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기업분석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가 인기다. 권위에 도전하는 요리사 계급전쟁이라는 타이틀은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한 두 회 보고 나니, 식상해졌다.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게 만든 것은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올해 초, 나는 자궁내막종 진단을 받고 급히 수술을 했다. 그리고 예정에 없던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8년 동안 같이 지내던 입주 아주머니를 떠나 보내니, 집안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다소 큰 아이에 비해, 나는 살림과 육아 초보이다.
아침 8시, 계란 4개를 삶는다.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아이를 준다. 아침 식사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4시간 동안 나는 수영을 하고, 골프를 친다. 나의 점심은 가방에 넣어 온, 아침에 먹고 남은 계란 2개이다.
점심 식사 후, 아이를 하교시켜, 수학 학원에 데려다 준다. 나는 수업하는 1시간 30분 동안 글을 쓴다. 수업이 끝나면, 영어 학원에 데려다 준다. 다시 1시간 동안 글을 쓴다. 영어를 마치고 나온 아이는 초밥을 사 달라고 한다. 주문 후 5분 만에 초밥이 나오고, 5분 만에 먹는다. 끝으로, 수영 수업에 데려다 준다. 아이가 수영하는 50분 동안 다시 글을 쓴다.
저녁 7시 30분, 수학, 영어, 수영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와 마트에 들린다. 남편이 먹고 싶다던 삼겹살과 김치찌게를 고른다. 여러 브랜드 중 고민없이 대기업의 맛, 비*고다. 인덕션에 올려 3분 타이머를 맞춘다. 냉동실에서 비*고 물만두를 꺼내서 역시 인덕션에 올려 5분 타이머를 맞춘다. 삼겹살을 제외한 모든 음식이 한 회사의 간편식이다.
음식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는 어느새 유투브를 보고 있다. 얼른 식사 준비를 마쳐 못 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깨어있는 16시간 중 운동과 글쓰기에 8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은, 식사 준비 시간을 줄여 준 간편식과 외식 덕분이다. 나의 생활에서 '요리는 만드는 과정'은 으레 생략되어 있고, '음식을 먹는 행위'도 한 끼당 10분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만든 요리 혹은 사 먹는 음식에 대한 '평가' 역시 별로 하지 않는다.
흑백요리사 '장트리오' 메인 요리 심사 시, 백종원과 안성재의 심사가 갈렸다. 백종원은 은은하게 장의 맛이 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안성재는 "간장 맛은 아예 안 낫는데?" 라고 했다. 장 맛이 나지 않아서 싫다고 했다. 백종원이 심사 기준으로 강조한 것은 외국인에게 한식을 소개할 때 그 진입장벽을 낮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간편식을 대중화하고, 이를 미국으로 전파하는 기업이 A사이다.
우리가 식품을 소비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세 가지가 있다. 맛, 가격 그리고 안정성이다. 맛은 먹어보면 알 수 있지만,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리고 안정성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격은 비용에 연동한다. A사의 가장 큰 비용은 원재료 구입이다. 주요 품목은 원당, 원맥, 대두, 옥수수이며, 수입국은 미국, 호주, 캐나다, 브라질 그리고 태국이다.
얼마 전, 미국으로 한달 살기를 떠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플로리다에 놀러갔는데 태풍으로 집 앞에 나무가 쓰러져있고, 디즈니랜드는 문을 닫았고, 주민들은 모두 대피를 했다고 한다. 너무 무서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미국은 다양한 기후 재난이 자주 일어난다. 이러한 사건이 나면 식품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고, 항공 취소로 인한 운송비도 오르게 된다.
또 다른 요인은 환율 변동성이다. 주요 수입국 다섯 나라의 통화가 모두 다르지만, A사는 전자공시 사업보고서 '위험관리 및 파생거래 - 가. 시장위험 (1) 외환위험'를 통해 '특히 미국 달러화와 관련된 환율변동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또한, 미국달러가 원화 대비 10% 상승시, 즉 1달러가 1,300원일 때에 비해서 1,430원이 되었을 때, A사의 세후 이익과 자본은 180억원 줄어든다고 한다. 반대로, 미국달러가 원화 대비 10% 하락시, 즉 1달러가 1,300원일때에 비해서 1,170원이 되었을 때, A사의 세후 이익은 180억원 늘어나게 된다. 2023년 말 환율 대비 2024년 10월 18일 오늘의 환율은 5%상승하였다. 만일 환율이 이 상태로 연말까지 간다면, A사의 세후 이익은 90억원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작년 한 해 당기순이익의 1.5%수준이다.
