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풍경

by 글그림



전기밥솥 뚜껑을 열 때마다

수증기와 같이 눅눅함이 떠올랐다

탁자에 놓인 병의 뚜껑을 잊어버렸고

시큼한 식초 냄새가 방 안을 돌았다


여름은

옷걸이에 걸려 있던 셔츠처럼

마르지 않았고


방안엔

모서리가 떨어진 포스터와

유리창에 눌어붙은 레몬 조각들이

매달려 더위를 먹고 있다


나는 다 식은 국을 다시 데우며

시계를 벽에서 떼어냈다

주방 타일의 줄눈에서

지난 계절이 곰팡이처럼 피어있다


익숙하지만

제목을 모르는 음악을 틀어놓고

국 한술을 입에 넣자

오래 전의 여름이 혀를 데운다


여름은

길게 늘어선 햇볕에 앉아 있었고

그늘은 식탁아래 눕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밥을 한 숟갈을 떠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