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핵심인재 소릴 내었어(1/3)
저와 아내는 전공이 같습니다. 좌충우돌 커리어 끝에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는 저와 달리 아내는 순수 HRDer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수많은 기업들의 얘기를 듣고 자료를 보며 의견을 나눕니다. 혹시라도 저희 부부의 대화를 듣거나 보신다면 정녕 이것이 가정에서 다룰만한 대화주제인가 싶으실 겁니다.
어느 날 핵심인재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안서를 만들어야 한대나. 참고할 요량으로 수집한 시중의 제안서를 들여다보는데 어딘가 묘했습니다. 하나같이 '일 잘하면 핵심인재다'라는 기조를 깔고 있더군요. 어느 제안서에는 아예 '일잘러=핵심인재'라고 써두었길래 문득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핵심인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핵심인재는 어느 조직에 가서도 그 위력을 발휘한다는 문구를 보니 의문은 한층 짙어졌습니다.
숫자를 다루는 작업은 통계 패키지나 프로그램을 쓰면 열에 아홉은 따라갑니다. 개념이나 용어를 다루는 작업은 그런 패키지나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자료를 찾고 순차적으로 논리를 정리해서 비교한 뒤에 이어주고 물어봐야 합니다. 인사이트는 방법론이라 자신 있게 말씀드린 이유도 여기에 있죠. 다만 그 과정이 길기 때문에 한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가치와 재구매를 생산해야 합니다
핵심인재를 다루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당연히 소비자들이 원하는 걸 생산해야겠죠. 그럼 최근의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은 뭐가 있을까요.
소비자들은 지불하는 가격에서 최대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단순히 저렴한 물건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한 번의 선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생각합니다. 자신의 구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능한 사고의 흐름입니다. 2023년 포브스의 아티클 [The world of ‘ands’: Consumers set the tone]를 보니 약 3분의 2에 가까운 소비자들이 저렴한 브랜드나 PB 제품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외식이나 여행과 같은 경험과 관련된 소비에선 프리미엄 제품에 기꺼이 지출했다고 언급했더군요. 이런 경향은 소비자들이 점점 더 가치 지향적으로 똑똑해질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 소비자에겐 나와 잘 맞는지가 중요합니다. 뉴발란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뉴발란스는 발이 편한 신발로 유명해진 브랜드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뉴발란스를 ‘편한 신발’로 기억하고 있고, 신어본 사람들 대부분이 “신어보니 다른 건 못 신겠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저처럼 발볼이 넓거나 피로를 쉽게 느끼는 사람에게 편한 신발은 삶의 질을 바꿔주는 마법의 도구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객의 건강한 삶을 위해 편안함을 주는 최고의 도구'라는 브랜드의 핵심가치가 저 같은 사람에겐 잘 맞는 거죠. 브랜드의 철학이 기능적 가치로 도출된 사례입니다.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은 어떨까요. 물론 이 지점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이라 보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속 가능성을 구매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99%의 소비자들에게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 더 비싼 제품을 사겠느냐 물으면 모두가 반드시 구매하겠다 답하진 않을 겁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주머니 사정은 구매에 대해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게 만들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그 격차가 줄어들 수는 있겠으나 사라지진 않을 거 같습니다. 윤리적 선택과 가격은 그만큼 복잡 미묘한 사이입니다.
구매 경험도 중요합니다. 여기엔 기술의 발전이 한 몫하고 있죠. AI와 데이터 분석의 발전으로 브랜드는 이제 소비자에게 더 세밀하고 밀착된 추천을 하고 구매를 유도합니다. 동시에 여러 플랫폼에서 브랜드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며, 우수한 고객 서비스는 성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술의 통합은 구매 경험을 재구성하며 고객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선된 구매 경험은 재구매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여줍니다.
종합해 보면 소비자들은 브랜드에게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 이상의 것을 바랍니다. 고품질, 동기화된 윤리적 가치, 긍정적인 경험 등등 브랜드와의 관계에서 얻는 구체적인 혜택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확한 가치 교환과 재구매, 우리가 생산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두 가지입니다.
백인남성부터 문제 해결능력까지
이제 지난 세 회차에서 다룬 대로 해볼까요.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중요한 산업의 변화와 함께 언급된 핵심인재의 정의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50년대는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부흥기입니다. 사무실 환경이 공장식으로 변화하고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는 시기였죠. 자동차 산업, 식품 서비스 및 식료업이 주로 성장하는데 특히 자동차 산업이 메인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주로 고위 임원직(백인 남성)을 핵심인재로 여겼는데 노동력이 흔한 시절이니 관리에 능한 사람을 핵심인재로 보는 경향도 한몫했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갸우뚱하지만 태동기니 그럴 수도 있죠.
60년대로 넘어오면서 사무환경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타자기나 계산기 등이 본격적으로 사용됩니다.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니 도입된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핵심인재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실무 일반에서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거죠. 70년대로 넘어가면 제조업에 석유 가스 같은 에너지 기업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IBM과 같은 기술 기업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비즈니스 전반에 컴퓨터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핵심인재로 정의됩니다. 다만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이니 60년대 핵심인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다국적 기업이 부각되기 시작했거든요. 국제 감각과 어학 능력, 다양한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지구 어디 내려놔도 살아남을 거 같은 상사맨 이미지가 떠오르는군요. 90년대에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변화에도 속도가 붙습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같은 전자상거래, 기술기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위크 표지를 장식합니다. 이 시기엔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핵심인재로 간주되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술자리면접, 카드면접 이런 이색적인 면접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세기가 바뀌고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의 중심이 옮겨갑니다. 위기 상황을 겪어서인지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서인지 분석력과 기업가 정신이 강조됩니다. 다시 10년이 흐르고 본격적인 모바일 시대, 소셜미디어 시대가 열립니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클라우드 등의 기술이 진화하죠. 기술적 이해에 더해 창의성, 협업능력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핵심인재로 정의됩니다. 비즈니스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 소비패턴까지 바뀌니 문제도 복잡하고 커진 측면이 있습니다. 혼자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2020년대는 어떨까요. 팬데믹이 터지며 원격근무가 발생했고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윤리적이면서 기후변화를 대비하는 방향으로 옮겨갑니다. 여기에 저출산의 여파로 노동력 부족까지 강하게 예고됩니다. 차고 넘치는 데이터에서 어떻게 옥석을 고를 것 인가(데이터 리터러시), 다양하게 지원되는 업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여 개인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것인가(자기 주도 능력) 같은 역량이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할 사람은 적지만 데이터는 넘치니 자연스러운 요구입니다.
단순히 백인남성으로 지칭되던 핵심인재, 70년을 거치며 다양하고 복잡하게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던 시절엔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던 일을 더 잘하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가치'를 만들고 '재구매'를 이끌어내야 하는 시대입니다. 비즈니스는 크고 복잡해졌고 파생되는 문제 역시 크고 복잡해졌습니다. 직급이나 출신학교가 아닌 고객 중심의 접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디지털 혁신, 그리고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합니다.
핵심인재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문제해결 능력으로 조직의 가치를 명확히 구현하고 어필해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