이렇게 환율이 상승해 원재료 비용이 늘어나면, A사는 소비자 가격을 상승시켜 이익을 보존한다. A사는 국내 냉동만두, 김치, 맨밥, 상품죽, 국물요리에서 모두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전가 (pricing power)가 매우 용이하다. 내가 고른 비*고 김치찌게가 삼겹삽을 제외하면 영수증에서 제일 높은 가격이었다. 한 번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 어느새 십만원은 우습고, 장바구니 물가가 늘었다는 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다.
A사의 경영인은 환율 변동에 따라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 외에도 파생상품 거래를 활용한다. 전자공시 사업보고서 '위험관리 및 파생거래'에 따르면, '연결회사 내에 속한 회사들이 각각의 기능통화에 대한 외환위험을 관리하도록 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일부 연결회사 내의 회사들은 외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선물환 등의 파생상품을 활용'한다고 나온다. 기업은 내부적으로 전략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외부에 공시가 잘 되지 않는다. 현재 A사가 어떻게 파생거래를 하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우나, 외화사채에 대해서 이자율 및 환율 위험을 회피하는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을 명시해 둔 것으로 유추해 볼 때, 원재료에 대한 파생상품 거래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환헷지 (currency hedging)를 하는 사람이 A사의 재무팀에 있고, 투자은행의 파생상품 중개인들은 원달러 환율의 선물환 (Foreign Exchange Forward)을 판다. 업무가 겹치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부서에서 은행의 선물환 중개인으로의 경력전환 사례가 종종 있다.
식품의 안정성은 그 회사의 브랜드 가치로 따져보자. A사와 같은 대기업에서 5,000원짜리 김치찌게를 하나 잘 못 팔아 이를 먹은 소비자가 탈이 난다면, A사의 1.3조원 (2023년말 기준)의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다. 또한, 11조원에 달하는 식품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관리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설탕을 만들던 회사가 간편식으로 시장 점유율 1위가 되었을까?
높은 자본금, 삼*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경영진의 전략, 규모의 경제, 고연봉과 많은 직원 수를 들 수 있다.
2024년 6월 말 기준 자본금은 약 12조원이다. 이는 A사 직원 삼십만명의 평균 연봉을 합한 금액이다. 이 중에서 약 6조원이 이익잉여금이다. 이는 회사가 설립된 1953년부터 쌓아온 이익에서 배당금을 뺀 금액이다. 쉽게 말해서, 그동안 벌어돈 돈의 합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자본금이 쌓였을까? 출발이 금수저 기업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이 유행했다. 송중기의 연기도 좋았고, 삼*그룹 창업주 이*철 회장을 연상시키는 이성민의 카리스마도 멋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A기업의 총수라고 추측했다. 사실인지 알수는 없지만, A기업의 총수도 벌써 60세를 넘겼다. 드라마가 JTBC, 중*일보 계열사로 범삼*가에서 방영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1953년 삼*그룹 창업주 이*철이 부산에 A사를 창업했다. 1953년 국내 최초 설탕을 생산했고, 1958년부터 밀가루를 생산했다. 1954년 생인 엄마의 어린 시절 설탕이 귀해 설탕을 선물할 정도 였다고 한다. 그 이후, 일본 아지노모토와 조미료 개발 제휴(1969년), 부산1공장에 사료생산공장을 준공해 동물사료 생산 시작 (1973년), 국내 최초 복합조미료 다*다를 탄생 및 중*일보로부터 양돈사업을 양수 (1975년). 이천1공장 준공 후 육가공생산 (1980년), '인터페론'을 개발해 의약품사업에도 진출 (1982년), 일본 라이온 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이듬해 생활용품산업 진출 (1990년), 일본 스카이락과 계약해 외식산업 진출 (1994년)하였다. 레토르트 식품 브랜드 '레또'를 출시 (1995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 쌓여, 1997년 말 자본금은 6400억원으로, 당시 A사 직원 삼만명의 평균연봉의 합이었다. 1997년말 직원 삼만명의 연봉이 자본금이던 회사가, 2024년 직원 삼십만명의 연봉으로 불었다.
