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1. 추석 연휴
1. 추석 연휴
나는 추석 연휴가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있어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5일이 짧아 연휴 앞뒤로 휴가를 더 사용하는데 혼자인 내게는 무척 고민되는 날들이었다. 게다가 9월 중순인데도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되었고, 전국적 열대야,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을 연휴 내내 갱신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상 관측 117년 만에 최고라 했다. 연휴에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까?
아무리 적응하려 애써도 어려운 일이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커피 마시는 일이었다. 이건 둘이었을 때의 자잘한 행복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함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혼자’인 세상은 마치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고 어색한 것만 같다.
반백 살 다 되어가는 이 나이에 어이구! 연휴 첫날 나는 큰맘 먹고 여행 떠난 사람처럼 느지막하게 평대리 해변가로 가서 전복돌솥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그리고 이 무더위에 겁도 없이 비자림으로 갔다. ‘숲속은 다르겠지, 자연휴양림인데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그동안 일하느라 고생한 나에게 한 가닥 힐링의 보상을 해주겠지’ 내심 기대하며!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했다. 역시 ‘연휴에는 여행이구나!’ 생각하며 차를 나서는데 그늘이 없는 주차장은 뜨거운 건지 따가운 건지 햇살이 그러니까 불볕이 사정없이 피부에 내리꽂는 느낌이었다. 양산이 없어 차에 있던 우산을 꺼내 들고 나섰다. 비자림, 거목들이 군집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비자나무 숲이다. 나는 울창한 비자나무 숲속에서 1년 치의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흡수하면서 시원한 향을 만끽할 작정이었다. 삼림욕을 하면 올여름 잘 보냈다, 혼자지만 여기 오길 참 잘했다! 이런 결론이 날 거라 생각했다.
한낮 기온이 30도가 훌쩍 넘었다. 습하다. 바람도 없다. 퇴약볕인데 습하기까지 하니 얼마 안되는 산책로가 길게 느껴졌다. 희귀한 난과 식물들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을 텐데, 식물을 좋아하는 나이기는 하나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숲의 모든 습기를 빨아들여 발목에 저장하는 것도 아닌데 천근만근 무거운 발은 그저 정해진 출구로 더디게 걷기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유롭게 담소하며 맨발로 숲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즐겨야 한다 하면서도 난 선뜻 못하니까.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잠시 세워 둔 검은색 차 안의 온도는 말해 무얼 할까. 나는 차를 끌고 나와 도로변 커다란 나무 그늘을 찾아 세워놓고 에어컨 빵빵 틀어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다 ‘이런 날 자신도 모르게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이방인’이 까뮈... 그도 무명작가였어. 후~ 그러다 아까부터 계속 차 주변을 서성거리는 여자가 차창으로 훅 들어와 창문을 내렸다.
“저, 여기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될까요?” 한국말이 서툰데 한눈에 봐도 인도 사람 같았다. 눈이 크고 눈꺼풀과 눈두덩이가 쑤욱 들어가 그윽한 느낌을 주는 다소 마른 체격의 할머니였다.
“아, 저도 이곳을 잘 모르는데 혹시 비자림 주차장에 버스 정류장이 없었어요?”
“있었는데 차가 떠나서 40분 기다려야 해요. 이 근처 송당초등학교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하던데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아요.”
“일단 땀을 너무 흘리시니 이 차에 타서 더위 좀 식히시겠어요? 저도 너무 더워서 땀을 식히고 있었거든요” 할머니는 반팔 티에 토시를 끼고 얇은 남방을 걸치고 있었다. 챙 넓은 모자 안쪽에서 흐른 땀과 화장 얼룩이 물 흐른 자국처럼 얼굴에 번져 있었다.
송당초라... 검색해 보니 걷기에는 너무도 먼 거리였다. 내 기억에 만장굴 입구에 가면 큰 도로가 나오니까 거기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을 것 같았다. 티슈로 땀을 닦게 해드린 후 원하시면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드린다고 했다. 어차피 나는 정해진 스케줄도 없고 천천히 평대리에 있는 분식집에 갈 예정이어서 시간이 괜찮았다. 무엇보다 이 무더위에 할머니 혼자 걸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
‘뚜벅이’라 했다. 목록을 작성해서 하나씩 지워가며 여행하던 참이었고 그렇게 오늘 비자림에 왔다. 인도 할머니는 서툴지만 또렷하게 말씀을 곧잘 하셨다. 큰 도로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서 꽤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주로 내가 묻고 할머니는 답을 하셨다.
할머니는 뉴델리에 살고 1년 전 제주도에 왔다. 물론 그 사이에 인도를 다녀오긴 했으나 어쨌든 1년 전이 첫 방문이었다. 딸이 28세인데 제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으로 올 여름학기에 입학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작년에 와서 한국말 공부를 같이한 것이다. 제주도가 너무 아름다워서 인도로 가기 전에 꼼꼼하게 둘러볼 거라 하셨다.
그리 고마운 일이 아니라 해도 할머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보답의 선물로 내게 오늘부터 딱 1년을 미리 주겠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무슨 말인지. 아니 그냥 고맙다는 뜻을 전하는 인도의 표현법이겠거니 했다. 나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감사하다!’ 인사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