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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들은 왜 신입을 뽑지 않을까

경기가 어렵다는 말은 핑계고

오랜만에 타이핑을 합니다. 대략 두 달 만인 것 같네요. 그간 모두 잘 지내셨으리라 믿습니다(긁적).


외부 강의를 나가면 채용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기업에서는 어떤 인재를 채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취업준비생들은 기업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궁금해합니다. 분명 같은 채용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급변하는 채용 시장의 현실

실제로 우리의 채용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기업 신입 채용은 최근 3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중소기업 채용 계획도 작년 대비 6% 이상 감소했습니다. 채용부터 교육까지 드는 막대한 비용 부담, AI로 인한 업무 환경 변화, 그리고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는 기업이 인재를 바라보는 관점과 관리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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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이 고비용 - 고위험의 투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수시 채용 시대의 도래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5년 신규채용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응답 기업의 70.8%가 '수시 채용만 실시한다'고 답했으며, 85.8%는 '특정 시기 없이 인력 수요 발생 시' 신규 채용을 진행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정기 공개채용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선발 기준 또한 달라지고 있습니다. 신규 채용 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81.6%의 기업이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꼽았으며, 이 비율은 2023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빈자리가 생긴 특정 부서의 니즈에 맞춰 진행되는 수시 채용에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더 이상 '제로 베이스'의 인재를 처음부터 육성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겠다는 기업들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신입 사원, 비싸고 위험한 투자가 되다

높은 비용과 리스크

그렇다면 왜 기업들이 신입 사원 채용을 꺼리게 된 걸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분야별 차이는 있지만, 대졸 신입사원 기준으로 1인당 재교육 기간은 평균 20.3개월, 소요 비용은 6,218만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약 30% 내외의 조기 퇴사율까지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 신입 채용은 고위험-고비용 투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굳어지는 비용 전가 구조

투자 리스크를 피하려는 기업들은 인력 양성의 초기 비용과 부담을 외부로 전가하고 있습니다. 청년 구직자들은 취업을 위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을 거쳐 경험을 쌓는 '경력 신입'이 되거나, 사설 교육기관을 통해 실무 역량을 갖춰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런 과정은 취업 준비 기간을 장기화하고,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어렵게 채용한 신입사원이 금세 떠난다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하소연 역시 나아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위험 회피와 비용의 외부화는 득보다 실이 큽니다. 당장은 유연성과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핵심 인재 확보와 조직문화 형성을 방해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 자체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아끼는 만큼 다른 누군가는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AI가 빚어내는 불평등

생산성 향상의 그림자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노동시장의 인력 수요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업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예전에 2~3명이 해야 했던 작업을 한 명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더 적은 인력으로도 동일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의미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초급 업무에 대한 수요를 줄이게 만듭니다. 주로 신입이나 저연차 직원들이 담당했던 업무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죠. 'AI 시대에는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가질 것'이라는 말이 허울뿐으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아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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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도구를 활용할 수 있었던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했던 노동자에 비해 생산성이 평균 14% 개선(스탠포드 & MIT)


경험이 만드는 AI 활용 격차

공평하지 않은 부분은 또 있습니다. AI 활용 능력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차이입니다. AI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실무 경험의 양과 질에 크게 좌우됩니다. 현업에 있는 경력직은 업무 맥락을 이해하고 AI 도구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청년 구직자나 신입사원들은 AI를 사용할 줄 알아도 언제, 어떻게, 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AI 도구를 사용해도 결과물은 천차만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라면 시장에 대한 분석 보고서 작성해 줘"라고 입력하는 신입과 "라면 시장 분석 보고서가 필요해. 2000년부터 5년 단위로 구분해서 각 기간별 대표 상품과 주요 원재료 수입 가격, 매출에 영향을 미친 사회경제적 이벤트 등을 정리해서 비교 분석해 줘"라고 구체화하는 경력자의 결과물이 같을 리 없습니다.


AI 스킬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기술적 조작 능력이 아니라 업무 목적에 맞는 적절한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에 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뛰어난 성과를 내는 도구로 자리 잡았지만, 그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해당 도메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연령이나 경험과 무관하게 접근 가능한 AI지만, 현실에서 AI는 기존 인력과 경력자들에게 더 유리한 도구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쯤 되면 취업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작고 좁게만 느껴집니다. 참 녹록지 않은 현실입니다.


'경험의 역설'을 넘어

이러한 변화는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청년 구직자들에게는 너무 버겁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미안함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정부나 기업과 달리 청년 구직자들은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 하니까요.


'경험의 역설'에 대한 새로운 답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근무해 봤다'가 아니라, AI와 협업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경험이 진짜 경력이 되는 시대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역량, 즉 비판적 사고력,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공감과 소통 능력 향상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니 꾸준히 배워나가면 되지만, 고유 역량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틀면 연일 '경기가 어렵다',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그래서인지 취업의 문도 더욱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생산성이 늘어난 만큼 새로운 일들도 더 많이 생겨날 테니까요.


사람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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