1987년 이*철 회장의 별세 후 약 10년 뒤 A사는 삼*그룹에서 분리된다. 이 회장의 손주가 A사를 물려 받았다. 그리고 그 손주의 외삼촌 손*식 대표가 기업을 경영한다.
손*식 대표는 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사를 마치고, 1961년 한일은행에 입사해 근무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 후 아버지가 경영하던 삼*화재의 전신기업에 들어가 1973년 이사, 1977년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 1995년 A그룹이 계열분리 되면서 A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에 따르면, 1990년대부터 세계 시장에서 우리 경제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고 금융 시장 개방에 대한 압력이 거셌다. 1992년 '금융자율화 및 개방시행 계획'이 발표되고 금융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되었다. 통화량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고 환율은 오르락내리락했고 주가는 심하게 요동쳤다.
이러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손*식 대표의 남다른 재무분야 경력들이 분명 회사 경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손대표의 이력 어디에서도 식품에 대한 경력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재무 경력을 이용해 기존에 있던 사업분야를 확장했다. 해외 유사 기업들을 인수하여 매출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넓혔다.
그의 전략은 두 가지로, 달러 매출 증대와 유통 기업인수이다. 수입이 높은 A사의 특성상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회사의 이익이 크게 달라진다. 이를 파생상품으로 위험회피를 해도, 환율이 생각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상품비용만 지불하고 이익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A사는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2019년 2조원대의 높은 인수비용으로 미국의 냉동식품기업을 인수한다. 이는 회사의 전략에 딱 맞는 인수였다. 먼저 미국시장 개척을 통해서 달러 매출을 늘릴 수 있었다. 또한, 식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유통채널을 뚫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마트에서 좋은 위치에 상품이 진열되어 있어야 팔리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 경쟁사 대비 높은 연봉과 많은 직원 수도 도움이 되었다. 물건을 싸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필요하다. 이 회사는 충북 진천에 있던 공장에 1조원을 투자해 생산 규모를 늘렸다. 그렇게 하여 더 싸게 제품을 만들었다. 식품 사업부에 약 7천여명을 직원이 있다. 이는 경쟁사 오*기 3천명, 대* 4천명보다 많다. 그리고 평균연봉이 3500만원으로, 오*기 2300만원, 대* 3400만원 보다 높다. (자료: 전자공시 2024년 반기보고서)
A사는 어떻게 식문화를 선도하게 되었을까? 지주회사로 전환 이후, 미디어 계열사를 통해 먹는 것을 문화로 이끌고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회사는, 1996년 전자레인지에 3분 돌리면 완성되는 밥을 출시한다. 그리고 2000년, 종합유선방송사업과 홈쇼핑 프로그램의 제작 공급·도소매업을 하던 C*E*M을 인수한다. 2024년 현재 지주회사가 C*E*M의 40%를 소유하고 있다. A사는 최근 3년 동안 지주회사에 약 1,000억원을 배당했고, 지주사는 미디어 계열사에 투자한다. C*E*M은 티*과 스튜디오드*곤 등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다. 요리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을 유통한다. 최근 작으로는 백패커, 서진이네, 언니네 산지배송, 윤스테이, 어쩌다 사장 등이 있다.
음식 유통으로는 외식 전문 기업 C*푸*빌을 그룹의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빕스 등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미국의 냉동식품유통업체 슈*스를 2조원을 내고 인수했다. 그 후로 냉동만두와 피자를 미국 전역에 유통하고 있다. 최근에는 C*제*제당의 매출에서 내수보다 수출이 높아졌다.
A사를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차입을 통한 인수 합병 전략을 사용하면서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이 회사가 새로운 인수합병을 한다고 하면 얼만큼의 자본을 쓰고, 부채를 얼마나 일으키는지를 봐야 한다.
주부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한국의 식문화를 수출하는 A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