글이다. 간송이 그 사실을 모르고 구매한 것은 아니기에 여기선 작품만을 이야기한다.)
간송 미술관을 나서면 성북동의 정감있는 골목과 색다른 운치를 곳곳에서 마주한다.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 (시민문화유산 1호), 이태준 가옥 (수연산방), 만해의 심우장도 근처에 있다.
1934년 간송이 문화재를 보존, 연구하기위하여 성북동의 임야를 구입하여 북단장을 개설한다. 1938년 북단장 안에 보화각을 짓는다. 우측 하단은 위창 오세창의 「보화각」 현액이다.
보화각1938:간송미술관재개관전 © 2024
by Yoori Kim is licensed under CC BY-NC-ND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