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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급, 출신학교와 상관없습니다

누가 핵심인재 소릴 내었어(2/3)


일을 잘하는 조직이란

사실 이 모든 변화들은 '일을 잘한다'는 개념이 달라진 게 큽니다. 달라진 개념은 기업 혹은 개인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지요. 요즘 기업들에게 '일을 잘한다'는 개념은 재무적 성과나 효율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수한 재무 지표를 들고도 쇠락하는 기업들이 생겨났거든요.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매출 증대, 비용 절감, 이익 극대화가 생존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 혁신, 고객 중심 접근, 데이터 활용, 유연한 전략, 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이미 달라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개인 차원에서의 변화는 혁신적입니다. 일의 댓가로 속한 조직에서의 지위 상승이나 금전적 보상을 기대했다면, 이젠 내 커리어의 성장, 업의 의미, 삶의 균형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조직 중심의 가시적인 부분에서 나를 중심으로 한 비가시적인 부분으로 초점이 맞춰진 거죠. 이 과정에서 조직의 이익과 나의 성장, 조직의 가치와 나의 가치에 대한 싱크로율, 이게 맞지 않으면 긴 동행은 어려워집니다.


'일을 잘한다'는 개념의 진화는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도전이자 기회가 되었습니다. 개인은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맞는 경력을 설계하고 추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직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적합한 인재들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으니까요.




학습되는 무기력, 어긋난 디지털 전환, 제안보다 지시

대강의 흐름을 봤으니 이제 우리의 주변을 살펴볼 차례죠. 여러 주목할만한 현상들이 있겠지만 제가 주목한 현상은 학습되는 무기력, 어긋난 디지털 전환, 제안보다 가까운 지시입니다. 


한때 미국에서 지금의 직장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대퇴사(혹은 대사직)'현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이나 근로 조건을 찾아 떠나는 현상인데 당시엔 팬데믹이 노동환경에 대한 변화를 촉발시켰다는 시각이 우세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는데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정말로 사표를 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업무만 최소한으로 소화하며 눈에 띄지 않게 직장생활을 합니다. 대신 승진이나 평판은 포기해 버리죠. 조용한 사직입니다. 조직에선 비인기부서로 배치하거나 승진누락 같은 조용한 해고로 대응하지만 그것도 엄연한 비용입니다. 

받은 만큼 최소한으로 일합니다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조직 냉소주의라고 해서 HR에서 오래전부터 다뤄온 주제거든요. 리더의 관심과 배려가 부족할 때 유독 도드라지는데, 정작 현상은 MZ세대에서 나타나니 그 세대만의 문제라 단정 짓는 착시현상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예전엔 일부의 문제였다면 이젠 학습된 다수의 문제라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에서 지적된 가장 큰 원인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를 견제하지만 정작 관심은 없는 삭막한 조직문화(toxic culture)였습니다. 기대와 설렘이 없는 곳에서 사람은 급격히 소극적으로 변합니다. 구성원 전반에 소극적인 태도가 자리 잡히면 깊은 체념에 빠질 가능성만 커집니다. 


디지털 변환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거나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생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디지털 변환은 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무역협회에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전환 진척도 조사 결과를 보면 제품 개발 및 공정 프로세스 혁신(51.1%)만큼이나 내부 업무추진의 효율화(48.5%)가 목표라 답했습니다. 향후 도입할 디지털 기술 설문에서도 해외는 인공지능(67.5%)이 높았으나, 국내는 내부 협업 및 생산성 향상도구(51.3%)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습니다. 방향이 다른 거죠.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얼마나 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나마도 더딥니다. 같은 조사에서 디지털 전환에 대해 '시작은 했으나 진행이 더딘 편이다'가 43.9%, '전담 인력 및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6.2%에 달했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보유한 기술을 사용하여 실제로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기술 투자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비즈니스와 프로세스를 어떻게 어디까지 조정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나마 AI, 빅데이터 등이 도입되어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 구조가 변화하고 있긴 합니다만 속도나 범위에서 한계는 명확합니다. 혁신하자고 기술을 쓰는 건데 정작 결과물은 효율입니다.


