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중심에서

by 글그림



이유 없는 불안이 나를 찾는 밤이 왔네

가로등에 그림자가 가둬지고

어둠의 편린이 구석진 마음을 채우는 밤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물결무늬로 번지는 잔상

한때 절망은 사냥개처럼 날뛰며

희망의 조각들을 물어뜯었지만

그렇게 핏물로 고인 심연의 깊은 곳에서는

고독만이 자라고 있었네


권태의 장인

무기력의 예술가

의심의 선지자

이 모든 별칭이 어두커니

나를 향해 불려지는 이름이네

홀로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름을 잃는 일

그리하여 나는 끝끝내 내가 되는 일

어스름에서 빛의 무게를 알게 되는 일


오랜 시간 이 방 안에 남겨진 나를 바라보네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떠 있고

그조차도 언젠가 희미해질 것을 알면서


그렇게

마음 속에 슬픔의 독기가 들어선 날이었네

나는 수면 아래를 떠다니는 심해어처럼

점점 더 깊어지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네

온몸이 물에 잠긴 자만이 알 수 있는

침묵의 온도

물이 곧 익사의 빛깔이라는 너의 말은 옳았네

감정의 폐허 위에서

나는 무너짐을 견디는 법을 배웠네


모든 초록은 사라지고

거리는 바람의 무덤처럼 고요했지


그러나 나는

밤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끝까지 살아남기로 했네

이유 없는 불안이 나를 흔들어 깨우는 밤에도

길 잃은 자의 눈빛을 한 채로

잠 못 이루는 지붕 아래에서도

지금도 듣고 있는가


불면의 언덕에서

한 존재가 한 존재의 고통을 켜는 순간을

어두운 강물 위에서 빛나며 번지는

그 고요한 꿈을


그것은

아무도 연주하지 않은 밤의 선율

흔들리는 밤을 붙드는 중심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