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흐린날의 생수통

by 글그림




가벼워진 생수통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지

마당엔 뽀드득한 동백잎이 앉아 있었고


오래 말라있던 억새꽃 하나가

기대도 없이 물을 받는 표정이었어


그늘진 화단 끝에서

강아지가 파놓은 듯 흙이 뒤틀린 자국


그것은 슬픔이 아니고

다만 마침표 같다는 감각


열어 젖히는 창문 틈새로

먼지가 소리 없이 움직였지


다들 너무 조용해서

누구도 심장 박자를 틀리지 않았고

매트로놈처럼 째깍째깍


나는 찰랑거리는

생수통을 더 기울였어


무심하게 젖어가는 흙을 보며

다음번엔 하늘이 기울어져

비가 올까, 생각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