하던 걸 더 잘하라고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다


기존의 수직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변화하려는 움직임도 일부 관찰됩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수평적'-'유연함'은 조직의 구조나 체계에 적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아이디어의 흐름과 수용 가능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기존의 수직적 위계에서는 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지시가 많았다 라면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에선 아래에서부터 제안이 가능하거든요. 분야에 대한 전문성에 기반하여 능동적인 업무 수행을 피력하는 실무자의 의견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태가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바램과 다르죠. 의견(혹은 제안) 자체를 내기가 힘듭니다.


우리의 일은 부서로 떨어집니다. 부서의 성과는 부서장의 공으로 간주됩니다. 관리자가 '잘 챙겨서' 결과를 냈다 생각하니까요. 팀장들의 KPI를 보면 그렇습니다. 부서원들의 성과 합계가 팀장의 성과로 계산되거든요. 관리자들은 부하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집중합니다. 실무자 입장에서도 어려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거나 전문성을 쌓기보다는 그저 평타라도 치자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부서장의 평가에 의해 내 성과가 갈리고 연봉, 업무평가, 승진여부 등을 상사가 정하니까요. 상사의 의견에 반대할 수 없고 시키면 떠안아야 합니다. 관리자의 눈에 어긋나기라도 하면 경력이 어긋나는 경우도 생깁니다. 업무에 대한 책임의식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의견 자체를 내기가 힘들다


관리자에게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키울 여유가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필요한 프로젝트엔 공백이 생기고 외주를 주게 됩니다. 이럴 때 써먹자고 모셔왔던 전문가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들은 '관리'를 위해 들어온 게 아니거든요. 시간이 갈수록 수직적 구조는 견고해집니다.


제안보다 지시 - 하던 일을 더 잘하게 - 학습되는 무기력,  세 현상은 서로 맞물리고 그렇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환경에서 어떤 인재로 분류될까

살다 보면 X-RAY, CT, MRI 같은 영상을 찍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착잡하죠. 아마 어린이들에겐 더 두렵고 복잡한 경험일 겁니다. 그러다 보니 괜찮다 괜찮다 해놓고 막상 들어가면 강하게 거부하죠. 한 산업 디자이너는 이런 두려운 경험을 바꿔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어린이의 시선에서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진단 영상 장치를 디자인하기 위해 면밀히 관찰하고 공감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창백하고 투박하며 단순한 기계 덩어리를 산호 도시, 해적 섬, 캠프장, 우주여행, 사파리 같은 다양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관찰과 공감으로 만들어낸 조직의 존재가치 @GE Healthcare


촬영이 시작되면 모험이 시작됩니다. 대기실에서 아이들은 모험에 앞선 준비를 해둡니다. 모험에 대한 설명이 된 컬러링북과 테마별 모자 등의 소품이 주어지고 검사실로 이동하면서 모험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듣습니다. 검사가 끝나면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에 대한 칭찬과 함께 성공에 대한 증서가 주어집니다. 검사에 대한 두려움이 모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면서 환자 만족도 점수는 90%대로 높아졌습니다. 두려움이 줄어든 만큼 몸부림도 줄면서 재촬영 혹은 재판독, 마취의 필요성도 줄어들었습니다. 제 기준에서 이 디자이너는 핵심인재로 분류되어야 맞습니다. 고객에게 각인시킨 조직의 존재가치를 생각한다면 마땅히 그래야죠.


과연 이 디자이너는 우리의 환경에서 어떤 인재로 분류될까요? 

그래도 일잘러 1로 간주될까요.

아니면 학습된 무기력과 눈치보기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까요. 

직급이나 출신학교와 엮여 기회 자체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죠.


여러분의 핵심인재는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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